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팀 스피릿(Team Spirit)-캠프 험프리스 파견
15. 팀 스피릿(Team Spirit)-캠프 험프리스 파견
일병 계급장
일병(一兵)이 무어라고 이등병(二等兵) 계급장을 떼고 일등병이 된 날, 선임들 모두 축하한다는 덕담(德談)을 건넸다. 비로소 신병(新兵)의 티를 벗고 병사 구실을 할 수 있게 돼 자대 생활에 연착륙했다는 의미일 텐데 어쭙잖게도 군복의 계급장이 묵직해졌다는 자족감(自足感)에 빠져 하루 종일 싱글벙글했다. 한 달여 전 후임병이 새로 들어와 막내 카투사의 신세를 면한 안도감에 일병 승진에 따른 뿌듯함까지 더해진 터라 여간 기쁘지 않은 것이다. 작대기 하나에 작대기 하나가 더해졌을 뿐인데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달려온 6개월 여의 군 생활의 애환이 그 속에 깃들어있을 거라는 생각에 계급장을 쳐다볼 때마다 흐뭇한 표정을 짓곤 했다.
선임들의 태도가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일등병의 나이테도 조금씩 자라기 시작할 무렵, 한미 연합 합동 군사훈련, 팀 스피릿(Team Spirit)에 참가하게 됐다. 원칙적으로 주특기와 근무지 팀의 사정에 따라 훈련 참가 여부가 결정된다지만 선임 병장의 입김에 따라 명단이 움직이기도 했다. 주로 병장이나 병장 진급을 코앞에 둔 말년상병(上兵)들이 훈련에서 빠졌다.
통역업무의 허상
나는 특이하게도 홀로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파견됐다. 1986년 2월 하순 나를 인솔한 선임 병장과 함께 군용 지프차를 타고 캠프 험프리스에 도착했다. 나를 인계하던 선임 병장은 “너는 운이 좋다”는 뜬금없는 말을 남기고 다시 부대로 돌아갔다. 미국 본토에서 날아온 미군 예비역들로 편성된 군수(軍需) 지원 대대 예하 중대에 배속된 나의 임무는 보급품 관리. 그제야 선임 병장의 말뜻을 이해했다. 중대에 카투사가 나뿐이어서인지 미군 중대장은 한국군을 상대하는 통역업무를 맡겼다.
내심 걱정이 앞섰다. 간신히 말문이 트일락 말락, 하던 참이라 행여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조바심에 짓눌렸다. 주어진 임무와 달리 내가 주로 한 일은 미군들의 행정 업무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보고용 서류를 작성하고 날짜별로 분류해 기록철로 만들거나 복사기 관리와 점검, 이따금 미군과 2인 1조로 작전 구역 순찰하기 따위라 근무 강도가 느슨한 편이었고 일과(日課)도 널널했다.
3주 간의 파견 근무가 절반을 훌쩍 넘겨 종반부로 접어들 즈음 마침내 통역업무에 나서게 됐다. 연대장과 연대 참모로 보이는 소령과 대위 등 세 명의 한국군 장교가 합동 작전 협의를 위해 대대 본부를 찾아왔다. 브리핑은 우리 중대의 중대장이 진행했다. 반은 알아듣고 반은 알아듣지 못한 미군 중대장의 브리핑 내용을 한국군 연대장에게 설명하려고 할 때마다 소령이 끼어들어 내 말을 가로챘다.
소령은 “이렇고 저렇다는 말이지?” “그건 이런 뜻 아니겠어?”라고 말문을 가로막았고 나는 “그렇습니다” “맞습니다”라고 맞장구쳤다.
명색이 영관급 장교로서 일개 사병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은 자존심도 발동했을 것이고, 직속상관인 연대장에게 자신의 영어 실력을 과시하려는 욕망이 앞서 카투사 통역병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작정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브리핑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싱겁게 끝났고 정작 내가 연대장에게 한 말은 그가 대대 본부를 방문했을 때와 떠날 때 “단결”이라고 외친 경례 구호뿐이었다.
한국군 소령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연대장을 수행해 타고 온 군용 지프차에 올라탔다. 파견 근무가 끝날 때까지 한국군을 만난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운이 좋다”는 선임 병장의 말이 또 생각났다.
팀 스피릿 ‘88. ⓒ미 국립문서보관소 칼리지 파크(National Archives at College Park)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김치 GI
중대원 중에는 한국계 미군 사병도 둘 있었다.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인데 둘 다 미국 이민 한인(韓人) 2세로 미국에서 태어났다. 영어가 유창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고방식도 미국식, 국적도 미국인이라 얼굴을 봐야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말을 웬만큼 알아듣기는 했으나 말할 때는 어눌한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 말했다. 미군들끼리는 한국계 미군을 김치 GI란 은어(隱語)로 부른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GI는 Government Issue(정부 보급품)의 약자로 미 육군 병사를 뜻하는 속어(俗語)다.
운이 좋다고 느낄만한 일은 또 있다. 통상적인 작전 중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과 후 캠프 밖 외출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미군 예비역들로 채워진 파견 중대의 특성과 보급품 관리라는 업무 성격에서 비롯된 이례적인 혜택이 아니었나, 싶다.
카투사 상병 MP와의 기싸움
그 과정에서 이런 일도 겪었다. 캠프 험프리스 정문 게이트에는 미군 MP(Military Police)와 카투사 MP가 한 조를 이뤄 근무하고 있었는데 내가 드나들 때마다 카투사 MP가 꼭 시비를 걸었다. 계급이 상병인 카투사 MP는 나의 두발(頭髮) 상태가 불량하다며 “어이 박 일병, 머리 좀 깎지”라고 매번 트집을 잡았고 나도 뒤질세라 “다른 부대에서 파견을 나온 작전 상황이라 부대로 복귀하면 머리를 깎겠다”라며 기싸움을 펼쳤다. 계급이 나보다 높으나 소속이 다른 나를 제지할 마땅한 방법이 없던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핏대를 올리며 씩씩대는 것뿐이었다.
한 번은 동료 미군과 캠프 험프리스 근처의 미군 클럽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의례적인 순찰을 나온 MP 한 명이 클럽 내부를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가 바로 서로 대거리를 하던 카투사 MP였다. 카투사 MP는 나와 얘기 중이던 옆자리의 미군을 흘끔 쳐다본 뒤 뭐라고 들리지도 않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클럽을 빠져나갔다. 미군 클럽은 미군 전용(專用) 유흥시설이나 미군이 에스코트하면 카투사도 출입할 수 있다. 미군 클럽은 늘씬한 무희(舞姬)들이 펼치는 야릇한 쇼를 감상하며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바람, 바람, 바람’
한국 노래를 기막히게 잘 부르는 특이한 미군 동료 사병도 기억에 남는다. 어디서 배웠는지 서툴게나마 한국말을 제법 구사하는 그는 가수 김범룡의 히트곡 ‘바람, 바람, 바람’의 가사를 줄줄 외우며 한국인 뺨치게 구성지게 불러 깜짝 놀랐다. 그 노래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멜로디가 흥겨워 여러 번 따라 부르다 보니 애창곡이 됐다고 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분명 음악적 재능과 감성이 남다를 것이다. 아무나 노래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을 실감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바람, 바람, 바람’은 김범룡이 솔로 가수로 데뷔한 1985년 각종 가요상을 휩쓴 발라드로 서정적이고 시적인 가사가 외국인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은 노래다.
1년 뒤 또 한 번의 팀 스피릿에 참가했다. 팀 스피릿은 1976년부터 1993년(1992년 제외)까지 17년간 실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