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선임 병장(KATUSA Senior Sergeant)에 대한 불경죄
8. 선임 병장(KATUSA Senior Sergeant)에 대한 불경죄(不敬罪)
#선임 병장의 전화
첫 외박에서 복귀하고 3일째 되던 날 오후,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 왔다. 팀의 리더인 흑인 중사(SFC, Sergeant First Class)가 나를 바꿔주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카투사 선임 병장(Senior Sergeant)이었다. 관등성명(官等姓名)을 복창한 나에게 선임 병장은 별다른 애로사항이 없는지 물어보았고, 나는 별다른 애로사항이 없다고 의례적으로 말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다음이 문제였다. 덥수룩한 머리를 정리할 때가 된지라 영내 이발소의 위치가 궁금하던 터에 불쑥 말을 꺼냈다.
“머리를 깎아야 하는데 영내 이발소가 어디에 있는지…….”
“(침묵)……”
선임 병장은 대답 대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어떤 사태가 전개될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카투사들은 중대 막사 건너편 캠프 케이시 한국군 지원단 인사과 건물 옆의 허름한 창고처럼 생긴 다용도실에서 머리를 깎았다. 그곳에는 인사과 소속 카투사 한 명이 근무했는데 이름하여 이발병(理髮兵)이었다. 계급이 일병이라 나보다 선임이었지만 소속이 달라서인지 말투가 깍듯했다.
#중대 카투사 전원 소집의 이유
그날 밤, 중대 카투사 전원 소집 명령이 하달됐다. 명령의 진원지는 선임 병장. 막사 내 한 방에 군복 차림을 한 중대 카투사들이 다 모였다. 선임 병장이 등장하자 모두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작달막한 키의 선임 병장은 작고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툭 던지고 나가버렸다.
“언제부터 우리 중대 신병이 선임 병장한테 이발소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지? 기강(紀綱) 확립에 좀 더 신경 써 주길 바란다.”
비로소 나는 이날 소집의 이유를 알았고 그것이 선임 병장에 대한 불경죄(不敬罪)라는 것도 알았다. 긴장감이 흐르고 병장 중 한 명이 중대원들을 상대로 군기(軍紀)를 바로 세우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관례인 듯, 면책된 병장들이 열(列) 바깥으로 늘어선 가운데 상병들부터 차례대로 책임 추궁을 당했다. 병장은 상병한테, 상병은 일병한테, 일병은 그 아래 후임한테 역(逆)피라미드 식으로 분풀이했다. 소집이 해제된 뒤 나는 바로 위 선임의 방에서 별도로 혹독한 치도곤에 시달렸다. 체벌과 얼차려가 계속된 내내 나는 그것이 왜 불경죄인지 의문이 들었으나 물을 수가 없었다.
이때의 불쾌한 기억은 군대 생활이 끝날 때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내가 공짜로 머리를 깎을 수 있는 영내 카투사 이발소를 마다하고 굳이 부대 밖의 민간 이발소를 이용한 것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수동식 이발기(理髮器)와 미덥지 못한 가위질로 우악스럽게 머리카락을 쳐내는 카투사 이발병보다 영외 민간 이발사의 솜씨가 훨씬 마음에 들었던 것도 이유였다. 제대할 때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이용했던 민간 이발소는 부대 정문 길 건너 주택가로 들어가는 대로변에 있었다.
#농사꾼의 아들, 선임 병장
선임 병장은 나하고 나이가 같았다. 제대 후 대구의 모 국립대에 복학한 그를 외박 중 대구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이제 더는 군부대의 선임과 후임이 아닌, 술자리에서 사적으로 본 그는 순진했다. 선임 병장은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경남 함안군의 농사꾼 아들이라고 밝혔다. 무역학과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꿈이며 그것은 곧 자신의 아버지의 꿈이라고도 했다. 소탈하고 때 묻지 않은 맑은 성품이라고 느껴졌다. 고등학교 동기가 그의 학과(學科) 친구였다.
취기(醉氣)가 돌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때 왜 그랬냐고 내가 물었다. 술기운에 더해 무안함이 밀려와서인지 그의 두 뺨이 발그스레했다. 그는 긴말 대신 미안하다고 했다. 구차한 변명 대신 솔직하게 상황을 정리한 그에게서 오랜 친구에게서나 가능할 법한 정(情)이 느껴졌다. 짐작건대 그는 자신이 배운 대로 선임 병장으로서의 직분을 원리 원칙대로 다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점을 뒤늦게 인정해서인지 그는 그때의 행동이 과잉 대응이었음을 은연중에 내 비췄다. 자신도 모르게 슬쩍슬쩍 드러낸 속내에서 그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랫동안 맴돌던 서운한 감정도 그날로 사라졌다. 선임 병장과의 술자리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40년 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