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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Sep 27.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28. 꽃게찜

28. 꽃게찜     


#꽃게 철

 꽃게 철이다. 이맘때의 꽃게가 살이 통통하게 올라 육질이 단단하고 영양가도 많아 맛있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수꽃게, 봄에는 암꽃게가 제철이다. 암꽃게는 산란을 시작하는 봄에 알이 꽉 찬다. 올해는 서해 연해의 고수온 탓으로 꽃게 생산량이 지난해 대비 30%가량 감소해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꽃게는 육지와 가까운 모래나 진흙 성분의 바다 밑에서 산다.


쪄서 먹고 탕으로 끓여 먹고 게장으로도 담가 먹는 꽃게의 맛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간장게장의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어본 사람은 다 안다. 게딱지가 왜 밥도둑인지를. 맛도 맛이지만 꽃게는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다. 철분, 칼슘, 아연 따위의 미네랄과 비타민,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고 고단백 저지방 식품이라 건강에 좋다. 원기 회복과 뼈를 튼튼하게 해 주고 콜레스테롤과 혈당 관리에도 유익하다.     


가을이 제철인 수꽃게


#정약전도 인정한 꽃게 맛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저자 정약전(1758~1816)도 꽃게의 맛을 인정했다. 정약전은 1814년에 저술한 해양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에서 꽃게를 화살 시(矢), 게 해(蟹), 시해(矢蟹)라 이름 지으며 맛이 달고 좋다고 했다. 그렇게 작명(作名)한 이유로 두 눈가에 있는 0.1척(3.03cm) 남짓한 송곳 모양 때문이라고 적어 놓았다.


민간에서 부르는 속명(俗名)은 죽일 살(殺), 꽃게 발 궤(跪), 살궤(殺跪)라고 병기(竝起)했다. 생명체를 죽일 정도로 날카롭고 강한 집게발 때문에 유래된 이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정약전의 동생인 정약용(1762~1836)의 제자로 자산어보의 문헌 고증을 담당한 이 청(1792~1861)은 호랑이와도 겨룰만하고 집게발로 사람을 잘라 죽일 수도 있다고 고증 기록을 남겼다.


정약전은 또 달리기만 하는 다른 게와 달리 꽃게는 부채 모양의 다리가 있어 헤엄을 칠 수 있다고 기술했다. 학문적 탐구심이 남다른 정약전다운 관찰력이다.
<자산어보, 정약전 · 이청 지음, 정명현 옮김, 서해문집, 2021, p131에 나오는 내용을 참조>     


 꽃게가 들으면 인상을 찌푸릴 짓궂은 표현도 있다. 아가미 호흡을 하는 꽃게는 물 밖에서는 살 수 없어 물 밖에서는 거품을 물다 죽는다. 게거품을 물다, 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      


냄비에 물을 붓고 된장 한 큰술과 소주 한 잔을 섞어준다.


#꽃게찜의 추억

 내가 중고등학교 때는 활어차(活魚車)가 없었다. 활어회를 먹으려면 바닷가 지역으로 가야 해 내륙 지방에서는 꿈도 못 꾸었다. 길거리 리어카에서 파는 멍게와 해삼, 홍게찜을 빼면 대구의 고향집에서 먹을 수 있었던 해산물 요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해동한 냉동 붕장어를 뼈째 얇게 저미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붕장어회였고 다른 하나는 꽃게찜이었다. 붕장어회는 수시로 먹었고 꽃게찜은 가을이나 봄에 주로 먹었다. 붕장어회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고 뼈째 씹히는 식감이 식욕을 돋워 먹을 때마다 즐거웠다. 붕장어회를 대구에서는 아나고회라 불렀다. 아나고(あなご)는 붕장어의 일본말이다.     


꽃게찜을 먹고 나면 어머니는 꼭 이렇게 우리 형제들에게 신신당부했다.

“하루 동안 절대 감 먹으면 안 된다, 알았제? 감 먹으면 배에서 난리 난데이.”     


 오늘은 거부할 수 없는 맛 때문에 매력덩어리의 별미 음식인 꽃게찜 이야기다.

봄, 가을 밥상에 꽃게찜이 오르는 날은 우리 형제 모두 과식(過食)을 피할 수 없었다. 찰지게 살이 오른 열댓 마리의 꽃게는 먹음직스러운 비주얼로 식탐을 유혹했다. 아버지는 꽃게찜보다 붕장어회를 좋아했고 우리 형제들은 반대였다. 아버지는 늘 잘린 꽃게의 몸통 두세 조각만 드시고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 아버지가 스스로 양보한 꽃게찜의 양만큼 나와 두 형들의 몫이 늘어났다.      


