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유난히 찌개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찌개 문화가 발달한 이유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밥상에서 쌀밥은 필수다. 쌀이 주식(主食)이라 밍밍한 밥에서 밥맛이 나도록 이끌 지원 메뉴가 필요했고 간 맛을 상징하는 양념인 간장과 된장, 고추장, 소금 따위를 넣고 요리한 국물 음식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찌개와 국, 탕(湯)이다. 찌개는 국물이 조금 적은 대신 먹을거리인 건더기가 많고, 국과 탕은 국물이 상대적으로 많은 요리다. 국과 탕은 끓이는 시간에 따라 구별한다. 끓이는 시간이 짧으면 국, 오래 푹 끓이면 탕인 식이다. 그런 점에서 제수(祭需) 음식의 하나인 탕(湯)국은 특이하다. 소고기와 무로 끓이는 탕국은 건더기도 많고 국물도 많고 사골을 우려내듯이 끓이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름대로 탕이면서 국이다.
우리나라 음식 문화에서 밥과 국이 바늘과 실처럼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밥상 조합이라면 찌개나 탕은 완전 별개의 독립적인 음식으로 대우를 받는다. 다양한 종류의 찌개와 탕 이름이 식당 메뉴판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물 요리로는 전골도 있다. 형태적으로는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적어 찌개류로 분류할 수 있으나 끓이면서 먹는다는 점에서 찌개와 다르다.
집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내가 자주 들르는 식당 주인의 솜씨인데 어릴 때 먹은 어머니표 된장찌개와 아주 비슷한 맛이다.
#국민 음식, 찌개
별도의 독립 메뉴라는 점에서 찌개와 탕은 대등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과 처지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우리나라에서 찌개는 전 국민적 사랑을 받는 국민 음식이다. 여러 차례의 설문조사에서 거듭 확인됐듯, 찌개는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친근하고 서민적인 밥상 문화의 맨 윗자리에 있다.
찌개 중에서도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야말로 찌개 문화를 앞장서 이끄는 확고부동한 쌍두마차임을 부인할 수 없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오랜 세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남녀노소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켜 왔기 때문이다.
김치찌개는 김치로 맛을 내고, 된장찌개는 된장으로 맛을 낸다. 김치찌개는 김치가 맛있어야 하고 된장찌개는 된장이 맛있어야 제맛이 난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누구라도 끓일 수 있지만 맛을 제대로 내기란 의외로 까다롭다. 김치 맛이 다 다르고 된장 맛도 다 다른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오늘은 된장찌개에 관한 이야기다.
꽃게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
#어머니표 된장찌개의 추억
베이비 붐 세대라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밥상에 올린 된장찌개의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약간 짠맛이 나면서 구수한 풍미와 감칠맛이 지배하는 어머니표 된장찌개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진미(珍味) 중의 진미였다. 그 이유를 나는 두 가지로 생각한다. 하나는 어머니가 손수 메주를 띄워 만든 집된장이고 다른 하나는 비교 불가의 대상인 어머니의 손맛이다.
집된장과 간장
베이비 붐 세대의 막내 그룹이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1970년대는 집마다 메주를 띄워 된장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집된장을 만드는 과정은 지난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가을만 되면 집마다 된장 만드는 채비를 서두르느라 분주했다.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메주를 띄우고 장을 뜨고 장을 담그는 연중행사는 짧게는 이듬해 늦봄, 길게는 초여름이 돼서야 마무리됐다.
가끔 끓이는 된장찌개에 들어갈 나박썰기한 무도 넉넉히 준비한다.
메주를 소금물에 띄워 우려낸 윗물을 오래 달이면 검고 붉은 액체가 된다. 이것이 바로 짠맛의 대명사로 간을 맞추고 음식 맛을 내는 기본양념 재료인 간장(醬)이다. 짠맛의 대명사라고 표현한 간장이 짜기만 한 것만은 아니다. 간장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면 짠맛 외에도 단맛과 입속에서 맴도는 감칠맛까지 느낄 수 있다.
간장을 담근 뒤 달이는 제조법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달인다는 의미는 액체를 끓여서 진하게 우려낸다는 것인데 콩과 소금이 액화(液化)돼 발효과정을 거친 액즙이 불기운을 받아 빛깔과 맛이 다층적(多層的)으로 빚어진 결과다. 달인 간장의 숙성 기간이 길수록 짠맛이 강해지고 깊은맛이 우러나며 색깔도 진하다. 국을 끓일 때 사용하는 국간장보다 진간장이 더 짜고 검은 것도 그래서다.
손질한 양파와 대파, 청양고추.
