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논산 훈련소(현 육군훈련소)
3. 논산 훈련소(현 육군훈련소)
#입영 장정의 의미
머리를 빡빡 민 사복(私服) 차림의 훈련소 입영 장정(壯丁) ○○○명이 긴장된 자세로 연병장에 도열(堵列)했다. 멀리서 본 그들의 모습은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20대 초반의 비슷한 연령대와 모두 민머리라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군인의 태(態)를 기대하기에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 오(伍)와 열(列)이 삐뚤빼뚤했고 곳곳에서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연병장에 집합한 순간, 그들의 법적 신분은 국가에 귀속된 군인으로 더 이상 민간인이 아니었지만, 의식과 행동거지는 여전히 민간인이었다. 민간인의 티를 벗고 어엿한 군인이 되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연병장의 계단식 관람석에는 장정들의 가족과 친구, 연인으로 보이는 아리따운 여성들이 줄지어 앉거나 서 있었는데 한결같이 애잔한 눈길로 바라보거나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 애써 슬픔을 감추고 있는 듯 보였다.
#입소식 풍경
군악대(軍樂隊)의 절제되고 우렁찬 연주를 신호로 입소식(入所式)이 시작되자 국민의례에 이어 연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훈련소 홍보 영상이 빠른 속도로 흘러 지나갔다. 입영 장정 대표의 입소 신고에 이어 연대장의 일장(一場) 훈시가 끝나고 가족들과의 이별의 시간이 되자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건강하게 훈련 잘 받으라며 담담하게 아들과 포옹한 집사람과 오빠와 눈인사를 나눈 딸에 이어 내 차례가 되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부자지간(父子之間)을 떠나 먼저 군 복무를 경험한 선배로서 아들이 지금부터 헤쳐 나가야 할 훈련소와 자대 생활의 실상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어른거려 눈물샘이 저절로 터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과거와는 달리 병영 문화의 선진화가 정착됐다고는 하지만 엄격한 규율이 생명인 군대는 군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정작 집사람은 나와 정반대로 입소식 내내 차분한 표정이라 의외였다. 그것이 집사람의 타고난 성정(性情)이라기보다 평소 나한테 귀동냥한 카투사 생활의 면면을 알고서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었다. 2016년 11월 28일의 일이다.
육군훈련소 정문.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27개월 간의 군 복무는 논산 훈련소에서 시작됐다. 1980년대 중반 당시 육군 현역(現役)의 복무 기간은 30개월이었으나 대학에서 2년간 군사훈련 과정을 이수하면 3개월 감축의 혜택이 주어졌다. 대학교에서 실시하는 군사훈련 교육과정은 1990년부터 폐지됐다. 2018년 8월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아들은 21개월 동안 복무했다. 2020년 6월 2일 이후 입대한 현역들의 복무 기간은 18개월이다. 1970년대(36개월)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라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닐 수 없다. 논산 훈련소가 창설된 1951년 11월 1일 이후 육성한 정병(精兵)만 천만여 명이 넘는다. 논산 훈련소는 1999년 2월 1일부터 부대 명칭이 육군훈련소로 개칭됐다. 별칭은 연무대(鍊武臺)다.
내가 입소했을 때나 지금이나 육군훈련소의 기초군사훈련은 5주 과정이다. 일반 육군은 기초군사훈련 후 곧바로 자대(自隊)에 배치돼 본격적인 복무를 시작하지만, 카투사는 육군훈련소에 이어 미군 부대 내 카투사 교육대로 이동해 3주 간의 추가 훈련을 수료한 뒤 근무할 미군 부대와 보직이 결정된다. 카투사는 카투사들끼리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 우리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1985년의 논산 훈련소
무더위가 한창이던 1985년 8월 14일 처음 밟은 논산 땅은 낯설었고 논산 훈련소는 더욱 낯설었다. 한낮의 훈련소 입영대대 연병장은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돼 뜨거운 열기로 펄펄 끓었다. 입영대대는 훈련소에 입소한 장정들이 교육연대로 이동하기 전 3박 4일 동안 머무르며 입영에 필요한 각종 절차를 밟으며 대기하는 곳이다. 장정들이 훈련을 받는 곳은 교육연대라 이때부터 비로소 훈련병 신분이 되는 것이다.
신원 확인 절차와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은 뒤 5주간 훈련받을 소속 중대가 확정됐다. 논산 훈련소 제28신병교육연대 □중대 △소대 ○-○○○번 훈련병. 이곳을 거쳐 간 숱한 훈련병들이 입었을 허름한 훈련복 상의 오른쪽 가슴과 왼쪽 가슴에 내 이름표와 훈련병 번호표를 직접 꿰매 달고 중대별로 입영대대 막사(幕舍, 요즘은 생활관이라 지칭) 앞 공터에 집합했다.
그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반가운 두 인물을 만났다. 한 명은 대학교의 과(科) 동기고 다른 한 명은 고등학교 동기였다. 서로 카투사 시험에 응시한 줄도 몰랐던 터라 훈련소에서 만난 순간의 기쁨이 남달랐다. 막막하기 짝이 없는 훈련소 시절, 두 친구는 더할 나위 없는 말동무이자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훈련기간 내내 그들의 존재는 큰 힘이 됐고 그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논산 훈련소와 카투사 교육대를 거쳐 셋은 각자 다른 부대로 배치돼 서로의 군 생활을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