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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Sep 04.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21. 돼지불고기

21. 돼지불고기     


#국내 육류 소비량 1돼지고기

 돼지고기는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고기라는 점에서 밥상 친화력이 으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 2023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1인당 3대 육류(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소비량(60.6kg) 중 절반이 돼지고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돼지고기는 소고기보다 싸고 조리 방법도 다양하다. 굽거나 볶거나 삶거나 찌거나 끓이거나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소고기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고 섭취 방식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을 뿐 아니라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다.      


돼지고기 앞다릿살지방이 적당히 섞여 있어 감칠맛이 뛰어나 돼지불고기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어렸을 때 집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방식은 돼지불고기나 고추장 양념 두루치기였다. 돼지불고기는 간장 양념에 돼지고기를 일정 시간 재워 숙성시킨 뒤 팬이나 석쇠에 구워서 먹는 음식이다. 1970년대의 웬만한 가정집에서는 소불고기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어 주로 돼지불고기를 먹었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한 고추장 돼지불고기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반적으로 돼지불고기는 간장 양념을 한 것을 말하고 고추장과 고춧가루가 들어간 것은 고추장 돼지불고기라 구분해서 부른다.      


두루치기는 고추장과 고춧가루, 간장, 다진 마늘, 다진 생강을 넣고 돼지고기를 버무린 다음 재우지 않고 양파와 대파, 고추 따위의 채소와 섞어 국물이 자작하게 볶듯이 조린 음식이다. 양념의 차이와 숙성 여부, 조리 스타일에서 두 음식은 다르고 맛도 다르나 어떤 식으로 먹어도 입이 즐겁다.      


진간장과 매실액설탕맛술참기름다진 마늘소주후추 등을 섞어 만든 돼지불고기 양념장.


맛의 특징은 돼지불고기는 짭조름하면서 고소하고 단맛이 나고 두루치기는 매콤하다. 볶고 조리고 구운 음식답게 둘 다 육질이 부드러워 돼지고기 특유의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돼지불고기용 부위로는 지방(脂肪)이 적당하게 섞여 있어 감칠맛이 뛰어난 앞다릿살을 많이 사용하는데 뒷다릿살이나 목살, 삼겹살로 요리해도 맛있다.     


#연남동 기사식당

 택시 기사들의 휴식처이기도 한 기사식당 메뉴판에 돼지불백이라고 적힌 음식이 돼지불고기 백반이다. 홍대 전철역에서 걸어서 7~8분 거리인 연남동 기사식당 거리에 간장 양념 돼지불고기로 소문난 맛집이 있다. 원래 택시 기사들이 애용하는 곳이었는데 수년 전 인기 예능 프로그램 방송을 탄 이후 젊은이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양념장으로 조물조물 버무린 돼지고기 앞다릿살 한 근(600g).


불맛이 제대로 스민 돼지고기의 육즙까지 살아 있어 돼지불고기의 진미(珍味)를 맛볼 수 있다. 가스 불로 굽는 가정식 돼지불고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다. 화력(火力)과 연료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간판 메뉴인 돼지불고기 외에도 오징어볶음, 생선구이 등을 24시간 내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 홍대 근처에서 근무할 때 몇 번 간 적이 있다. 돼지불고기 백반값이 8천 원일 때였다. 지금은 가격이 많이 올라 1만 2천 원이라고 한다. 계란프라이가 서비스로 나온다.      


양념에 재워 40분간 숙성시킨 모습.


#하숙생들의 최애(最愛음식고추장 돼지불고기

 돼지불고기와 관련해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1980년대 초 대학 시절 하숙집 밥상에 오른 돼지불고기는 하숙생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최애(最愛) 음식이었다. 하숙집마다 사정이 달랐지만 대개 한 달에 두 번꼴로 돼지불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내가 기거(起居)한 하숙집의 돼지불고기는 간장 양념 대신 고추장 양념으로 구운 것이었다. 세숫대야 반만 한 크기의 스테인리스 양푼에 고추장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밥상 한가운데에 놓인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프라이팬을 설치하고 고추장 돼지불고기를 구워 먹었다. 보름에 한 번 나오는 귀한 음식이라 하숙생들은 평소와 달리 말을 아끼며 먹는 행위에만 집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끼니를 곧잘 건너뛰는 하숙생들도 고추장 돼지불고기가 나오는 날에는 꼭 모습을 드러냈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대파를 먼저 볶는다.


