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카레라이스
30. 카레라이스
#일본 카레를 처음 맛본 날
30년 전 이맘때 일본 히로시마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료들과 간단하면서 빨리 점심 끼니를 때울 음식을 찾다가 카레라이스라고 적힌 간판에 모두의 눈길이 쏠렸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음식이라 맛도 별반 차이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이심전심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일행 모두 일본어에 서툴렀으나 다행히 메뉴판에는 일본어를 몰라도 주문할 수 있게끔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한국에서 먹던 비주얼과 비슷한, 밥에 카레가 얹어진 메뉴를 선택했다.
예상대로 음식은 빨리 나왔고 노랑이 아닌 갈색의 카레 색깔이 낯설었으나 맛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국물이 없어 카레라이스를 먹는 내내 목이 메어 어쩔 수 없이 애꿎은 물만 계속 들이켰다. 으레 국물이 딸려 나오는 우리 식 음식 문화와는 딴 판이라 일행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밑반찬도 채소 절임 몇 조각이 전부였다. 김치와 단무지 생각이 간절했던 우리가 정작 놀란 이유는 딴 데 있었다.
당근과 감자를 적당한 크기로 깍둑썬다. 양파는 넣을 때도 있고 건너뛸 때도 있다. 이번에는 뺐다.
#카레의 나라, 일본
카레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카레의 종류는 일본인들이 카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우리의 짐작을 훨씬 뛰어넘었다. 밥에 카레를 조금씩 얹어 먹는 카레라이스와 밥 위에 카레를 얹은 카레덮밥이 다양한 이름을 달고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일본 카레는 우리처럼 매운맛의 단계로 나눈 것은 물론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등 식재료에 따라 분류한 것과 치킨과 오믈렛, 소시지, 크로켓 따위의 토핑을 올려 먹는 메뉴까지 선택의 폭이 아주 넓었다. 밥 대신 면(麵)이나 화덕 표면에 밀가루 반죽을 붙여 구워낸 납작한 빵인 난(naan)을 곁들여 먹는 카레도 보였다. 가히 카레의 나라다웠다.
소고기도 썰어서 준비한다.
한국인들에게 카레가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별미 간편식이라면 일본인들에게 카레는 밥상 문화의 중심에 자리한 국민 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사카 출신으로 한국어에도 능통하고 한국인보다 한국 음식을 더 좋아하는 동갑내기 지인에게 카레의 의미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았다.
“일본인들은 카레를 맛으로도 먹고 추억으로도 먹는다. 남녀노소 다 좋아한다. 일본인에게 카레는 향수의 다른 이름이랄 수 있는 애틋한 정서가 깃든 영혼의 음식이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을 먼저 볶은 뒤 당근과 감자를 볶는다.
#카레 요리의 유래
알다시피 카레의 원산지는 향신료의 나라 인도다. 카레는 고기나 생선에 인도 특유의 혼합 향신료인 마살라를 넣고 요리한 스튜 형태의 음식에서 유래했다. 18세기 인도를 식민지화한 영국이 본국으로 마살라를 들여와 빵에 찍어 먹거나 고기와 채소를 넣고 스튜로 만들어 먹으면서 커리(curry)라고 이름 지었다.
영국인들은 마살라를 가공해 물만 붓고 끓이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분말형 커리를 개발했는데 이를 계기로 커리는 빠르게 영국 음식화됐다. 간편하고 즉석에서 요리가 가능한 특성 때문에 커리는 영국 해군의 군대 식량으로 대량 보급되면서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영국의 커리처럼 일본 카레의 시발점도 전투식량이었다. 19세기 말 요코하마 남쪽의 요코스카항에 주둔한 영국 해군의 식단을 본떠 일본 해군에서 밥에 카레를 끼얹어 먹는 카레라이스를 개발한 게 일본 카레 음식의 시초였다고 한다. 일본 해군이 영국식 카레를 벤치마킹한 이유는 각기병 때문이었다.
당근과 감자가 어느 정도 익으면 소고기도 넣고 익힌다.
당시 일본 해군들 사이에서는 비타민 B1의 결핍으로 인한 영양실조 증상인 각기병 환자가 속출해 사망하는 사고가 다반사였다. 쌀밥 위주의 식습관이 원인으로 드러나자 고기와 채소에다 카레 가루를 섞어 만들어 영양가가 풍부한 영국식 카레를 흉내 낸 일본식 카레라이스를 고안한 것이다.
일본 해군을 통해 알려진 카레는 가정 간편식 레토르트 식품으로 선보이면서 오늘날 일본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보편적인 음식의 하나가 됐다. 레토르트 식품은 조리한 음식을 고압으로 가열해 멸균 처리한 뒤 밀봉한 보존식품이라 물만 붓고 끓이거나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통칭한다.
일제강점기 때 카레의 존재가 알려진 우리나라에는 1969년 처음 국산 제품이 소개된 이후 1981년 3분 즉석 카레의 출시로 빠르게 대중화됐다. 매운맛의 정도를 선택할 수 있는 분말형 제품과 레토르트형 제품이 있다. 일반적으로 카레라이스는 카레와 밥을 그릇에 나란히 병치시킨 것이고 카레덮밥은 밥 위에 카레를 얹은 것이다.
물을 붓고 끓인다.
인도에서 영국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카레는 현지의 음식문화가 반영돼 각기 다른 버전으로 재탄생했다. 우리나라나 영국이나 일본이나 인도식과는 향신료의 종류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인도에서는 거의 모든 요리에 마살라가 들어가기에 단일 음식을 뜻하는 우리의 카레와는 뚜렷이 구분된다. 향신료의 나라답게 인도 국민은 요리할 때 수십 종의 향신료를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음식의 국경이 허물어지면서 우리나라에도 일본식 카레와 인도식 카레를 먹을 수 있는 카레 전문점이 곳곳에 널려 있다.
물이 끓으면 카레 가루를 조금씩 넣고 저어서 풀어준다.
#간편식의 대명사 카레
카레는 향이 강하고 맛이 자극적이라 입맛이 없을 때 한 번씩 생각나는 간단하고 편리한 음식이다. 걸쭉한 카레를 밥에 얹어 먹거나 비벼 먹으면 입맛이 살아난다. 우리집 밥상에도 잊을만하면 모습을 드러내는 카레 요리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다. 우리집에서 먹는 카레는 카레덮밥 스타일이다.
완성된 카레를 밥 위에 얹는다.
1. 소고기를 잘게 썰고 감자와 당근은 깍둑썬다. 양파는 적당한 크기로 손질하는데 넣을 때도 있고 건너뛸 때도 있다.
2.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 한 큰술을 넣고 볶아준다.
3. 감자, 당근을 넣고 중불로 익을 때까지 볶는다.
4. 양파를 썰어 넣고 계속 볶는다. 양파는 고기와 감자, 당근과 달리 오래 익히면 물러져 맛이 덜하다. 맨 나중에 넣는 이유다.
5. 물을 붓고 끓으면 중 약불로 낮추고 카레 가루를 조금씩 뿌리면서 저어준다.
6. 카레 가루가 수분을 빠르게 흡수하기에 물이 적다 싶으면 물을 보충해 주면서 젓기를 반복한다. 카레와 물의 농도는 취향에 따라 조절한다.
7. 카레 가루가 충분히 풀리고 원하는 점성에 이르렀을 때 후추를 몇 번 치고 불을 끈다.
8. 밥 위에 카레를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