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전태일 평전> 조영래
철조망을 넘다.
우리들은 대개 어렸을 적에 제각기 어떤 종류의 철조망을 넘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평생을 통하여 끊임없이 철조망을 넘나 든다. 남의 과수원에서 풋사과를 따먹기 위하여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다가 팔다리에 온통 가시자국이 나 본 사람, 돼지먹이의 맛을 잊지 못하고 미군부대의 철조망에 개구멍을 내고 기어들다가 등에 총탄을 맞고 죽어간 어떤 아이의 슬픈 소문을 들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철조망을 넘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잘 알 것이다.
무엇엔가에 이끌려 또는 떠밀려 거기까지 온 우리들을 가로막고 버티고 선, 저 완강한 철조망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풀 죽어 되돌아선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넘는다. 아니, 넘을 수밖에 없다.
철조망, 그것은 법이다. 질서이다. 규범이며 도덕이며 훈계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억압이다. 겹겹이 철조망을 둘러치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철조망을 넘어서려는 사람을 짓밟고 그 쓰러진 얼굴 위에다 침을 뱉는다. 쓰러져 짓밟힌 인간의 이지러진 얼굴 위로 고통스러운 죄의식의 올가미가 덮어씌워진다.
철조망을 넘는 과정은 무뢰한으로 전락하는 과정, 법과 질서의 테두리 밖으로 고독하게 추방되는 과정, 양심과 인륜을 박탈당한 비인간으로 밀려나는 과정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간으로 회복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그 어떤 법률과 질서와 도덕과 훈계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 자신의 삶의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철조망 앞에 결박당하여 의식이 마비되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생명력, 인간 의지의 표현이다.
표지사진: Unsplash의Lars Du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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