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 일기

21. 외출과 외박

by 박인권

21. 외출과 외박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손 위 누나인 고모가 집에 자주 놀러 왔다. 밥상머리에서 고모는 식구들이 들으란 듯 나를 쳐다보며 이런 얘기를 했다.

“얘는 군대 갈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대학에 들어갈 때쯤이면 통일이 되지 않겠나.”

고모가 덕담(德談)으로 한 말과 달리 나는 대학 졸업 후 입대했고 나의 아들도 대학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다. 고종사촌인 고모의 아들도 고교 졸업 후 입대했고 그의 아들 또한 대학 재학 중 입대했다.

조카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을 고모의 막연한 바람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고모가 나에게 그랬듯이, 내가 어린 조카에게 고모를 따라 한 말도 빈말이 되고 말았다. 호국 간성(干城)의 요람 육군훈련소는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장정(壯丁)들의 함성으로 시끌벅적할 것이다.


병역의 관문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남학생들. 성취감과 입시 전선의 터널을 빠져나와 자유의 몸이 된 기쁨에 흠뻑 빠질 법한 그들에게는 곧 또 하나의 관문, 병역의 문턱이 기다리고 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입대를 앞둔 대학생들은 군 복무 유형을 둘러싼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에 빠진다. 피할 수 없는 길목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 대한 바람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터. 그들이 더 원하는 병역 제도와 덜 원하는 병역 제도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의 입대 선호 1순위는 카투사다. 여러 이유가 있다. 복무 여건의 우수성, 어학 능력 향상의 기회, 미군들과의 교류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도 제고.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카투사 생활의 가장 큰 매력을 꼽는다면 자유로운 외출과 외박 제도일 것이다. 얽매인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던가. 상명하복의 엄격한 규율사회인 군대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카투사들은 직업 군인인 미군 병사들과 함께 쾌적한 시설과 복지 제도가 잘 구축된 병영에서 공동으로 생활한다. 카투사의 복무 특성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카투사의 복무 특성

카투사는 일과 후 외출에 규제가 없다. 한국군이지만 모병제인 미군들의 복무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오후 5시, 근무가 끝나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병영 생활에서 싸인 스트레스를 영외(營外)에서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밤 9시 저녁 점호 때까지만 귀대하면 그만이다. 내가 근무한 1980년대에는 아예 저녁 점호도 없었다. 사병이 날마다 부대 밖을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은 큰 혜택이다.


외출이 이럴진대 외박은 말할 것도 없다. 외박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주말 패스와 2박 3일간 휴무인 3 day pass, 3박 4일간 휴무인 4 day pass. 주말 패스는 매주 금요일 근무 후~일요일, 3 day pass와 4 day pass는 주말과 공휴일 또는 공휴일과 주말이 앞뒤로 걸친 경우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주말 패스는 매주 반복되고 3 day pass와 4 day pass는 공휴일이 포함된 달에 주어지는 비정기적인 패스지만 횟수가 잦다. 평택이나 동두천이 근무지인 카투사가 서울이나 수도권에 산다면 매주 집에 갈 수 있다. 고향이 지방인 카투사도 한 달에 한 번은 부모님을 찾아뵐 수 있다. 거꾸로 부모들로선 군대 간 자식이 걸핏하면 집에 오는 걸 성가셔할 만하다.

운이 좋으면 추수감사절이 낀 11월 하순과 크리스마스~연말연시로 이어지는 12월~1월 사이에 5 day pass를 나갈 수도 있다. 정기 휴가는 물론 별도다. 현행 육군의 정기 휴가 일수는 24일이다. 카투사도 육군의 정기 휴가 규정을 따른다.


카투사만이 누리는 또 다른 휴무 혜택이 있다. 카투사는 미국 공휴일과 한국 공휴일 모두 쉰다. 신분은 한국군이고 근무는 미군 부대에서 하기 때문이다. 미군들도 카투사를 부러워하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카투사 지원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카투사 선발 방식은 일정 수준의 영어 어학 능력을 갖춘 지원자를 대상으로 무작위 컴퓨터 추첨으로 이뤄져 운이 따라야 한다.


카투사 피크닉

임시 휴무일도 있었다. 카투사 피크닉이란 행사 날이다. 화창한 봄 또는 가을에 야외로 떠나는 소풍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은 없어진 한때의 추억이다. 카투사 피크닉은 공식 행사로 인정돼 차량과 물품, 행사 비용 등이 지원됐다. 복무 중 가평과 포천 산정호수에서 두 번 피크닉을 즐긴 기억이 난다. 부대에서 내준 군용 버스에는 버드와이저 맥주가 가득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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