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의 정거장에서

24. 기차 여행

by 박인권

24. 기차 여행


#기차선로와 마찰음

기차의 선로(線路)는 평행선이라 그 끝이 아득하여 오히려 정겹다. 가늠할 수 없는 기찻길의 향방이 아껴둔 설렘과 꿈을 실어 어딘가로 데려간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기차는 세상에서 가장 긴 차(車)다. 차체의 크기나 중량감이 다른 교통수단을 압도한다. 쾌적함과 안락함에서 기차는 단연 으뜸이다.


기차 여행은 낭만적이다. 육중한 쇳덩어리가 곡선 구간을 미끄러질 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객차 행렬은 꿈틀거리는 그림으로 다가온다. 기차가 달리는 내내 바퀴와 선로가 부딪혀 내는 마찰음은 4분의 3박자 리듬으로 규칙적이고 반복적인데 그 소리의 음률이 박진감 넘치면서도 흥미롭다. 차창 밖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기차와 함께 달려가는 여행자가 콧노래를 흥얼거릴만하다. 기관사가 속력을 높이면 앞으로 밀고 나가는 기차의 속도감도 빨라지고 덜컹거리는 소리를 연신 쏟아내는 마찰음의 숨도 덩달아 가빠진다.


#기찻길 옆 풍경

한적한 시골 간이역의 기찻길 정경(情景)을 잊을 수 없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다. 설악산으로 향하는 기차가 낯선 이름의 강원도 어느 간이역을 지날 때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선로 주변의 경치는 평화로우면서 아름다웠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라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기찻길의 목가적(牧歌的)인 정취와 달리 객실 안을 가득 메운 까까머리에 검은 교복을 걸친 청춘들의 초상(肖像)은 끓어오르는 사춘기의 열정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기차 여행은 매력적이다. 기차에 몸을 싣고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자가 옆자리와 앞자리의 일행(一行)과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情談)은 시간을 추억 속에 박제시키는 그리움의 비망록이다.


#기차 여행과 군것질

1970~80년대 기차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하나가 있었다. 먹는 즐거움, 군것질이다. 희한하게 기차만 타면 배가 고팠다. 삶이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 배불리 먹고 싶은 욕망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 언제 다시 떠날지 모를 꿈에 부푼 여행길에서 평소 어쩔 수 없이 억눌렀던 식탐의 유혹을 떨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본능적 반응이었을 것이다.


바퀴가 달린 작은 손수레를 밀면서 객실과 객실 사이를 오가는 승무원의 손길도 바빴다. 손수레에는 마른오징어와 땅콩, 삶은 달걀, 김밥, 카스텔라, 사이다, 과자, 사탕, 풍선껌 따위의 먹음직스러운 간식거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손수레를 보는 순간, 잠자코 있던 식욕이 별안간 발동해 너나 할 것 없이 먹거리를 챙겼다.


말투나 행동거지에서 친구임이 분명한 남성들끼리 640ml짜리 병맥주를 물컵 크기의 플라스틱 컵에 따라 연거푸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얼큰하게 취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의기(意氣)가 투합(投合)하면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세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개방적이고 여유로운 객실 분위기도 기차 여행에서 누리는 재미다.


기차 객실 안은 이름 모를 군상(群像)들의 희로애락이 얽히고설켜 한숨과 탄성이 알몸을 드러내는 삶의 또 다른 현장이었다.


#교외선 열차의 재개통

교외선(郊外線) 열차가 되살아났다고 한다. 20년 만이다. 베이비 붐 세대에게 교외선은 각별하다. 그들에게 교외선은 젊은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을 불러내는 청춘의 흔적, 흑백 필름과 같은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교외선이라는 말만으로 애틋함과 그리움의 상념에 빠져드는 것이다.


2025년 1월 11일, 고양시와 의정부시를 잇는 교외선이 재개통됐다. 대곡역~원릉역~일영역~장흥역~송추역~의정부역 여섯 개 구간의 총연장 30.5km에 이르는 노선이다. 시속 50km로 달리는 느림의 미학을 50분간 음미할 수 있는 교외선은 1961년 7월 능곡역과 의정부역의 앞 글자를 따 능의선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구간이 먼저 개통하면서 출발했다. 1963년 8월 전 구간을 운행하면서 서울교외선으로 노선 이름이 변경, 확정됐다.


90년대 들어 도시 순환 고속도로인 서울외곽순환도로가 뚫리고 수도권 광역 전철망이 개통하자 승객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2004년 8월 운행이 중단됐다.


이번에 다시 개통한 교외선 구간 중 장흥과 송추는 198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중장년층에게 MT(Membership Training)의 성지(聖地)로 유명했다. 교외선과 함께 지금의 경의 중앙선의 전신(前身)인 옛 경의선(서부역~문산역)도 베이비 붐 세대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많았다. 나는 대학 졸업반이던 1984년 봄에 경의선을 마지막으로 탔다.


#기찻길에 대한 슬픈 기억

2004년 꿈의 열차, KTX 시대가 열리면서 기차 여행의 정취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군것질거리를 파는 이동용 손수레도 사라진 지 오래라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객실 내에서는 큰소리로 대화하는 것을 자제하고 핸드폰 통화도 객실 밖 통로를 이용하라는 안내방송이 수시로 나온다. 빛의 속도로 세상이 변하는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옛날, 기찻길에 대한 슬픈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다. 기차를 타고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상주로 할머니를 뵈러 가던 중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대구역에서 경부선 상행선 열차를 타고 김천에서 내려 경북선으로 갈아탔다. 어두컴컴한 밤에 한참을 달리던 기차가 정차역도 아닌 곳에서 갑자기 멈추어 섰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열차에 사람이 치였다는 소리와 사람이 열차에 뛰어들었다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아버지는 어느 쪽이든 간에 사고를 당한 사람이 죽었을 거라고 말했다. 무서운 밤이었다.


그 무렵, 기차선로에서는 현실에 절망해 모든 것을 포기한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선로 위에 스스로 드러누워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불행한 사연이다. 사연은 신문 사회면에 짤막하게 소개되곤 했다. 가난하고 암울했던 시대의 한 단면이다.


조만간에 교외선 기차를 한 번 타 봐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의 정거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