깨끗이 씻어 손질한 꽃게의 배가 위로 향하도록 채반에 얹는다.     


꽃게의 몸통에는 살이 꽉 차 있어 먹을 게 많았고 바다 냄새가 풍겼다. 몸통은 입으로 뜯어먹었고 다리는 끄트머리를 끊어낸 뒤 한쪽 면을 가위로 길게 세로로 잘라 젓가락으로 살을 파먹었다. 제철 꽃게의 살은 탱글탱글하면서 부드럽고 달고 고소하면서 짭짤했다. 네 마리쯤 먹고 나면 입에서 비릿한 향이 올라왔다. 밥상 위에 꽃게 살을 발라 먹은 흔적인 꽃게 껍데기가 수북이 쌓였다.     


예나 지금이나 꽃게를 먹을 때 누구나 느끼는 아쉬운 점 하나가 살을 발라내기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껍데기가 아주 단단한 다리 살은 특히 더 그렇다. 몸통 살에 비해 살이 적고 발라 먹기도 힘든 대신 감칠맛은 더 낫다.


산란기가 시작되는 봄에는 암꽃게, 가을에는 수꽃게를 먹었다. 특히 암꽃게는 등딱지 속 깊숙한 곳에도 알이 촘촘히 박혀 있어 젓가락과 숟가락으로 알뜰하게 파먹는 것을 잊지 않았다. 꽃게찜을 다 먹고는 국물 위주로 끓인 꽃게탕에 밥을 말아 먹었다. 텁텁하게 더부룩해진 속이 매콤한 국물 맛에 뻥 뚫렸다. 꽃게찜이 아무리 맛있어도 역시 마무리는 밥이다.     


밥상을 치우면서 어머니는 늘 하던 말을 또 했다.

“감 먹지 마래이.”     


완성된 꽃게찜. 배 부분의 긴 삼각형 모양에서 수꽃게임을 알 수 있다. 암꽃게의 배는 넓고 둥글다.


#꽃게와 감

 꽃게와 감 사이에는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꽃게찜을 먹을 때마다 어머니가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을까. 그 궁금증은 한참 세월이 지나 풀렸다. 꽃게와 마찬가지로 감도 가을이 제철인 가을 과일이다. 꽃게를 먹고서 무심결에 감을 씹어 먹으면 배가 뒤틀리고 설사가 날 수 있다. 이유는 감과 꽃게에 함유된 성분 때문이다.


감에는 떫은맛을 내는 타닌 성분이 들어 있고 꽃게에는 식중독을 유발하는 세균인 비브리오가 포함돼 있다. 타닌 성분과 비브리오가 충돌하면 세균이 번식하기 쉬워 소화 장애와 복통, 설사를 일으킨다. 그래서 두 음식은 상극이다.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우리에게 한 말속에는 그런 뜻이 숨어 있다. 어머니도 어머니의 어머니, 즉 나의 외할머니로부터 그런 말을 숱하게 들었을 것이다. 구전(口傳)으로 전해 내려오는 비법이나 처방 중에도 귀담아들을 만한 것이 있다.      


등딱지와 먹기 좋게 자른 꽃게찜. 이제부터 꽃게찜과의 행복한 전쟁이다.


 *나는 꽃게를 이렇게 찐다.     

1. 흐르는 물에 꽃게를 깨끗이 씻고 주방용 솔로 꽃게의 몸통과 다리, 구석구석을 문질러 이물질을 제거한다.

2. 꽃게의 눈과 입, 다리 끝의 날카로운 부분을 가위로 자른다.

3. 찜기 바닥에 물을 붓고 된장 한 큰술과 소주 한 잔을 넣고 섞는다. 손가락 마디 크기로 썬 대파와 네댓 개의 통마늘을 함께 넣어도 된다.

4. 꽃게의 배 부분이 위로 향하도록 찜기에 올린다. 꽃게의 내장과 육즙이 새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리는 펼쳐서 골고루 익도록 한다.

5. 물이 끓으면 중불로 낮추고 15분가량 찐 뒤 불을 끄고 5분 동안 뜸을 들인다.

6. 꽃게를 들어내고 등딱지를 떼 낸 뒤 몸통과 다리를 분리한다. 몸통은 먹기 좋은 크기로 두세 등분한다.      


 꽃게찜은 그냥 먹어도 맛있고 간장에 고추냉이를 푼 소스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꽃게찜을 다 먹고 난 뒤 다리 몇 개를 넣고 끓인 라면으로 뒤풀이를 하면 속이 개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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