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 세기의 화가들Ⅰ

5.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by 박인권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미술에 문외한이더라도 반 고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흐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 친근한 화가다. 고흐의 삶과 그림 세계를 소재로 출간된 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서양 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고흐의 그림은 강렬하다. 고흐의 인생도 드라마틱하다. 그림으로나, 삶으로나 고흐는 인상 깊은 인물이다.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37살의 젊은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신질환과 싸우면서도 10년 동안 9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살아생전에 팔린 그림은 단 1점. 고흐의 삶 전체가 스토리텔링이다.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82 x 114cm, 캔버스에 유화, 1885.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4살 아래의 동생 테오와 죽기 직전까지 주고받은 편지만 660여 통.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작품 세계, 화가로서의 고단한 삶이 편지 속에 드러나 있다. 모국어인 네덜란드어와 영어, 프랑스어로 작성된 고흐의 서간집은 그의 화풍(畵風)과 삶을 연구하는 자서전적 자료로 손색이 없다. 불우한 삶, 정신병, 광기, 천재성은 고흐의 다른 이름이다.


목사의 아들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그루트 준데르트에서 목회자인 부친 테오도루스 반 고흐의 아들로 태어났다. 1년 전 모친 안나 코르넬리아 카르벤투스는 형을 낳았으나 얼마 안가 사망하는 바람에 고흐는 집안의 장남으로 성장했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 탓에 기숙학교를 중퇴한 고흐는 1869년 16살의 나이로 삼촌의 주선으로 구필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일하게 됐으나, 1876년 다니던 구필화랑 파리 본점에서 해고를 당하면서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에 몰두한다.


전도사의 꿈을 접고 화가의 길로.

운명의 장난인가. 1878년, 암스테르담 신학대학 시험에 낙방한 뒤 벨기에의 광산촌 보리나주에서 전도 활동을 하던 고흐는 동생 테오의 제의로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1880년, 고흐의 나이 27살 때다.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단순한 형제가 아니었다. 테오는 고흐를 화가의 길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평생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은 촉매이자 경제적인 후원자 겸 삶의 동반자였다. 고흐가 생을 마감하고 6개월 뒤, 테오도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고흐의 곁에 묻혔다.


독학으로 그림의 세계에 입문.

고흐는 정규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기질적으로도 전통적인 아카데미 교육과는 맞지 않았다. 미술 입문 초기, 동생 테오의 소개로 만난 라파르트라는 젊은 화가와 외가의 인척으로 현역 화가였던 안톤 모우베와 교류하며 그림의 원리를 익혔다. 고흐는 ‘빛의 화가’로 유명한 렘브란트와 프란츠 할스, 두 네덜란드 선배 화가의 그림을 분석하며 독학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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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미술관 전경. 왼쪽에 보이는 타원형 건물이 1999년에 새로 지은 부속 전시관이다. ©Silva.1994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감자 먹는 사람들’은 고흐가 벨기에 브뤼셀의 북동쪽 브라반트의 누에넨 마을에 체류할 때 그린 작품이다. 1885년까지 헤이그와 에텐, 누에넨을 오가며 작업에 몰두한 고흐는 노동자와 농부, 노인 등 비루한 환경에서 소외당한, 그러나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거칠고 투박한 형태와 강렬한 선으로 표현해냈다. 이 시기의 고흐 작품은 전체적인 색조가 두드러지게 어두운데, 파리와 아를, 생레미, 오베르 시절의 그림들과는 깜짝 놀랄 정도로 판이하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고흐의 초기 작품, 이른바 네덜란드 시기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세로 82cm, 가로 114cm 크기로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그림이다. 제작 연도는 188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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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수아 밀레, 만종, 캔버스에 유화, 55.5 x 66cm, 1857~1859,

오르세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고흐 스스로 밝혔듯이, ‘감자 먹는 사람들’은 땅을 일구느라 거칠어진 손마디를 통해 비록 가난하지만 정직한 노동의 의미를 일깨우는 농민들의 삶을 전달하고자 제작됐다. 고흐가 습작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 밀레의 ‘만종’, ‘이삭줍기’에 나오는 평화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경건하고 부드럽고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농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림 속 인물들을 보자. 휑한 눈과 툭 튀어나온 광대뼈, 과장되게 표현된 코, 뼈가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거친 손마디는 밀레의 그림 속 농부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고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의 손,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하고자 했다. 손으로 일군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임을 암시하는 것이지.”(가셰 박사의 초상, 신시아 살츠만 지음, 강주헌 옮김, 예담, 2002, p4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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