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학기가 끝나면 고향집에서 방학을 보냈다. 할머니의 피를 물려받아 술을 좋아한 나는 지금은 사라진 대구의 명물 대구백화점 뒤 먹자골목을 번질나게 드나들었다. 1980년대 초중반 종로서적이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것처럼 그 시절 대구백화점도 그러했다. 당시 대구 최고의 번화가는 동성로였고 대구백화점은 동성로의 한복판에 있었다. 대구백화점 앞은 늘 청춘들로 북적였고 그곳은 약속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모임의 랜드마크였다.
대구백화점 뒷골목에는 술값이 저렴한 선술집들이 즐비했다. 사통팔달(四通八達)의 교통 요충지라는 지리적 이점에 더해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이 청춘의 밤을 적시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었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흘러넘칠 듯 출렁대는 막걸리가 가득 담겨 있었고 안주 하나에 공짜로 딸려 나오는 먹거리가 푸짐했다. 주로 시키는 안줏거리는 고갈비나 오징어숙회, 오징어무침, 파전 따위였고 번데기와 삶은 다슬기, 땅콩, 콩나물무침, 무생채 등 헤아릴 수 없는 무료 안주가 무제한으로 제공됐다.
30분쯤 찬물에 불린 북어.
#사납고 고약한 막걸리의 숙취
내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제 집 드나들 듯 애용한 곳은 임금의 딸을 일컫는 호칭을 상호(商號)로 사용했는데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공짜 안주가 열서너 가지는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술값 싸겠다, 안줏값 싸겠다, 공짜 안주 무제한이겠다, 밤새워 거나하게 퍼마신 후유증은 다음 날 오전 내내 맹위를 떨쳤다.
알다시피 막걸리가 유발한 숙취는 사납고 고약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속은 메슥거리고 뒤틀리며 신물까지 올라와 눈앞이 노래진다. 막걸리에 취한 냄새는 옆 사람도 금방 알아챌 정도로 거슬린다. 오전 내내 숙취의 터널에 갇혀 끙끙댈 때마다 어머니는 꿀물 한 잔을 건넸다. 꿀물을 마시면 신기하게도 쓰린 속이 풀렸다.
실제로 꿀은 알코올을 분해하는 고당도(高糖度) 식품이라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고 술로 만신창이가 된 위를 보호해 주는 효능이 있다. 꿀물 한 잔에 콩나물국이나 북엇국을 마시듯 들이키고 나면 끈질기게 괴롭히던 숙취의 심술궂은 성미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불린 북어의 물기를 짜낸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술꾼과 술, 해장국
애주가(愛酒家)들은 숙명적으로 해장국을 좋아한다. 술을 사랑하는 술꾼들이 술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해장국 또한 그러하다. 술은 사랑하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고 해장국은 숙취(宿醉) 때문에 마다할 수 없다. 술꾼과 술, 숙취는 하나의 궤적으로 이어진 방정식과 같은 것이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과음한 다음 날 속이 쓰리고 머리가 띵한 숙취의 민낯은 술꾼들이라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익숙한 통과의례다.
술꾼들이 음주(飮酒)의 대가로 의식처럼 치르는 숙취 해소용 음식인 해장국을 찾는 것은 그런 점에서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해장국이 한끼 식사를 때우는 음식이라면 술꾼들에게 해장국은 쓰린 속을 달래고 컨디션을 회복하는 보약이자 치료제인 셈이다. 해장국의 역사가 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을 것으로 짐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두르고 북어를 볶는다.
속풀이 해장국 중 콩나물국과 북엇국은 국민 해장국으로 불릴 만큼 대표적인 숙취 해소 음식이다. 식재료를 구하기 쉽고 집에서도 간편하게 차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콩나물국과 북엇국은 예나 지금이나 가정집 밥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친근한 음식이자 술기운을 쫓는 만만한 해장국이다.