반백 년 전 식구들의 끼니를 책임지는 주부들은 된장을 담그는 일을 단순한 살림살이를 넘어 숭고한 의식으로 여겼다. 길일(吉日)을 택해 메주를 띄운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메주 띄우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 무렵, 어머니는 물에 불린 콩을 삶아 물기를 제거하고 절구에 찧은 뒤 사각형 모양의 메주를 빚어 보자기로 감싼 다음 안방에서 이불을 덮어씌워 띄웠다. 건조 시기를 앞당겨 발효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발효는 미생물이 활동한다는 증거로 그 과정에서 다양한 맛과 특유의 향이 생성된다. 이때 지나치게 건조되거나 과잉 발효되면 자칫 메주 띄우기를 그르칠 수도 있어 어머니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메주를 띄울 동안 방안에서는 구린 냄새가 진동했다. 코를 막아도 콧속 깊숙이 파고드는 사납고 역겨운 냄새를 이듬해 봄까지 견뎌야 했다. 메주를 띄우는 냄새는 메주가 발효된다는 신호였고 냄새가 강할수록 발효의 완성도도 높았던지라 식구들 모두 기꺼이 감내해야 했다.
호박과 버섯, 두부.
봄이 찾아오면 봄볕에 메주를 말리는 일이 이어졌고 수분이 다 날아간 메주를 장독에 넣고 소금물을 가득 부은 뒤 뚜껑을 닫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두 달 이상 발효시켰다. 특이한 점은 숯 몇 덩이와 붉은 고추 몇 개도 장독 안에 꼭 넣고 메주를 띄웠다는 것이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액운을 쫓는다는 주술적 의미와 함께 살균과 탈취 효과를 위한 살림살이의 지혜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메주가 다 띄워져 된장이 만들어지면 장독 뚜껑을 열고 간장 물을 퍼낸 뒤 된장을 다른 장독에 옮겨 숙성 작업에 들어갔다. 숙성은 된장 맛을 책임지는 또 다른 통과의례다.
나는 바지락 대신 우렁이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인다.
간장 제조는 지금부터다. 콩과 소금이 액체로 숙성된 장(醬)물을 체에 거른 다음 그 물을 달여서 간장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국간장이라고 하는 재래식 간장이다. 진간장은 달이고 난 간장의 발효 기간이 6개월 이상으로 국간장보다 훨씬 짜다.
#각양각색인 된장찌개의 맛
된장찌개를 끓이는 데에 필요한 식재료는 된장과 두부, 애호박, 대파, 양파, 감자, 팽이버섯, 표고버섯, 다진 마늘, 청양고추 등이다. 냉이와 쑥, 달래, 무 따위를 넣기도 하고 바지락이나 우렁이, 홍게, 꽃게를 추가해 요리하기도 한다. 해물이 들어가면 된장찌개에서 시원한 맛이 난다.
육수가 끓으면 된장을 풀고 무를 넣은 뒤 중 약불에 맞춘다.
된장 맛과 된장과 물의 비율, 식재료의 선택에 따라 된장찌개의 맛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 된장찌개의 맛을 좌우하는 풍미의 방향타는 역시 된장이다. 기본적으로 된장이 맛있어야 된장찌개가 맛있다. 이런 이유로 소금이나 간장 등의 간 조절 양념을 넣기보다는 오로지 된장만으로 간을 맞춰 끓였을 때 된장찌개다운 맛을 만끽할 수 있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심지어 쌈장을 된장찌개에 사용하기도 한다는데 어디까지나 요리사 마음이다.
나는 주말에 된장찌개를 이렇게 끓인다.
1. 멸치 육수를 낸다.
2. 육수가 끓으면 된장 세 큰술을 풀고 나박썰기한 무를 넣고 중 약불에 맞춘다.
3.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반 큰술, 애호박, 양파, 우렁이 한 줌, 청양고추, 버섯, 두부를 추가하고 계속 끓인다.
4. 우렁이가 익고 팔팔 끓을 때 대파를 넣고 2분 후 불을 끈다.
무가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애호박, 양파, 우렁이 한 줌, 청양고추, 버섯, 두부를 추가하고 계속 끓인다.
#미각과 후각
음식은 맛으로도 먹고 향으로도 먹는다고 한다. 음식의 맛과 향은 음식을 먹는 사람과 음식 사이에 작용하는 역학적 힘이 미각과 후각으로 드러난 결과다. 된장찌개의 미각과 후각은 구수함으로 통일성을 보인다. 미각과 후각의 원천 소스는 된장이고 역학적 힘의 실체는 신경계의 중추 기관인 뇌가 내리는 명령 신호다.
결국 된장찌개 맛의 힘은 된장의 힘이다. 된장이 된장찌개 맛을 결정하는 독립변수라면 나머지는 모두 종속변수라고 할 수 있겠다. 독립변수를 어찌할 수 없다면 종속변수에라도 마음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리 솜씨를 연마하고 지극 정성으로 음식을 대하는 자세 말이다.
우렁이가 익고 팔팔 끓을 때 마지막으로 대파를 넣고 2분 후 불을 끈다.
시판(市販) 된장으로 여러 차례 된장찌개를 끓여 봤지만 어렸을 때 먹은 된장찌개 맛을 따라잡기는커녕 스스로 만족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를 각오하고 있다. 된장찌개는 어려운 요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