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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Dec 17. 2022

오늘의 추천 고전(5)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에밀 졸라의 가장 위대한 작품 제르미날



분노는 나의 힘

에밀졸라

​​


 에밀 졸라는 정말 대단한 작가다. 루공마카르 총서에 속한 시리즈 물이지만 각 작품마다 저마다 분명한 색을 지니고 있다. 비참했던 프로이센 전쟁을 묘사한  『패주』가 완전히 폐허가 되고 짓밟힌 잿더미에서 새로운 역사와 시대가 싹트는 대하 서사시라면  『인간 짐승』 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웅크리고 있는 악의 존재가 아가리를 벌리고 그 끔찍한 존재를 드러내며 인간이 저지르는 온갖 범죄와 추악함이 환멸을 느끼게 한다. 책을 다 읽고도 깨진 멘탈이 한동안 복구가 안 될 정도. 위대한 불세출의 걸작임에도 그의 작품은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다.



​동시대 거장인 아나톨 프랑스 역시 졸라에 대해,​


“에밀 졸라는 인류 양심의 한 획을 그었다.”​


“에밀 졸라의 작품은 나쁘다. 그는 너무 불행한 인간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내린다. 파종하는 달, 혹은 씨 뿌리는 달이란 뜻의 제르미날은 최초의 사회적 계급투쟁 소설이며 졸라의 작품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색은 “절망과 분노 그 자체”다. 제르미날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힘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넋이 빠져버린 나는 소설을 읽다가 격하게 터져 나오는 분노와 함께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빌어먹을 졸라를 반드시 교수대에 매달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

짐승에 불과했다
이제 점차 인간이 되어간다
제르미날


 장장 900P에 가까운 양도 방대하지만 소설 자체가 압도적인 스케일과 방대한 의미를 함축했으며 극단적인 사실 묘사가 수많은 분석과 끊임없는 해석을 만들어낸다.  『목로주점』과 마찬가지로 민중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제르미날』은 노동자의 봉기와 다가올 사회 혁명을 경고한 계급투쟁 소설이다. 노동자의 비참한 삶과 실상을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묘사한 『목로주점』과 달리   『제르미날』은 자본에 대한 논고이며 사회적 모순과 극단적 불평등에 저항하는 노동자의 투쟁을 묘사했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의 밝은 빛 뒤에 끔찍한 아동 노동과 극단적 빈부격차, 비참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 계급이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불과 5~6살 어린이가 굴뚝 청소부나 공장 노동자로 하루 14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고 수많은 어린 노동자들이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죽어갔다. 공장에서 노동하는 어린이가 5분 지각하면 임금의 1/3을 깎았던 시대다. 부르주아라 불렸던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 깎았고 그것도 모자라 어른을 해고하고 상대적으로 급여가 적은 아이들을 고용했다. 어린이들의 노동이 금지된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다. 노동자들은 딱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임금을 받았고 나중엔 쥐꼬리만 한 급여마저 줄었다.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라는 괴물은 칼 마르크스라는 유대인 혼자 어느 날 창조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피와 살로 배를 채우던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저주받을 씨앗을 잉태했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 묘사된 광산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는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으며 에밀 졸라가 사전에 얼마나 치밀하게 사전 조사를 시행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르미날은 졸라가 실제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광부들의 파업과 유혈사태를 소재로 구상한 소설로 그 안에 품은 함축적 메시지의 크기와 필력은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수준이다.


에밀 졸라의 작품은 대체로 상처 입고 웅크린 인간 야수를 들쑤셔 깨운다. 추악하고 경멸스러운 인간 군상의 온갖 퍼포먼스를 실컷 감상하고 나면 독자는 한동안 찝찝하고 음습한 기분에 잠기게 된다. 명작이긴 한데 욕이 절로 나온달까. 그래서 졸라의 작품은 별로 추천해 드리고 싶지 않은데   『제르미날』 은 정말 강력히 추천해 드리고 싶은 걸작이다.



