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이야기
"신호등 앞으로 나올래?"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다.
평소 같으면 문 앞에 조용히 두고 가셨을 텐데, 오늘은 직접 전해주려는 듯하다. 신호등까지는 불과 2~3분 거리지만, 나는 굼뜨다. 겨울이라 잠깐 나가려 해도 챙길 것이 많다. 스누피가 그려진 잠옷 바지를 벗고, 남의 시선을 끌지 않을 무채색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는다. 두꺼운 수면양말을 벗어 던지고, 신발이 편히 들어갈 보통 양말을 신는다. 패딩을 걸치고 장갑까지 챙겨 문을 나선다.
엄마는 K시에서 평생을 살아오다, 서울로 이사 온 지 5년이 넘었다. 내가 출산하자마자 육아를 돕겠다며 서울로 바로 올라오셔서 우리집에 머물렀지만, 아빠가 떠난 후에도 홀로 남은 아파트를 처분하지 않으셨다. 정 붙일 새도 없이 떠나야 할 곳이라 생각했기에, 잠시 있다가 다시 내려가리라 마음먹으셨다. 하지만 엄마의 계획은 현실 앞에서 틀어졌다. 나는 일에 더 바빠졌고, 엄마는 손주 손녀에게서 삶의 가장 큰 기쁨을 찾았다. 결국 엄마는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내 곁으로,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맞은편 빌라촌으로.
도로는 경계를 나눈다. 아파트가 빼곡한 구역과 빌라가 모여 있는 신호등 건너편으로. 엄마는 널찍한 30평대 아파트를 팔았지만, 그 돈으로 우리 동네에서 마련할 수 있었던 건 오래된 빌라의 전세가 전부였다.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신호등을 건넌다.
아이들 등하교, 학원 픽업, 따뜻한 국 한 그릇을 건네주러, 딸 집 안 구석구석을 닦아주러.
신호등 너머, 엄마가 보인다. 손에는 무거운 보자기가 들려 있다.
"무거운 걸, 김서방이 집에 있으면 김서방 내보내지." "미역국이랑 월남쌈이랑 김치갈비찜 했어."
"주말엔 좀 쉬시라니까. 뭘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내일 네 생일이잖아."
아, 내일이 음력 1월 5일인가. 깜빡하고 있었다. 커갈수록 매번 바뀌는 음력 생일이 번거로워 양력 생일을 챙긴 지 오래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음력이 ‘진짜’ 생일이라 믿으신다.
엄마는 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 내 패딩 주머니에 쏙 넣어주신다.
"얼마 안 되지만, 맛있는 거 사 먹어."
목이 메인다.
"무슨 돈이 있다고… 추운데 얼른 들어가세요."
나는 신호등을 건너 아파트 단지로 향한다.
신호등을 다 건너 혹시 몰라 뒤를 돌아본다.
건너편에서 엄마는 그대로 서 있다.
나를 보며 어서 들어가라 손짓하신다.
고등학교 때 처음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며 집을 떠나던 날, 엄마가 나를 배웅하고 뒤돌아보았을 때도 그랬다.
그때도, 지금도, 엄마는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표진사진: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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