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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Feb 27. 2024

세계 최초로 선거운동을 한 로마의 왕 타르퀴니우스


 

Tarquinius Priscus) 재위 : 기원전 616년 ~ 기원전 578년


 Tarquinius Priscus) 재위 : 기원전 616년 ~ 기원전 578년

 기록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선거운동을 한 사람은 2600년 전 고대 로마 왕국의 다섯 번째 왕 타르퀴니우스였다. 그는 에트루리아에서 온 이민자였고 처음으로 선거운동을 통해 로마의 왕이 된 사람이다. 로마의 왕은 세습이 아니라 선거로 뽑혔다. 건국왕 로물루스도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왕이 승하하면 원로원은 인테르렉스를 임명하고 선거를 실시했다. 로마 시민권자 중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결함이 없는 사람이 로마왕에 입후보할 수 있었다.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왕으로 출마할 수 없었다. 선거가 실시되고 새로운 로마왕이 선출되면 민회가 최종 승인을 하고 사제들은 조점을 쳐서 징조를 살폈다. 이 모든 절차가 끝나면 로마왕은 즉위식을 올리고 통치를 시작한다.


 로마의 왕은 선대 왕으로부터 토지와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물론 친구나 친척을 마음대로 공직에 임명하고 개인 재산도 크게 한 몫 챙길 수 있었다. 선거를 치르는데 상당한 비용이 들었고 많은 로마 왕들이 권력 다툼 속에 희생양이 되었지만 그래도 왕은 한 번쯤 해볼 만한 자리였다. (타르퀴니우스는 유세 활동을 하느라 돈을 많이 썼지만 왕이 된 후에 그의 재산은 곱절로 불어났다) 왕은 최고신 유피테르의 대리자로서 얼굴을 붉게 화장하여 위엄을 드러냈다.


 왕은 시민을 처벌하거나 중요한 국가사업과 정책을 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민회의 최종 승인을 얻어야 했으며 왕이라도 법을 준수해야 했다. 왕이 법을 어기면 폭군이라고 비난받았고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었다. 로마의 왕은 종신 대통령직과 비슷했다. ​로마 시민권자로서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신체 건강하면 선거에 후보로 나갈 자격이 주어졌지만 타르퀴니우스 시대까지 외국인이 왕이 된 경우(누마 폼필리우스가 외부에서 오긴 했지만 그는 로마 양대 민족 가운데 하나인 사비니족 출신이다)는 없었다. 모든 것은 기원전 7세기 경, 에트루리아 출신 장사꾼 루코모가 가족을 데리고 로마로 이주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때만 해도 로마는 매우 가난하고 촌스러웠으며 먹을 것이라곤 보리죽과 치즈뿐인 동네였다. 그런데 어느 날 화려한 마차를 탄 외국인 일가족이 로마에 나타난다. 머리 길게 기르고 값비싼 옷을 입은 남자가 마차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는 에트루리아 출신 하급 귀족 루코모였다.


 부유한 그리스계 상인 데리마투스와 에트루리아 귀족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루코모는 폐쇄적이고 혈통을 중시하는 에트루리아에서 혼혈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있었다. 그는 부유하고 야망도 강했지만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이유로 장사꾼 밖에 할 수 없다는 현실에 분노했다. 그의 현명한 아내 타나퀼은 로마로의 이주를 권했다. 루코모는 아내의 조언대로 전재산을 처분하여 로마로 이주했다. 로마와는 비교도 안 되는 부유한 나라 에트루리아 출신 귀족이 돈과 보석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귀화하자 로마왕 안쿠스 마르키우스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그는 루코모에게 로마 시민권과 관직을 줬고 루코모는 이름을 로마식 이름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로 개명했다. 안쿠스는 루코모를 따라온 사람들에게도 땅을 나눠줬다. 그렇게 한 무리의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로마에서, 타르퀴니우스는 그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는 우수한 군사 지휘관이고 유능한 행정관이었으며 그가 데려온 에트루리아 출신 기술자들은 로마에 선진문물을 전수해 주었다. 에트루리아가 로마에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그리스인에게 배운 알파벳 문자는 물론, 도로와 하수도 시설, 대경기장 등 수많은 건축기술과 토목 기술을 로마에 전해주었다. 두 얼굴의 야누스 신과 잔혹한 검투사 문화도 에트루리아에서 온 것이다. 타르퀴니우스는 친절하고 예의가 발랐으며 선물이 후하여 왕과 시민들의 호의를 샀다. 귀족들도 대부분 그를 좋아했다. 안쿠스 왕은 타르퀴니우스는 자신의 유언 집행자로 임명했지만 그는 왕의 공증인 자리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왕이 죽은 후 타르퀴니우스를 로마의 왕 선거에 입후보했다. 원로원은 관례대로 인테르렉스를 임명하고 선거를 실시했다.


• 세계 최초의 선거운동

 이때 타르퀴니우스는 자신을 왕으로 뽑아달라며 선거 운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기록상 세계 최초의 선거운동이다. 로마 곳곳에서, 그는 시민들에게 연설을 하고 유권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 표를 부탁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그는 로마에서 평가가 좋았지만 어쨌든 외국인 이민자였다.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로마에 충성하며 시민들에게 큰 혜택을 가져올 사람이라며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나는 외국에서 로마로 이주한 사람이지만,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으며 외국인이(누마 폼필리우스) 로마 왕이 된 선례가 없지는 않습니다. ​나는 로마에 뼈를 묻기 위해 처자와 함께 전 재산을 가지고 로마에 왔으며, 나이도 책임 있는 공직에 앉기에 적당한 데다 선왕의 두터운 신뢰를 받았습니다. 로마의 신들을 공경하고 누구보다 로마법을 존중합니다. ​나를 왕으로 뽑아주십시오!

  연설이 끝나자 로마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성으로 대답했다. 민회에서 타르퀴니우스는 압도적 다수 지지를 얻어 왕에 선출되었다. 원로원도 결과를 두말없이 승인했다. 이렇게 해서 대대로 사비니, 라틴계에서 선출되는 로마의 왕위에 처음으로 에트루리아 출신이 올랐으니 그가 로마의 다섯 번째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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