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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일기

13. 카투사의 하루

by 박인권

13. 카투사의 하루


#출근 전 Police Call

새벽 점호와 PT(Physical Training), 2마일 구보(驅步)에 이어 샤워와 아침 식사를 마치면 군복으로 차려입고 출근 채비를 서두른다. 사무실로 떠나기 전,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중대원 전체가 단체로 참여하는 Police Call(일정 구역 내의 청소 사역)도 주요 일과(日課) 중 하나였다. Police Call은 군복 차림의 중대원들이 횡(橫)으로 줄지어 도로 갓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이었는데 주로 담배꽁초를 주웠다. 카투사들끼리는 Cigarette(Butt) Call(담배꽁초 청소)이라 불렀다. 당시만 하더라도 실내외를 막론하고 흡연 문화에 아무런 제약이 없을 때라 미군이나 카투사나 피우던 담배꽁초를 길가에 버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팀장의 솔선수범

사무실이 부대 밖이라 중대에서 지급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다. 오전 9시가 되기 전, 사무실에 도착하면 늘 팀장이 먼저 와 있었다. 한국 복무를 스스로 지원했다는 팀장은 3년째 자재관리 중대에서만 근무한 보급통(補給通)이었다. 서툴게나마 띄엄띄엄 한국어를 구사했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온화한 통솔력과 솔선수범(率先垂範)이 몸에 배어 팀원들 모두 그를 잘 따랐다.


근무 초기, 언어 장벽과 업무 파악에 애를 먹던 내가 조바심을 내지 않고 사무실 환경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팀장의 배려 때문이었다. 팀장은 내가 병장을 달았을 때, 4년이 넘는 장기(長期) 한국 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떠났다.


#상병과 대마초

내 책상과 미군 하사, 상병의 책상 위에는 크리스털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금연 시책이 정착되기 훨씬 전이라 부대 사무실 안에서 자유롭게 흡연할 때였다. 팀 동료 중 흡연자는 나와 하사, 상병 셋이었고 팀장인 중사와 홍일점(紅一點)인 병장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내 또래인 상병은 고등학교 때 호기심이 발동돼 친구들과 어울려 대마초를 피웠다는데 담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대마초가 전면 불법이라고 하자, 미국은 대마초 문화에 상당히 관대하다고 말하며 의외라는 눈치였다.

미국 연방법에서는 대마초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12개 주(州)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는 오락용 또는 의료용에 한정해서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의사의 처방과 상관없이 대마초의 자유로운 구매와 소비가 가능한 주만 24개 주이며 워싱턴 D.C. 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에서는 하루 종일 영문 타자기를 두들겼다. 사단 내의 무기와 장비류, 각종 보급품의 출납 현황을 문서로 기록하는 일이라 난도(難度)가 높지는 않았지만, 물량의 흐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파악해야 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다. 팀원들이 각자 작업한 문서는 서로서로 교차점검을 했다. 물량의 숫자에 오류가 생기면 수급 체계에 큰 혼선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제대할 때까지 우리 팀에서는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격주 또는 한 달에 한 번씩 소각 대상 문서로 지정된 각종 서류 뭉치를 사무실 밖 야외 공간에 설치된 소각로에서 태우는 일도 내 몫이었다. 사무실 내에 서류 파쇄기가 비치돼 있었지만 기밀 서류는 꼭 소각했다. 팀원들은 커피도 많이 마셨고 콜라도 많이 마셨다. 1리터 용량의 테이크아웃 커피와 콜라를 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낮잠

오전 11시 30분, 점심시간이다. 미군들은 부대 안 메스 홀로 가고 나는 막사에서 컵라면을 끓여 먹거나 동두천 시내의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거나 자주 가는 설렁탕집에서 설렁탕을 먹었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막사에서 점심을 때울 때는 밥을 먹고 난 뒤 30분가량 낮잠을 자고 다시 사무실로 가곤 했다. 복무 생활이 곧 직장 생활인 미군 부대 특유의 병영 문화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막사에서 사무실까지는 자전거로 10여 분 걸렸다.


오후 1시, 타자기의 자판(字板)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오후 근무가 시작됐다. 퇴근 시간에 맞춰 할당된 업무를 끝내려면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 교차점검을 마친 문서를 들고 각자 광학문자 판독실을 바쁘게 들락거리는 것도 이때다. 희한하게도 오후 3시쯤이면 팀장을 뺀 팀원들 모두 식곤증에 시달렸다. 기지개를 켜거나 하품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모습은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우직하게 일만 하는 팀장의 모범적인 근무 태도를 본받아서인지 마감 시간을 어기는 팀원들은 없었다.


#일과(日課) 후

오후 5시, 일과(日課) 종료. 이때부터는 각자의 시간이다. 저녁을 먹고 부대 밖으로 외출을 나가든지, 캠프 내 영화관이나 짐(Gym, 체육관)을 가든지, Rec 센터(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포켓볼을 치든지, 도서관을 가든지, 방에서 쉬든지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카투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두천 시내의 당구장에서 내기 당구를 즐기기도 하고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저녁 점호가 없고 불침번도 없어 밤늦게까지 방에서 술을 마시는 카투사도 많았다. 우리 중대원들 사이에서는 소주와 콜라를 1대 1로 섞은 소콜이 유행했다. 양은 주전자에 소주와 콜라를 가득 채우고 새우깡이나 마른오징어,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전우애(戰友愛)를 다졌다. 술자리에 끼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혼자 공부에 열중하는 학구파(學究派)도 더러 있었다.


일병 시절, 마냥 놀고먹는 막사 풍토가 꺼림칙해서인지 한 선임병의 주도로 영어 회화 스터디를 결성해 일주일에 한두 번씩 모였으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다들 책상 위에 집에서 가져온 책을 잔뜩 쌓아 놓고 있었지만 정작 공부보다는 음주 가무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학업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이었으나 마음을 먹는 카투사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공부란 역시 시간이 남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 미 제2보병사단 자재관리 중대 카투사가 되돌아본 하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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