콩나물국과 북엇국 외에도 주당(酒黨)들이 앞다퉈 찾는 해장국은 여럿 있다. 서민 해장국의 상징과 같은 선짓국을 비롯해 뼈해장국, 값비싼 생선인 복어로 끓이는 복국, 다슬기국, 곰칫국, 재첩국, 제주도 지역 음식인 몸국도 해장용이며 육개장과 순댓국을 술 마신 뒤에 먹기도 한다. 괴로운 속을 보듬어주는 시원한 맛의 끝판왕, 생대구 맑은탕(지리)도 훌륭한 해장국이 아닐 수 없다.
물을 붓고 다시마 한 장을 넣고 팔팔 끓인다.
#칼국수 국물과 해장
해장과는 상관없어 보이지만 술꾼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색적인 해장 음식도 있다. 직장인들이 몰려 있는 무교동에 점심때만 되면 줄을 서는 곳이 있는데 바로 조개칼국수를 먹기 위해서다. 사회생활 초년병 시절, 직장 선배들 꽁무니를 부리나케 쫓아 조개칼국수를 먹었을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전날 과음한 마당에 생뚱맞게 웬 칼국수, 라며 속으로 투덜대며 국물을 한 입 삼키는 순간 신세계가 펼쳐졌다. 칼국수의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마다 간밤에 자의(自意) 반(半) 타의(他意) 반(半)으로 축적된 알코올 피로도가 저만치 달아났다.
유달리 칼국수를 좋아한 나로서도 처음 느낀 칼국수의 새로운 맛이었다. 지금껏 알던 칼국수와는 다른 맛의 정점에는 국물이 버티고 있었다. 칼국수로도 해장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 이후 직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을 단골로 드나들며 속을 풀었다.
달걀물을 만들고 대파도 송송 썬다.
#전설적인 북엇국 노포(老鋪)
무교동에는 또 하나의 전설적인 해장국 전문점이 있다. 오늘의 주제, 북엇국에 관한 이야기다. 북엇국 하나만으로 무교동 일대를 60년 가까이 평정한 북어 해장국 노포(老鋪)다. 입사 첫해인 1988년 늦은 봄 새벽, 이 집의 북엇국을 처음 먹었다. 지금은 아침 7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나 그때는 새벽 장사도 했었다.
메뉴는 오로지 북엇국뿐. 옛날을 회상한 1980년대 후반의 북엇국 식당의 분위기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직원) “빼기요? 아니요?” (자리에 앉자마자 북어채를 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묻는 내용)
(손님) “빼기요~”
짧은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밥 한 공기와 북어채를 뺀 북엇국, 물김치가 번개처럼 눈앞에 놓인다. 추가 반찬은 부추무침 하나. 테이블에 비치된 새우젓 양념통 뚜껑을 열고 간을 맞추고 먹기 시작한다. 밥도 리필, 북엇국도 리필 가능하다. 주류(酒類)는 없다. 단일 메뉴인 점과 함께 테이블 회전이 아주 빠른 이유다. 오전 11시 조금 넘자마자 좁은 골목길에 대기 손님들이 장사진을 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달걀물을 붓고 대파를 넣는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것도 있다. 새벽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테이블마다 세 가지 반찬을 덜어서 먹을 수 있는 반찬통이 따로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반찬통에는 부추무침과 배추김치, 오이지가 들어 있다. 북엇국과 동시에 나오는 물김치는 그대로고 북엇국 맛도 그대로다. 간판에 적힌 상호(商號)는 평범하고 단순하다. 무교동이라는 단어와 북어라는 단어를 합친 이름이다. 개점 연도는 1968년. 노포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역사다.
북엇국에 들어가는 식재료는 북어채와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두부, 대파, 달걀물이 전부다. 이 집 북엇국 명성의 비법은 역시 국물 맛에 있다. 사골육수로 우려낸 국물 맛이 깔끔하고 부드러우면서 시원해 과음에 찌든 속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탁월하다.
