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19. 비운의 축구 선수 이재호
축구 19. 비운의 축구 선수 이재호
#축구 선수와 부상
거친 몸싸움이 불가피한 축구 선수들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다. 단순 타박상에서부터 근육통, 종아리와 무릎 부상, 허벅지 뒤 근육인 햄스트링 부상, 허리 부상과 골절상에 이르기까지 갖은 부상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축구 선수에게 부상은 공공의 적이다.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통째로 날리기도 하고 부상에 발목을 잡혀 유니폼을 벗기도 하며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부상의 원인은 네 가지다. 첫 번째는 자기관리의 실패, 두 번째는 상대의 악의적 또는 고의적인 반칙, 세 번째는 몸싸움 과정에서 빚어진 우연적 충돌의 결과, 마지막 네 번째는 잔디관리 상태 등 경기장 환경. 첫 번째 원인은 자기 탓, 두 번째 원인은 상대 탓, 세 번째와 네 번째 원인은 재수가 없는 경우다. 어느 쪽이든 부상이 초래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축구 선수에게 숙명적인 부상을 피할 수 없을 바에야 부상에 노출될 개연성과 부상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근력과 지구력을 키우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식단 관리에 만전(萬全)을 다해 탄탄한 몸을 만드는 게 중요한 이유다. 축구 경기에 최적화된 신체는 몸싸움 등 외부의 충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어막이다. 상대 선수와의 불필요한 신체적 충돌을 자제하는 영리한 플레이도 부상을 방지할 수 있는 지혜다.
악성(惡性) 태클은 심각한 부상을 유발할 수 있는 인위적인 악재라 경고 또는 퇴장감이다. 공중볼 경합 상황에서도 부상이 자주 발생한다. 상대 선수 머리에 받혀 이마나 눈 부위가 찢어질 수도 있고, 신체 대응력이 자유롭지 못한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땅에 떨어지는 순간, 발생하는 몸싸움의 후유증이 자칫 큰 부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심할 경우 골절상이나 근육 파열, 심지어 뇌진탕 등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까닭이다.
축구장의 잔디 상태는 선수들의 부상 방지와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우연히 목격한 슬픈 장면
올드팬들의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사연이다. 대학 시절, 공중볼 경합 후 머리가 경기장 바닥에 부딪히면서 뇌진탕을 일으켜 선수 생명이 끝난 선수의 안타까운 행적(行跡)을 목격한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대학 3학년 때인 1983년 10월 25일 효창운동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청구고를 나온 초등학교 동기와 그의 고교 후배와 함께 제38회 전국 고교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 경기를 보러 갔었다. 초등학교 동기의 모교인 청구고가 결승에 진출한 터라 반가운 마음에 다 함께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양교 재학생들과 동문(同門)들의 열띤 응원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누군가 옆 관중석 상단 맨 위쪽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응원 함성을 뚫고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고함은 알아들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소리였는데 이상하게도 그 속에서 애틋함이 묻어나 호기심이 일었다. 고등학교 경기라 일반 관중은 드물어 소리의 진원지는 금방 눈에 띄었고, 때마침 축구협회 관계자로 보이는 중년(中年)의 한 남자가 옆을 지나가며 애처로운 듯 내뱉은 말에서 궁금증이 풀렸다.
6년 전 봄 경기 도중 머리를 크게 다쳐 뇌진탕 후유증을 앓고 있는 그는 이재호라는 전직(前職) 축구 선수인데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거의 매일 경기장을 찾아 지금처럼 괴성을 지르며 혼자 관중석 꼭대기를 누빈다는 것이다. 이재호라는 이름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안양공고 졸업반이던 그의 플레이 모습을 TV 중계로 봤고 부상 소식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바로 옆에서 해석 불가한 독백을 구슬프게 외치는 이가 그라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진 것이었다.
#운명을 가른 공중볼 경합
이재호는 엘리트 축구 선수였다. 안양공고 시절 초고교급 대형 스트라이커로 주목을 받은 그는 청소년 대표를 거쳐 국가대표 발탁이 유력시되던 고려대 3학년에 재학 중 불의의 사고로 축구 인생을 송두리째 날리고 말았다. 그의 운명을 가른 대회는 1977년 6월에 열린 봄철 대학 축구 연맹전이었다. 건국대와의 경기 도중 코너킥 상황에서 공중볼을 따내기 위해 높이 솟구친 이재호가 상대 수비수의 머리에 턱을 강타당하며 땅에 떨어지는 과정에서 뇌진탕을 일으키며 의식 불명의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 보름 만에 겨우 의식을 되찾았으나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었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됐다. 뇌 손상에 따른 언어 및 행동 장애. 눈 깜짝할 사이에 발생한 부상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한 결과는 열악한 잔디 상태와 응급 의료체계의 미비 등 경기장 환경의 후진성과도 관계가 있었다.
#경기장 관리의 후진성
1960년에 개장한 효창운동장은 1983년 8월 인조 잔디 구장으로 리모델링하기 전까지 천연 잔디 구장이었다. 잔디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했고 중등부와 고등부, 실업 축구 등 국내 아마추어 대회가 사흘이 멀다 하고 집중적으로 개최된 1970년대 효창운동장의 잔디는 성한 곳이 없었다. 군데군데 잔디가 듬성듬성 파여 있어 맨땅이나 다름없었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수중전(水中戰)을 방불케 했다. 선수들은 크고 작은 부상의 위험에 방치됐고, 이는 곧 경기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기장 내 구조활동에 필요한 구급차도 없고 의료진도 없던 시절이라 응급상황에 무방비였고 골든 타임을 놓치기 일쑤였다. 이재호의 사고는 그런 점에서 인재(人災)가 아니라고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후로도 효창운동장에서 자신만이 알 수 있을 소리를 목청껏 지르는 이재호의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는 필시(必是) 성공한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 어릴 때부터 꿈꿔온 포부가 창졸간(倉卒間)에 좌절된 한(恨)을 그런 식으로라도 읍소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것만이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차범근(1953~)의 뒤를 이어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촉망받는 재목(材木)이었던 흘러간 비운(悲運)의 축구 선수 이재호에 관한 슬픈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