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987년 강원도 횡성 팀 스피릿
17. 1987년 강원도 횡성 팀 스피릿
D-day
두 번째 팀 스피릿(Team Spirit) 출발일이다. 목적지는 강원도 횡성.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아무래도 탈이 난 모양이다. 어젯밤 꾸려 놓은 전투 배낭을 어깨에 메려다 큰일 났다 싶었다. 왼손잡이라 습관적으로 왼팔을 먼저 집어넣다가 팔을 빼고 말았다. 배낭의 무게 때문이 아니다. 전날 인사 장교에 대한 결례의 대가로 치른 얼차려의 뒤탈임이 분명한데 생각보다 후유증이 만만찮다. 목과 어깨가 결리고 팔다리와 허리가 쿡쿡 쑤신다. 어깨 아래에서부터 손목으로 이어지는 팔 부위의 통증이 특히 심한데, 원하는 대로 팔을 놀릴 수가 없다. 푸시업 200개의 운동량이 육체에 요구하는 대가가 온몸에 느껴진다. 이런 몸 상태로 3주간의 훈련을 견디려면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고 군용(軍用) 트럭에 올라탔다. 몸으로 굴러야 하는 보병 부대가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횡성 일대에 대규모 임시 병영(兵營)이 구축됐다. 수십 개의 천막 막사(幕舍)가 설치됐다. 생활 공간이자 작전 구역이다. 나 혼자만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파견된 첫 번째 팀 스피릿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중대의 거의 모든 카투사가 다 동원됐다. 깡마르고 한 성깔을 하는 선임 병장도 예외가 아니다. 후임 카투사들이 바짝 긴장한 이유다. 선임 병장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고졸 신분으로 카투사 시험을 통과해 입대했다. 자의식이 강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원칙론자라 후임들에게 엄격하고 매사에 빈틈이 없었다. 사생활이라 물어볼 수가 없었으나 중대원들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을 걸로 짐작했다.
중대원들의 훈련 일과는 단순해서 편했으나 좀이 쑤셨다. 병영 내 정해진 구역에서 이뤄지는 경계 근무와 불침번을 서는 게 주요 임무였다. 몸이 고달플 일이 없는 대신 주어진 자리에서 시도 때도 없이 꼼짝도 하지 않고 대기해야 해 오금이 저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들 입으로는 차라리 뛰고 구르고 몸으로 때우는 편이 낫겠다고 투덜거렸지만, 속으로는 지금의 처지를 다행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1987년 팀 스피릿 참가 기념 중대 카투사 단체 사진.
물물교환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세끼를 때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식사는 배식(配食)과 전투식량(MRE, Meal Ready to Eat)이 번갈아 제공됐다. 가뜩이나 양식(洋食)이라면 고개를 돌릴 판에 전투식량은 더욱 내키지 않았다. 카투사들은 꾀를 냈다. 임시 병영을 조금만 벗어나면 민가가 늘어서 있는 마을 어귀다. 표 나지 않게끔 카투사 두셋이 짝을 지어 마을 초입의 구멍가게를 찾는 일이 잦았다. 구멍가게에서는 물물교환이 이뤄졌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투식량을 봉지째 주고 라면과 공깃밥, 김치와 바꿔 먹었다. 영양가로만 따지면 전투식량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한국 음식을 먹을 수만 있다면 그까짓 영양가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인아주머니로서도 손해를 보는 장사가 아니다.
밀봉된 파우치형의 전투식량 봉지 안에는 여러 가지 간편식이 들어 있다. 소고기 스튜와 미트볼, 파운드케이크, 으깬 감자, 구운 콩, 잼, 버터, 시럽, 치즈 크래커, 쿠키, 초콜릿, 분말형 음료와 커피, 껌, 티슈, 종이 성냥, 소금, 설탕, 음식을 데울 수 있는 발열 팩까지 환금성이 높은 물품이 가득하다. 카투사는 입이 즐겁고 구멍가게 주인은 돈이 되는 일이라 물물교환은 양쪽 모두 원하는 바였다.
3~4일마다 횡성 읍내 대중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이 지급됐다. 외출증을 발급받아 임시 병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자유 시간이다. 외출증의 효력은 두세 시간 보장됐다. 목욕하고 읍내 식당에서 밥을 사 먹고도 시간이 남아 다방에서 커피까지 마실 수 있었다. 미군들은 대중목욕탕이 낯설어서인지 이용하는 경우보다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천막 막사 앞에서 중대 후배 카투사와 함께. 왼쪽이 필자.
삼양라면 사건
훈련 중반 무렵, 선임 병장의 불같은 성격이 폭발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명 삼양라면 사건. 천막 막사 안에는 훈련기간 동안 중대 카투사들이 간식으로 먹을 삼양라면과 컵라면이 상자째 비치돼 있었다. 카투사 스낵바의 수익금 일부를 재원으로 충당하는 카투사 복지 기금으로 구매한 것이다. 라면은 선임 병장이 정한 시간대에 눈치껏 각자 알아서 끓여 먹을 수 있었다. 각자 알아서라지만 아무래도 짬밥에서 밀리는 졸병들은 선임(先任)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때로는 간절함이 눈치 없이 찾아오는 수도 있다. 먹성 좋은 졸병 중 한 명이 대낮에 막사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몰래 라면을 끓이다가 들통이 나고 말았다. 선임 병장은 일과 중 수시로 중대원들의 막사를 점검하는데 하필이면 졸병이 걸려든 것이다. 느닷없는 선임 병장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을 졸병은 그 순간 낯빛이 파랗게 질리면서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일과 후 선임 병장은 우리의 예상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행동을 했다. 중대원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라면 상자를 가져오게 한 선임 병장은 군홧발로 애꿎은 라면을 짓이겨버린 뒤 갖다 버리라고 했다. 컵라면은 선임 병장의 즉결 처분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우리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라면 서리를 하다가 들킨 졸병은 겁에 질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음 날, 중대원들은 인적이 드문 임시 병영의 외곽 구석 자리에 집합해 군용(軍用) 수통 플라스틱 마개 위에서 원산폭격 얼차려를 받았다. 정수리 언저리가 움푹 패면서 피멍이 든 원산폭격의 흔적은 며칠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 팀 스피릿 두 달 후 병장으로 진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