바깥에서 북엇국을 숱하게 먹어보고 집에서도 북엇국을 여러 차례 끓여봤지만 무교동 북엇국의 맛에는 범접할 수 없었다. 한 번이라도 무교동 북엇국을 먹어본 사람은 특별한 북엇국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오랜 세월 동안 문전성시를 이루는 비결이다.
마지막으로 후추를 치고 불을 끈다.
북엇국은 과음의 늪에 빠지기 쉬운 직장 회식 다음 날 숙취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호천사나 다름없는 고마운 음식이다. 다른 해장국과 마찬가지로 북엇국도 해장 음식으로서의 과학적 이유가 있다. 북어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성분이 많아 간 기능 회복에 좋고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북엇국에 콩나물을 넣고 끓이기도 하는데 숙취를 다스려주는 아르지닌이 콩나물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북엇국과 콩나물국을 속풀이 해장국으로 많이 먹는 이유다.
북어는 명태를 말린 것이다. 북어 말고도 명태는 얼리고 녹이거나 건조 상태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식품으로 유통된다. 날 것 그대로의 명태는 생태, 명태를 얼리면 동태, 명태를 겨울바람에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하면 황태, 반건조 명태는 코다리로 부른다.
#북어에 깃든 일화(逸話)
북어와 관련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지금처럼 몸통을 펼치지 않고 통째로 말리고 북어를 잘게 찢은 북어채도 없던 시절, 북엇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갔다. 명태를 바싹 말린 건어물(乾魚物)인 예전 북어의 성정(性情)은 건조 상태가 너무 강건해 나무 막대기처럼 딱딱했다. 어쩔 수 없이 방망이 세례가 필요한 이유다.
그 시절 주부들은 북엇국을 끓이기에 앞서 맺힌 한을 풀 듯, 다듬잇방망이로 북어를 두들겨 패곤 했다. 영문을 알 리 없이 한참 매질을 당한 북어는 그제야 찬물 속으로 들어갔다. 방망이질로 단단한 살의 성미를 누그러뜨리던 북어의 운명에 빗대 북어와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어쩌고저쩌고, 하는 가당치도 않은 말도 나돌 때였다.
북어는 또 새로 개업한 사업장에서 사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낼 때 제물로 쓰이기도 하고 고사 후에는 명주실에 묶어 현관문 위에 걸어두기도 한다. 북어를 액막이의 상징으로 여긴 민간신앙의 영향 때문인데 요즘도 그런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전통 혼례식이 대세일 때 갓 결혼한 새신랑의 발을 묶고 북어로 발바닥을 때리는 풍습도 있었고 화가들이 정물화의 소재로 북어를 그리는 모습은 지금도 볼 수 있다. 건어물이라 빛이 바래지 않고 상하지도 않아 오래 두고 묘사할 수 있고 붓질의 질감을 표현하기에 유용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북어는 술안주로도 존재감을 발휘한다. 잘게 찢은 북어를 고추장이나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 모습은 요즘도 술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콩나물국과 함께 국민 해장국으로 사랑받는 북엇국.
주말 밥상에 내가 한 번씩 올리는 우리집 북엇국 요리법은 다음과 같다.
1. 북어나 북어채를 찬물에 30분 정도 담가 불린다.
2. 물기를 짜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 참기름이나 들기름에 볶는다.
3. 물을 붓고 다시마 한 장을 넣고 끓인다.
4. 육수가 비등점을 돌파하면 중 약불로 낮추고 다진 마늘을 넣은 뒤 국간장 두 큰술과 소금으로 간을 조절한다.
5. 5분 후 다시마를 건져내고 대파와 달걀물을 붓고 달걀이 엉기지 않게 몇 번 저어준 뒤 2~3분 지나 후추를 친 다음 불을 끈다. 두부는 넣을 때도 있고 넣지 않을 때도 있다. 두부를 넣으면 포만감은 증가하나 텁텁한 맛이 난다. 콩나물을 넣으면 시원한 맛이 업그레이드 되지만 북엇국 특유의 맛이 반감돼 호불호가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