 사회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노동자 계급의 저항과 투쟁을 그리고 있지만, 주인공 에티엔 랑티에가 사회주의 지도자로 묘사되지만 제르미날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소설이 아니다. 그는 노동자의 비참한 처지에 연민을 느끼면서 다가올 핏빛 파국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제르미날에는 선한 노동자와 탐욕스러운 자본가라는 이원론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그대로 담담하게 그려낸 묘사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혁명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에티엔(마르크스주의자), 라스뇌르(중도 좌파), 수바린(아니키스트)역시 저마다 단점과 결함을 갖고 있다. 에티엔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우왕좌왕하다 파업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을 굶주림과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라스뇌르는 인기와 권력을 탐냈으며 수바린은 고의로 갱을 무너뜨려 수많은 불특정 다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악행을 저지른다. 소규모 자본가 드뇔랭은 이기적이거나 차가운 냉혈한이 아니며 노동자의 처지를 이해하는 관대한 고용주였고 그의 탄광은 파업의 여파로 더 크고 강력한 광산 회사에 잡아먹히고 만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민중은 민중을 적대시하며 더 큰 자본가가 작은 자본가를 무자비하게 먹어치우는 적자생존 사회의 냉혹함이 드러난다. 탄광 회사 사장 엔보 역시 불행한 인간이었다. 누구도 행복한 사람은 없다. 부르주아 그레구아르 가족은 노동자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동정심 많고 자선을 베풀려 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딸인 어리고 순진무구한 세실을, 착취당한 희생자를 대표하는 본모르 영감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에서 목졸라 살해한 것은 이 같은 계급 투쟁이 내포한 비극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서로 간의 배려심과 이해가 없는 부분이 아쉽다. 파업으로 나타난 계급 갈등의 비극은 수많은 죽음을 양산했기에. 하지만 노동자의 처지는 너무나 비참했다. 11살 장랭은 탄광에 가지 않고 몰래 농땡이를 치다 걸린다. 어머니 라 마외드는 장랭을 심하게 매질하고 다음 날 탄광에 출근한 장랭은 갱이 무너지는 바람에 두 다리가 부러졌다. 라 마외드의 9살짜리 딸 알지르는 파업의 와중에 굶어 죽는다. 빵을 달라고 외치는 굶주린 광부들에게 우리도 힘들다고 소리 지르는 부르주아의 식탁엔 바닷가재와 자고새 요리, 맛있는 디저트와 고급 포도주가 푸짐하게 올라와 있었다. 동정심 많고 순진한 세실은 본모르 영감에게 목이 졸려 죽었고 선량하고 착실한 15살 소녀 카트린은 막장에서 일하다 무너진 갱에 갇힌 채 비참하게 죽어간다. 졸라는 부르주아의 외동딸 세실과 가난한 광산 노동자의 딸 카트린의 삶을 대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노동자의 비참한 처지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


 땅 아래를 내려다보십시오.

 나는 이미 이야기했던 것을 반복해 말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고통받는 저 가엾은 이들을 똑바로 직시하길 바랍니다. 어쩌면 아직은 결정적으로 대재앙이 닥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

… 중략) 여러분 모두가 연민과 정의를 부르짖게 될 때 나는 내 소임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에밀 졸라​-


 소설을 읽는 재미를 위해 이 작품은 일부러 줄거리를 소개하지 않았다. 수많은 목숨을 집어삼키고 그 피로 배를 불린 탐욕스러운 갱과 그에 얽힌 수많은 사연과 이데올로기, 작가가 치열하게 묘사한 분노와 슬픔, 절망을 극적으로 느껴보시라고. 졸라의 소설 중 가장 추천하고픈 소설이다. 그 압도적인 힘에 매혹당한 또 다른 독자분들을 위해 느낌과 감상만 대강 적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더 이상 말해서 뭣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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