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입영통지서와 카투사 시험
2. 입영통지서와 카투사 시험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85년 2월 하순, 한 통의 등기우편을 받았다. 발신인은 병무청. 입영통지서였다. 예상한 바였다. 재학생이라는 이유로 나처럼 입대(入隊)를 차일피일 미룬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는 대학 졸업과 함께 곧장 입영통지서가 날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영통지서에 선명한 타자체(打字體)로 적힌 내용은 간단명료했다.
‘1985년 12월 ◯◯일 △△시까지 춘천 103 보충대(102 보충대의 전신) 입소’. 대구 고향집에 머무르고 있던 나는 이미 그해 5월로 예정된 카투사 시험을 최후의 보루로 작정하고 있던 터라 입영통지서를 받아 들고서도 담담했다. 합격하면 카투사 복무, 떨어지면 103 보충대 입소. 모 아니면 도였다.
#카투사 필기시험
그때의 카투사 선발 방식은 요즘과 달랐다. 1차 서류전형(어학성적)을 거쳐 추첨으로 최종 합격자를 확정하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필기시험으로 카투사 자원을 뽑았다. 시험 과목은 영어(50점), 국사(25점), 국민윤리(25점) 세 과목, 출제 방식은 사지선다형(四枝選多型) 객관식이었다. 영어는 비영어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능력시험인 토플(TOEFL, 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스타일로, 국사와 국민윤리는 고등학교 교육 과정 내에서 출제됐다. 총점의 50%를 차지하는 영어 성적에 따라 당락이 갈렸다. 토플은 당시 대학생들의 필독 영어 교재로 시중에 여러 종류가 유통되고 있었다. 이재옥(1939~1998) 저(著) 토플이 특히 인기가 많았고 나도 그 책으로 공부했다.
입대를 앞둔 자유인 신분을 만끽하던 나는 카투사 시험 보름 전쯤, 대구 시내 동인동의 한 중고 서점에서 고등학교 국사와 국민윤리 교과서를 사서 벼락치기로 공부했다. 다행스럽게도 영어 독해 문제의 상당수가 급하게 훑어본 토플 교재의 지문(地文)과 유사한 형태로 출제됐고 국사와 국민윤리의 난이도는 평이(平易)해 시험장을 떠나는 마음이 가벼웠다. 영어 문제의 유형은 독해와 문법, 어휘 세 영역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합격자 발표와 함께 입대 날짜가 8월 14일로 정해졌다.
2016년 11월 1일 해체된 육군 제102보충대 정문.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카투사 시험에 떨어졌다면 아마 전방(前方)의 어느 보병 사단에서 혹독한 군 생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103 보충대는 전방 사단의 신병교육대로 이동하기 전에 잠시 머무르는 대기 장소라 기초군사훈련 후 배치될 자대(自隊)도 뻔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 창설된 103 보충대는 훗날 102 보충대로 명칭이 변경됐다. 군부대 통폐합 조치에 따라 2016년 11월 해체됐다. 65년간 이곳을 거쳐 간 입영 장정(壯丁)이 250만 명이 넘는다.
#징집~차출~필기시험~서류전형+전산 추첨
카투사의 유래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50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징집 방식으로 출발한 카투사 제도는 이후 훈련병과 기간병 중에서 일정 비율을 차출해 충원하다가 논산 훈련소(현 육군훈련소) 입영 장정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선발 방식으로 변경됐다. 그러나 청탁 등 정실(情實)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아 공정한 인사 관리 기강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1982년부터 시험제로 전환됐다.
1997년까지 영어, 국사, 국민윤리 세 과목에 걸쳐 사지선다 객관식 시험제로 운영되던 카투사 선발 제도는 1998년부터 추첨제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토익(780점 이상) 등 일정한 공인 어학성적을 취득한 응모자 중에서 전산 무작위 추첨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과거처럼 시험 성적만으로 뽑는 것이 아니어서 운이 따라야 한다.
전투 훈련 중인 미군과 카투사. ⓒU.S. Army photo by Pfc. Fabian Jones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카투사는 자유로운 외출 외박과 쾌적한 근무 환경, 어학 능력 증진과 미국 문화 체험의 기회 등 장점이 많아 경쟁률이 치열하다. 추첨 시 어학 점수대별 지원자 분포 비율이 적용된다. 고득점자가 유리하다는 주장이 있으나 병무청의 공식 입장은 이를 부인한다. 점수대별 분포 비율을 고려해 선발 인원을 조정하기 때문에 상위 구간의 지원자가 유리하거나, 하위 구간의 지원자가 불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2024년 카투사 경쟁률은 8.7대 1이었다.
시험으로만 뽑던 1980년대에는 카투사 지원자를 대상으로 한 카투사 학원도 성행했다. 카투사 고시(考試)라는 말도 이때 생겨났다.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병역 제도가 카투사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일과(日課) 후 부대 밖 외출이 가능하고 주말 외박을 포함한 자유로운 외박제도와 1인 1실 또는 2인 1실로 독립된 생활 공간이 보장되는 생활관(Barracks) 제도, 불침번(不寢番)이 없는 근무 환경 등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