먹성 좋은 하숙생들에게 돼지고기의 양은 언제나 모자라 한두 명이 빠지기라도 하는 날엔 하숙생들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득했다. 서로 다른 지방에서 올라와 타향살이의 고충을 겪는 하숙생들에게 먹는 즐거움은 남달랐고 돼지불고기를 구워 먹는 날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저녁 식사로 돼지불고기를 먹은 날에는 하숙생들 모두 모처럼의 진수성찬에 행복해했고 밤늦게 치킨을 안주 삼아 소주와 맥주 파티를 벌이며 흥겨움을 이어가기도 했다.     


숙성시킨 돼지고기를 넣고 익히기 시작한다.


#돼지불고기 양념장

 돼지불고기용 양념장 재료로는 진간장 일고여덟 큰술과 매실액 한 큰술, 설탕 한 큰술, 맛술 두 큰술, 참기름 두 큰술, 다진 마늘 한 큰술, 소주 컵으로 소주 한 컵, 후추 등이다. 돼지고기 600g(한 근) 기준이다.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잡기 위해 다진 생강을 넣기도 하는데 다진 마늘과 소주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돼지불고기를 요리할 때 넣는 채소인 대파의 향도 누린내 제거에 한몫한다. 


양파를 갈아 양념장에 섞는 대신 채 썰어 돼지고기와 함께 불판에 익혀 요리해도 문제가 될 일이 없다. 양파의 단맛을 더욱 실감할 수 있고 씹는 맛도 있다. 취향과 식성에 따라 양념 재료를 취사선택할 수 있겠지만 간장과 다진 마늘은 필수며 양파와 대파도 마찬가지다. 양념용 재료의 양도 입맛에 맞게 조절하면 된다. 돼지고기는 양념장에 버무린 뒤 20~30분가량 재워 숙성시킨다.      


돼지고기가 어느 정도 익었을 때 양파를 넣고 계속 볶다가 마무리 단계에서 청양고추를 추가하고 통깨를 뿌린 뒤 1분 뒤에 불을 끈다.


#돼지불고기 요리

 식용유를 두른 팬 위에 어슷하게 썬 대파를 올리고 볶아 파기름이 나올 때쯤 양념장에 숙성시킨 돼지고기를 넣고 센 불로 요리한다.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면 요리용 주걱으로 내용물을 요리조리 뒤집어가며 돼지고기를 골고루 익힌다. 돼지고기가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양파를 넣고 계속 볶는다. 고기가 충분히 익었을 때 잘게 썬 청양고추를 추가하고 통깨를 뿌린 뒤 1분 뒤에 불을 끈다. 


짭조름하면서 고소하고 단맛이 나는 돼지불고기.


식탁 위에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올리고 돼지불고기를 구워 먹는 방법도 있다. 이럴 때는 한꺼번에 돼지고기를 다 올리지 말고 먹을 만큼 조금씩 올려 구워 먹는 방법을 추천한다. 고기를 다 구워 놓고 먹는 것보다 구우면서 먹으면 더 맛있기 때문이다.      


고추장 돼지불고기 양념장은 돼지불고기 양념에서 간장의 양을 서너 큰술로 줄이고 고춧가루 한 큰술과 고추장 세 큰술을 추가하면 된다. 숙성시간과 요리 방법은 돼지불고기 방법과 같다. 제육볶음은 국물이 없는 두루치기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위주의 양념장으로 돼지고기를 버무린 뒤 숙성시키지 않고 채소와 함께 바로 요리한 제육볶음.


 돼지불고기는 객지에서 하숙하던 내게 먹는 즐거움과 돼지고기의 참맛을 가르쳐준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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