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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일기

1. 아들의 입대가 소환한 병영 생활

by 박인권

1. 아들의 입대가 소환한 병영 생활


#대한민국 젊은이와 국방의 의무

대한민국 남자들의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국방의 의무에 관한 이야기다. 피할 수 없다면 일찍 가자. 요즘 대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입대를 고민한다. 1학년을 마치고 조기 입대하는 학생도 있으나 대개는 2학년 1학기 또는 2학년 종료 후 훈련소에 입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의 아들도 2학년 1학기 후 휴학하고 입대했다. 벌써 9년 전 일이다. 입대와 관련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 주는 컨설팅 서비스까지 유행하고 있다니 병역 문제를 둘러싼 젊은이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집은 1대부터 3대까지 모두 현역 복무를 마쳤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고, 나와 두 형도 현역 복무를 이행한 육군 병장 출신이다. 큰형의 아들과 둘째 형의 아들, 내 아들도 모두 육군 병장으로 군 복무를 끝냈다. 2004년부터 병무청에서 시행하는 병역명문가 선양사업이란 게 있다. 3대가 모두 현역으로 만기 제대한 집안이 대상이다.


1-1. 약 5천 명의 미 제2 보병 사단 병사들이 모여 형상화한 사단의 상징인 인디언 마크.jpg

약 5천 명의 미 제2보병 사단 장병(將兵)들이 모여 형상화한 사단의 상징 휘장(徽章)인 인디언 헤드. ⓒMaj. Vance Fleming • PD-USGov-Military-Army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아들과 나는 닮은 점이 많다. 외골수에다 고집 센 성격, 생김새까지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학 동문과 카투사로 군 복무한 점까지 판박이라 부자지간(父子之間)의 정을 뛰어넘는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더욱 희한한 일은 카투사로 복무했던 부대도 같고 병과(兵科)도 같다는 점이다. 40년 전에 내가 몸담았던 미군 부대에 아들이 배치됐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군대 시절이 떠오르면서 거짓말처럼 옛 기억이 선명하게 눈앞에 소환된 것이다.


#30년의 세월이 낳은 생경한 풍경

논산 훈련소를 거쳐 카투사 교육대(KTA, KATUSA Training Center) 교육을 이수한 아들은 자대 배치 후 곧장 외박을 나왔다. 설 연휴에 맞춰 집에 온 아들이 귀대(歸隊)할 때 나는 손수 차를 몰았다. 의정부를 지나 동두천 시내로 접어들자 처음 동두천 땅을 밟았던 때가 생각났다. 1985년 11월 4일 해거름 무렵 2nd INFANTRY DIVISION이라고 대문짝만하게 부대명이 적힌 정문을 통과하자 딴 세상이 펼쳐졌다. 위압적인 철제 정문과 담벼락 하나 사이로 바깥과는 180도 다른 부대 안의 풍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기이한 향(香)이 후각(嗅覺)을 덮친 가운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국적인 건물을 비롯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광경이 낯설고 신기했다.


1-2. 2018년 초까지 카투사 신병 훈련을 위한 카투사 교육대를 운영한 의정부 캠프 잭슨 정문.jpg

2018년 초까지 카투사 신병 훈련을 위한 카투사 교육대(KTA, KATUSA Training Academy)를 운영한 의정부 캠프 잭슨 정문. 아들은 2017년 1월 이곳에서 3주간 카투사 신병 훈련을 수료했다. 캠프 잭슨이 폐지된 이후 카투사 교육대는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했다. ⓒAjagajaigija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2017년 1월 30일 설 연휴 마지막 날 바라본 동두천 시내의 풍경은 생경했다. 30년의 세월은 과거와 현재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때는 없었던 지하철 1호선 보산역 앞에 다다르자 맞은 편 너머로 미 보병 2사단 정문이 보였다.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미군 부대 정문뿐, 주변은 낯설고 황량했다. 30여 년 전 이곳은 시끌벅적했다. 정문 건너 대로변에 영어로 적힌 수십 개의 간판이 경쟁하듯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석양(夕陽)이 밤을 재촉하기 시작할 때 큰 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즐비한 미군 클럽들이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을 뿜어내기에 바빴다.


번화했던 옛 모습을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대로변은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미군 클럽들로 북적이던 골목은 과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스산했고 집 나온 강아지 한 마리만 코를 들이박고 부지런히 쏘다닐 뿐이었다. 세월의 물결에 밀려난 구도심(舊都心)을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뒤숭숭했다. 미 보병 2사단의 미군 병력 상당수가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해외 미군 기지로 확장된 평택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로 옮겨 간 후유증이 거리 곳곳에 나타났다. 주한미군의 육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는 여의도 면적의 5.5배 크기다.


1-3. 미 제2보병 사단의 부대 식별 표지.png

미 제2보병 사단의 부대 식별표지. 천하무적(SECOND TO NONE)이라는 사단(師團) 표어가 인상적이다.

ⓒUS Army Institute of Heraldry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내가 청춘의 한때를 보낸 캠프 케이시(Camp Casey)에서 아들은 나처럼 행정병으로 복무했다. 나는 본부 자재관리중대에서, 아들은 포병 대대 본부중대에서. 기억 저편 너머에 잠들어 있던 나의 군 생활이 까마득한 카투사 후배인 아들 때문에 깨어 날줄은 몰랐다. 며칠 전, 먼지 묻은 앨범을 뒤적이다 군대 시절 찍은 사진 여러 장이 눈에 띄었다. 망각의 시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아들의 입대가 흔들어 깨운 나의 카투사 시절을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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