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결례(缺禮)의 대가
16. 결례(缺禮)의 대가
#두 번째 팀 스피릿 하루 전
1987년 2월, 두 번째 팀 스피릿(Team Spirit)에 참가했다. 훈련지인 강원도 횡성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 아주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캠프 케이시 내 모 포병 부대의 카투사 병력을 관리하는 한국군 지원대대 산하 인사과 사무실 앞. 대위 계급의 인사 장교는 상관에 대한 결례를 범했다며 나를 심하게 질책했다. 지원대대가 다른 나를 자신의 사무실로 호출한 그는 말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몇 차례나 신체적 위해를 가할 듯하면서도 끝내 실행하지는 않았다. 희한한 것은 사무실에는 인사 장교와 나 둘뿐이었는데도 굳이 밖으로 데리고 나가 위협적인 태도를 보인 점이다. 그럴 때마다 인사 장교는 지나가던 누군가가 이쪽을 쳐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변을 힐끔거렸는데, 분명 구타와 체벌이 금지된 미군 부대 복무규정을 의식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단언컨대 그는 애당초 마음먹은 바를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럴 뜻이 있었다면 밖에서 사무실 안을 볼 수 없게끔 창문의 커튼을 친다든지 나름의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체벌을 실천할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지만, 자신이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계획된 액션으로 드러내 나를 정신적으로 압박할 목적이었을 것이다.
#호출 사건의 발단
호출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일주일 전, 그날따라 군복 차림이었다. 동두천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부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좁은 인도에서 빠른 걸음으로 걷던 나는 그를 보지 못했고 반대편에서 오던 그는 나를 보았던 모양이다. 지나치는 나를 그가 불러 세웠다. 그도 군복 차림이었다. 내 군복의 인디언 헤드 마크를 확인했는지,
“왜 경례를 안 하나?”
“못 봤습니다.”
한국군 군복을 입은 그의 군모(軍帽)에 대위 계급장이 달려 있었다. 군복 상의의 패치에서 2사단 파견 한국군 지원대대 소속의 인사 장교임을 알 수 있었으나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사단 내에는 한국군 인사 장교가 여럿 있다. 관할 지원대대 소속이 아니면 제대하는 날까지 만날 일이 없다. 한 차례의 대화가 오간 뒤 못마땅한 듯 뭐라고 꾸짖은 그는 가라고 했다. 돌아서던 나를 그가 다시 불러 세웠다.
“왜 또 경례를 안 하나?”
그는 수첩을 꺼내 군복 명찰에 적힌 내 영문 이름과 계급(상병)을 적고선 휑하니, 가던 길을 갔고 나도 가던 길을 갔다.
첫 번째 경례는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거였고, 두 번째는 하지 않은 거지만 고의성은 없었다. 일과 후 동두천 시내에서 생면부지의 한국군 장교와 마주치는 일이 가끔 있지만 이날 같은 상황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의 상황이 당황스러웠던 이유다. 곤혹스럽고 얼떨떨하던 차에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실수를 한 것이다.
부대 안이었다면 나의 태도도 달랐을 것이다. 말 같잖은 변명이라거나 군기가 빠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상관에 대한 경례 예법을 어긴 결례를 지적한 인사 장교는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인사 장교는 일주일 동안 나의 결례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영외(營外)에서 벌어진 일이라 없었던 일로 할지, 이참에 따끔하게 혼쭐 내 군기를 확립하고 상관의 체면을 세울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뜸을 들인 그의 선택은 후자였다. 사단 내 카투사 명부(名簿)에서 나의 소속을 알아낸 그는 우리 중대 관할 지원대대 인사과로 전화해 나를 호출했다. 인사과의 카투사 병장은 재수 없게 걸렸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푸시업 200개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인사 장교는 의자에 앉아 목소리를 깔고서 결례의 대가라며 푸시업 200개를 하면 용서해 준다고 했다. 푸시업 자세를 취하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인사 장교는 내 얼굴 아래로 닿을 듯한 사무실 바닥에 16절지 크기의 메모지 여러 장을 깔았다. 푸시업 숫자를 헤아리는 카운트가 늘어나면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떨어지는 수도 늘어났다. 땀방울이 메모지 위에 떨어질 때마다 툭, 툭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인사 장교는 엎드린 내 몸이 반복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군기 확립’이라는 글자를 떠올렸을까, 아니면 비로소 장교의 체통이 섰다며 안도의 한숨을 지었을까, 둘 다였을까.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땀방울이 메모지를 흥건하게 적시자 인사 장교는 젖은 메모지 위에 새 메모지를 덮었다. 카운트하는 동안 까닭 모를 오기가 생겼다. 목표 숫자에 가까워질수록 오기가 더욱 거칠게 꿈틀댔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일 인사 장교는 왜 이곳까지 떠밀려왔을까. 한가로운 보직이라며 현실에 안주하기에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은가. 입술을 꽉 깨물고 고통을 참아가면서 할 일을 하는 동안에도 괜한 생각이 들었다.
5분이 조금 더 지났을까. 200개의 목표치를 다 채웠다. 땀범벅이 된 몸에 사무실 난방의 열기가 와닿아 화끈거렸다. 인사 장교의 표정은 평온했다. 기본적인 신상(身上) 정보를 묻더니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깡다구 하나는 있구나. 그런 자세로 사회생활도 잘하기를 바란다. 고생했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거수경례를 하자 흡족한 듯 그가 경례를 받았다.
푸시업 200개의 후유증은 다음 날 아침 온몸을 파고들며 날카로운 민낯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