지금은 형해화(形骸化)된 피맛골 먹자골목에 알아주는 생선구이 식당이 있었다. 광화문 교보문고 뒤편에서 피맛골 골목으로 30~40m쯤 걸어 들어가면 생선 굽는 고소한 냄새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식당 출입문 왼편에 설치된 대형 석쇠 위에는 고갈비와 삼치, 굴비, 꽁치 따위의 생선들이 식욕을 부추기는 매력적인 향을 풍기며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퇴근길에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자주 찾은 곳이다. 바로 옆집이 술꾼들에게 전설로 각인된 빈대떡집이다.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으로 향하는 애주가들의 마음속 저울은 그날 기분에 따라 즉석에서 기우는데 생선구이나 빈대떡을 안주 삼아 막걸리로 회포를 풀곤 한 기억이 뚜렷하다.
생선구이 식당에서는 고갈비와 삼치구이를 주로 시켜 먹었고 동그랑땡과 파전도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속이 더부룩할 즈음에는 꼭 조개탕을 주문해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칼칼한 국물 맛에 입이 개운해졌고 술기운도 옅어져 몸이 가벼웠다.
등 푸른 생선 고등어. 등에 푸른 빛이 나는 흑색 물결무늬가 선명하다.
단골손님들한테만 챙겨 준다는 말린 누룽지에 대한 추억도 빼놓을 수 없다. 후덕한 외모만큼이나 마음씨도 따뜻한 주인아주머니의 잔정에서 우러난 소박한 군것질거리, 누룽지는 단골이라면 앞다퉈 찾는 일등 후식 먹거리였다. 매상이 정점을 찍은 날, 주인아주머니는 비닐봉지에 누룽지를 한가득 담아 평소 눈여겨 둔 손님에게 건네기도 했다.
입이 심심할 때 말린 누룽지를 손으로 뚝 잘라 오독오독 씹어먹는 맛은 먹어본 사람은 다 안다. 생선구이 식당은 도심 재개발 사업에 따라 2010년 2월 23일 피맛골에서 사라졌다.
#빈대떡집
빈대떡집은 제일은행 본점 뒷골목으로 옮겨갔다. 몇 년 전에 대학 친구와 이전한 곳에 가봤다. 피맛골에 있어야 할 집이 엉뚱한 곳에 있는 사실이 어색했고 내부 분위기도 생뚱맞았다. 빈대떡을 부치는 아저씨는 낯익은 얼굴이었으나 빈대떡 맛은 왜 그런지 모르게 익숙지 않았다.
장소와 환경이 바뀌면 맛도 바뀐다는 요식업계의 통설이 빈말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빈대떡만 따로 먹어보고, 빈대떡에 어리굴젓을 올려 먹어도 내 입맛이 기억하는 맛과는 거리가 있었다.
#고등어구이를 먹는 방식
고등어구이를 먹는 방식은 생선구이 중 특이하게 세 가지나 된다. 생물 고등어에 굵은소금을 뿌려 즉석에서 구워 먹거나 소금에 절여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자반고등어로 먹기도 하고 소금 간을 한 뒤 여섯 시간 내에 요리하는 고갈비로 먹는 방식이다. 고갈비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때 값비싼 소갈비나 돼지갈비 대용의 술안주로 인기가 많은 저잣거리 음식으로 명성을 떨쳤었다.
지금도 일부 포장마차식 횟집에서 고갈비를 메뉴판에 올려놓은 것을 봤다. 먹거리가 풍성한 시대라 누가 주문할까, 싶다마는 나처럼 옛날 추억을 그리워하는 술꾼들은 취중에 ‘이모, 여기 고갈비 하나’라고 호기롭게 외치지 않을까.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을 함유한 등 푸른 생선인 고등어는 지방이 많아 구우면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 잔가시가 거의 없어 가시 발라낼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살점이 두툼해 다른 생선보다 먹을 게 많아 젓가락으로 뜯어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성비가 높아 밥반찬은 물론 술안주로도 인기가 많다.
고소하고 기름진 고등어구이
#푸른 무늬의 물고기, 벽문어(碧紋魚)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이랄 수 있는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고등어가 이렇게 기술돼 있다. ‘벽문어(碧紋魚), 민간에서 부르는 속명(俗名)은 고등어(臯登魚). 맛은 달고 시고 탁하다(味甘酸而濁, 미감산이탁). 국이나 젓갈로 먹기에는 알맞지만 회나 어포(魚脯)로는 먹을 수 없다.’ <자산어보, 정약전 · 이청 지음, 정명현 옮김, 서해문집, 2021, p49~p50에 나오는 내용을 재구성>
벽문어라는 이름은 정약전(1758~1816)이 직접 작명한 것인데 푸른 물결무늬를 가진 등 푸른 생선 고등어의 형태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고등어의 오늘날 이름과 음(音)이 같은 속명은 한자로 언덕 고(臯), 오를 등(登), 고기 어(魚)다. 언덕을 오르는 물고기라는 뜻인데 헤엄을 치는 속도가 아주 빠른 고등어의 날쌘 모습에서 비롯된 명칭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선도(鮮度)가 빠르게 떨어지는 고등어의 특성을 헤아린 먹는 방법도 흥미롭다.
