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문어숙회(文魚熟膾)
26. 문어숙회(文魚熟膾)
#글을 아는 바닷물고기, 문어(文魚)
문어의 한자 명칭은 특이하다. 글월 문(文), 고기 어(魚), 글을 아는 물고기라는 셈인데 문어가 글을 알 리는 만무해 명칭의 유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고기치고는 대단히 이례적인 문어의 명칭을 둘러싸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구전(口傳) 해석은 여럿 있다.
먼저 사람의 머리를 닮은 문어의 생김새와 관련지은 설(設)이다. 인간의 머리를 떠올리게 하는 외양(外樣)을 보고 사람처럼 글을 아는 똑똑한 물고기라고 추정해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문어의 생태적 특성에서 비롯됐다. 문어는 위기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먹물을 내뿜는다. 먹물은 가방끈이 긴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로 유사시 자기 보호 장치인 먹물을 장착한 문어가 글을 읽고 쓰고 배워서 익히는 것을 천직으로 삼는 선비와 닮았다고 주장하는 설이다.
반면 전혀 다른 해석도 있다. 사람의 민머리를 연상케 하는 겉모습의 특징을 음차(音借) 표기한 데서 비롯된 견강부회(牽强附會)식 해석이라는 것이다. 즉 민머리의 ‘민’을 사물의 형상을 본떠 뜻을 새기는 표의문자인 한자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글월 문(文)으로 표기했을 뿐, 문어와 지적 능력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시각이다.
지적 호기심과 이에 대한 탐구 활동을 업(業)으로 삼는 과학자들이 세간의 설왕설래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문어의 학습 능력과 기억 능력을 일부 밝혀냈다. 문어의 유전자 총량, 즉 게놈을 분석한 유전학적인 연구 결과에서도 문어의 지능과 사고 능력이 입증된 바가 있다니 문어는 한자 이름대로 똑똑한 바닷물고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어의 외형적 특징에 빗댄 비유적 용례 중 부정적인 것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어발식 경영’이다. 기업이 본연의 업무를 벗어나 지나치게 무리한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행태를 꼬집은 것으로 다리가 여덟 개인 문어의 겉모습을 정조준해 희화화한 표현이다.
통째로 삶은 문어 한 마리
#경상도 지역의 경조사 필수 음식, 문어
경상도 지역에서 문어는 제사상과 차례상, 잔칫상 등 경조사(慶弔事)에 빠지지 않는 필수 음식이다. 지방마다 문어 요리는 특색이 있는데 한 마리를 통째로 삶아 내놓거나 썰어서 양념 간을 한 뒤 꼬챙이에 꿰어 구운 산적(散炙) 요리 또는 말린 문어의 다리를 가위로 오려 문양을 내는 문어오림 따위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구 일대에서는 제사상(祭祀床)이나 명절 차례상(茶禮床)에 꼭 삶은 문어 한 마리가 통째로 올랐다. 제사를 지낸 뒤에는 삼삼오오 둘러앉아 비빔밥을 중심으로 제수(祭需) 음식을 나눠 먹었다. 제수 음식 중 문어숙회는 어른들이 좋아했고 동태전(凍太煎)과 고구마전, 동그랑땡은 아이들이 좋아했다.
아이들은 대체로 문어숙회 접시에 젓가락을 갖다 대기를 꺼렸다. 아직 문어숙회의 맛을 알기에는 입맛이 여물지 못한 탓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문어숙회 한 점을 집어 초고추장에 찍어 한 입 먹으면 부드러우면서 쫀득하고 담백하면서 매콤 새콤한 맛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한참 시간이 걸렸다. 어린 나에게 문어숙회는 부드럽고 쫀득하다기보다 물컹물컹한 느낌이 거북한 식감으로 다가와 비위에 거슬렸다.
문어숙회와 초장
#상갓집에서 마주친 문어숙회에 대한 기억
상갓집에서도 문어숙회는 홀로 빛을 발한다.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그 점을 처음 목격했다. 20여 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면 이렇다.
2002년 11월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느닷없는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는 2개월여 만에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영정(影幀) 사진 속에서 아버지는 나와 두 형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고 우리 3형제는 아버지 앞에서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사무친 나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꺼이꺼이 소리내어 울었다.
아버지의 웃음은 과거의 시간에 박제된 것이라 정지된 것이었으나 현재의 웃음 같아 죽음을 실감할 수 없었다. 우리 형제의 울음은 현재의 시간에 세팅된 것이라 멈춤의 순간을 알 수 없어 죽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문상객들은 소주를 마시면서 안주를 집어 먹었고 안주를 집어 먹으면서 소주를 마셨다. 문상객들의 식탁 위에는 문어숙회가 놓여 있었다.
문어숙회는 빠르게 없어졌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문어 접시가 올라왔다. 문상객들은 문어숙회를 맛있게 먹으면서 아버지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대화를 나누었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빈 접시도 늘어만 갔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문어숙회의 다리 부분. 문어는 다릿살이 맛있다.
#아버지의 문어 사랑
생전의 아버지도 문어숙회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온 문어숙회 예찬론자였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큰형도 문어숙회를 좋아했고 둘째 형도 다르지 않았으나 막내인 나는 뒤늦게 그 맛을 알게 됐다. 어릴 때 각인된 문어숙회에 대한 부정적 잔상(殘像)이 꽤 오랫동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아주 우연히 술자리에서 마주친 문어숙회의 거부할 수 없는 맛에 반한 이후로 문어숙회는 내가 애지중지하는 안줏거리가 됐다. 아버지의 막냇손자, 즉 나의 아들은 나보다 훨씬 빨리 문어숙회의 맛을 알아버렸으니 문어 사랑에서만큼은 아들도 할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적인 9월 더위로 가을 추(秋) 추석(秋夕)이 아니라 여름 하(夏) 하석(夏夕)이라는 신조어 푸념까지 등장한 우리집 명절 차례상에도 어김없이 문어가 올랐다. 국내산 700g짜리 삶은 문어를 주문했는데 차례를 지내고 먹어본 결과 다소 아쉬운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소주 한 잔을 털어 넣고 문어숙회 한 점을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접시에 담긴 문어의 비주얼에서 뭔가 부족한 낌새가 보이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쫀득함보다 다소 물컹한 식감이 앞선 것이었다. 삶은 문어의 맛을 좌우하는 데치는 시간이 너무 짧아 벌어진 결과였다.
문어는 크기에 따라 데치는 시간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1kg 미만짜리는 7~8분, 1kg 이상은 12~15분 정도 데칠 때 쫀득한 식감이 살아 있다고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문어를 젓가락으로 찔렀을 때 무르지도 딱딱하지도 않게 적당한 저항감이 느껴질 때 꺼내는 것이다.
어쨌거나 문어숙회 킬러나 다름없는 아들은 혼자서 한 마리의 거의 60~70%를 먹어 치우는 왕성한 식욕을 내보이고는 자기 집으로 갔다. 남은 문어는 냉동 보관한 뒤 술안주로 먹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