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은 햇빛을 쏘이지 않고 수분만으로 콩나물 콩, 메주콩으로 불리는 대두(大豆)의 싹을 틔우고 뿌리를 키운 식품이다. 마트의 식품 진열대에서 콩나물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 온 콩나물을 수돗가에서 손으로 일일이 다듬는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초등학교 방학 때 경북 상주 큰아버지 댁 안방 한구석에 놓인 콩나물시루에 대한 기억이다.
콩나물은 햇빛을 쏘이지 않고 수분만으로 대두(大豆)의 싹을 틔우고 뿌리를 키운 식품이다.
요즘 마트에서 파는 채소류의 식재료는 세척 기술과 가공 기술, 포장 기술의 발달로 집에서 별도로 다듬고 불순물을 제거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1970~80년대의 사정은 그러지 않았다. 시장이나 가게에서 파는 콩나물에 이물질이나 불순물이 그대로 묻어 있어 손품이 많이 들고 잔뿌리도 손으로 뜯어내야 하는 등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 콩나물국을 끓일 때나, 콩나물무침을 할 때마다 어머니는 안방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콩나물을 다듬었다.
큰아버지 댁 안방의 콩나물시루에는 콩이 잔뜩 담겨 있었다. 콩나물시루는 안방의 그늘진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또 그물처럼 생긴 보자기를 덮었다. 싹을 틔운 콩이 햇볕에 노출되면 콩나물에서 심한 비린내가 나고 질겨지는 데다 빛도 바래져 먹기도 불편하고 상품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다시마 한 장을 찬물에 담가 다시마물을 우려낸다.
큰어머니는 수시로 콩나물시루에 물을 뿌려주었다. 콩나물시루는 물이 빠져나가도록 배수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시루와 시루 아래의 고무 대야 사이에는 나무받침대가 받쳐져 있었다. 자고 난 이튿날 아침이면 콩나물이 쑥쑥 자라나 신기했다.
콩나물은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대표적인 식재료 중 하나다. 콩나물 요리로는 콩나물국과 콩나물국밥, 김치 콩나물국, 콩나물무침, 콩나물밥 등이 있다. 콩나물은 또 각종 요리에도 빠져서는 안 될 필수 식재료다. 아귀찜과 복국, 매운탕 따위의 탕 종류에는 콩나물이 꼭 들어간다.
쌀은 씻은 뒤 채반에 받쳐 물기를 뺀다.
#요리법과 맛
가끔 어머니가 해주신 콩나물밥이 생각날 때가 있다. 집에서 한두 번 압력밥솥에 콩나물밥을 지어봤는데 어릴 때 먹었던 맛이 나지 않았다. 콩나물밥은 쌀과 콩나물만으로 지은 밥이다. 요리법이 단순하다고 만만하게 보면 오산이다. 콩나물밥을 맛있게 짓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요리법을 흉내 내는 것과 맛을 내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한때 인사동의 유명 한정식집에서도 콩나물밥을 먹을 수 있었다. 콩나물밥 짓기가 성가셨는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였는지, 둘 다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추억 속의 메뉴가 된 지 오래다.
#콩나물밥의 3대 조건
콩나물밥의 승패는 밥과 양념장, 밥물의 양에 달려 있다. 밥은 질지도 되지도 않게 고슬고슬하게 윤기가 흘러야 하고, 콩나물밥에 얹어 비벼 먹는 양념장은 풍미가 있어야 한다. 콩나물이 수분을 머금고 있기에 밥물의 양 조절도 중요하다.
쌀을 밥솥에 안친 뒤 다시마물을 붓는다. 물의 양은 평소 밥물보다 30% 적게 조절한다.
평소 밥물보다 30% 적게
먼저 할 일은 깨끗이 씻은 다시마 한 장을 찬물에 담가 두는 것이다. 다시마가 우러난 물로 밥을 짓기 위해서다. 다시마물로 밥을 지으면 밥이 윤기가 흐르고 깔끔하면서 담백한 맛이 난다. 쌀은 씻은 뒤 물기를 빼고 콩나물도 채반에 받쳐 물기를 털어낸다.
수분을 제거한 쌀을 밥솥에 안친 뒤 다시마물을 붓는다. 물의 양은 평소 밥물보다 30%가량 적게 조절한다. 콩나물에서도 수분이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콩나물은 익으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넉넉하다 싶을 정도로 수북이 얹는다.
쌀 위에 물기를 제거한 콩나물을 수북이 얹는다
일반 냄비에서 밥을 끓이다가 도중에 콩나물을 넣고 콩나물밥을 짓는 방식도 있다. 쌀과 콩나물의 물기를 잘 제거하고 물의 양 조절에만 유념한다면 전기밥솥이나 압력밥솥을 사용해도 안 될 것은 없다. 콩나물밥이 다 된 뒤에는 밥과 콩나물을 부드럽게 섞어준다.
완성된 콩나물밥
양념장
고슬고슬한 밥과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는 콩나물과 함께 양념장이야말로 콩나물밥을 콩나물밥답게 규정짓는 맛의 열쇠다. 양념장에는 일반적으로 진간장과 고춧가루, 다진 마늘, 참기름, 통깨, 후추, 대파, 청양고추가 들어간다.
여기에 맵고 향기로운 맛을 내는 데 사용되는 향신채(香辛菜)로 봄나물의 대명사 달래를 추가하는 게 포인트다. 손질한 달래를 잘게 썰어 듬뿍 넣고 다른 양념 재료와 섞어 밥에 올려 비벼 먹으면 양념장의 신세계를 느낄 수 있다. 마늘과 파도 향신채로 분류되지만 향긋함에서는 달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양념장에 들어갈 청양고추, 대파, 미나리
달래가 없다면 미나리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향긋함으로야 미나리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식품이다. 아삭거리는 씹는 맛까지 즐길 수 있어 달래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
맵고 향기롭고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을 포괄적으로 머금고 있는 양념장을 한 숟가락씩 밥에 올려 비벼 먹다 보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양념장을 곁들인 콩나물밥은 영양학적으로나 맛으로나 다른 반찬이 필요 없어 콩나물밥이 새삼 진미(珍味)임을 알게 해준다.
손질한 채소에다 진간장, 고춧가루 등 양념 재료를 넣고 섞어 만든 양념장
내가 만드는 양념장 재료의 양은 진간장 다섯 큰술, 국간장 한 큰술, 고춧가루 한두 큰술, 다진 마늘 한 큰술, 참기름 두 큰술, 청양고추 한 개다. 진간장과 함께 국간장도 한 큰술 넣어 봤더니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 났다. 여름철이라 달래가 없어 미나리로 대체했다. 미나리는 양념장 그릇의 3분의 1을 채울 정도로 넉넉하게, 대파는 반의반 대, 통깨는 적당히, 후추는 서너 번 친다.
콩나물밥은 콩나물과 쌀로 밥을 짓고 양념장만 만들면 한 끼 식사로 거뜬한 별미다.
콩나물과 쌀로 밥을 짓고 양념장만 만들면 한 끼 식사로 거뜬한 콩나물밥. 소박하지만 별미(別味)를 맛볼 수 있는 정겨운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