삼치도 고등어처럼 등 푸른 생선이다. 고등어를 닮았으나 고등어에 비해 몸이 날쌔고 재빠르며 성장 속도가 남다르다. 부화하고 1년만 지나면 몸길이 50cm의 다 자란 성어(成魚)가 되고 3년이 되면 1m에 이를 정도로 큰 생선이다. 음식점에서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 나오는 삼치구이는 삼치 새끼다.
삼치는 한자로 망어(亡魚)로 알려져 있다. 잡자마자 금방 죽어버리는 급한 성질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름이 꺼림칙해 조선 시대 양반들이 싫어했고 어민들만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자산어보에는 삼치가 이렇게 기록돼 있다.
생물 삼치 속살
#이무기를 닮은 삼치, 망어(蟒魚)
‘망어(蟒魚),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따른다. 큰 놈은 길이가 8~9척(240~270cm)이다. 등이 검은 데 이무기의 검은 무늬를 닮았다. 자못 용맹하고 튼실해 몇 장(丈, 약 3m) 높이를 뛰어오를 수 있다. 맛은 시고 진하나(味酸而厚, 미산이후), 맛이 처지고 탁하다(但劣濁, 단열탁).’ <자산어보, 정약전 · 이청 지음, 정명현 옮김, 서해문집, 2021, p77~p78에 나오는 내용을 재구성>
정약전이 당시 널리 통용되던 삼치의 명칭을 그대로 적은 망어의 망은 한자로 이무기 망(蟒)이라 이무기를 닮은 생선인 셈인데 작명에 외형적 특징이 묻어나 흥미진진하다.
삼치는 고등어보다 비린내가 적고 부드럽게 씹히는 담백한 맛이 난다. 담백하다는 것은 깔끔하면서 느끼하지 않다는 말인데 뒤집어 해석하면 맛의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고 밍밍하다는 뜻도 된다는 점에서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맛의 수준이 낮다는(劣) 평가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삼치보다 고등어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뚜렷한 맛이 없이 심심한 삼치 맛의 특징을 이유로 꼽는다. 고등어나 삼치나 둘 다 살점이 퍽퍽한데, 자산어보에서 탁하다(濁)고 평가한 것도 이런 맛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삼치구이
자산어보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형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시절 말기인 1814년에 지은 책이다. 물고기를 비롯한 총 226종의 해양생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학문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분류한 역작이다.
#민어과 물고기의 총칭, 조기
굴비는 조기를 소금에 절여 통째로 말린 것이다. 조기는 참조기와 보구치, 부세, 수조기, 흑조기 등을 망라하는 민어과 물고기의 총칭이다. 참조기와 보구치는 몸길이가 30cm 내외로 생김새도 닮았으나 색깔로 구분한다. 참조기는 황금색, 보구치는 흰색이다.
수조기는 몸이 누런빛을 띤 적색, 부세는 반대로 붉은빛을 띤 누런빛이다. 길이는 수조기가 40cm, 부세는 50cm 정도다. 민어를 닮은 흑조기는 몸이 회청색으로 30cm를 훨씬 웃돈다. 우리집에서는 주로 참조기를 구워 먹는다.
조기는 잔가시가 의외로 많다. 크기가 작은놈일수록 잔가시가 입속에서 거치적거려 성가실 뿐, 먹을 것도 별로 없다. 중간 크기 이상은 돼야 그나마 먹을만하다. 조기는 살이 매끄럽고 잘 으스러져 발라먹느라 애를 먹기도 한다.
조기구이
어른들이 조기나 굴비 살을 일일이 발라 어린 자식들의 숟가락 위에 얹어 준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조기구이는 우리집 명절 차례상(茶禮床)과 제사상(祭祀床)에 올리는 필수 제수(祭需) 음식이기도 하다.
#선(先) 갈치조림, 후(後) 갈치구이
내가 주말 밥상에 차리는 갈치구이는 갈치조림을 하고 남은 토막으로 요리한 것이다. 갈치구이도 좋아하지만 어디까지나 선(先) 갈치조림, 후(後) 갈치구이라는 나만의 원칙 때문이다. 아무래도 다른 생선에 비해 살점이 적은 갈치의 특성 때문인데, 조림으로 먹어야 매콤하고 칼칼한 양념 국물에다 흥건하게 간이 배어 짭조름한 무까지 먹을 수 있어서다. 식구가 집사람과 나 둘뿐이라 손질한 갈치 한 팩을 사면 조림으로 한 번, 구이로 한 번을 먹을 수 있다.
갈치구이
식당에서 파는 보리굴비 정식을 들어봤을 것이다. 보리굴비는 통보리 속에 파묻어 서늘한 곳에서 3~4개월 숙성시킨 굴비를 말한다. 찬물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와 먹으면 꿀맛이라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 기회가 되면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