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침착한 힘이 그녀의 말씨와 몸짓에 배어있었다

(필사)<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by 루이보스J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이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행로를 밟아간다해도 더이상 주변에서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인선은 이십대 후반부터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한 관심을 가졌고,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 일을 십년 동안 끈기있게 했다. 물론 벌이가 되는 촬영일도 닥치는 대로 했지만, 수입이 생기는 대로 자신의 작업에 쏟아부어야했기 때문에 늘 가난했다. 그녀는 조금 먹고 적게 쓰고 많이 일했다. 어디든 간소한 도시락을 준비해다녔고, 화장은 전혀 하지 않았고, 거울을 보며 숱 가위로 직접 머리를 잘랐다. 단벌 솜 파카와 코트는 안에 카디건을 덧대 꿰매어서 따뜻하게 만들었다. 신기한 점은 그런 일들이 마치 일부러 그렇게 하는 듯 자연스럽고 멋스러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중략)


입술을 다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인선의 옆얼굴을 나는 보았다. 특별한 미인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가 그랬다. 총기있는 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성격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어떤 말도 허투루 뱉지 않는, 잠시라도 무기력과 혼란에 빠져 삶을 낭비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 때문일 거라고, 인선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혼돈과 희미한 것, 불분명한 것들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목적을 가진다고, 애써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낱낱이 실패한다해도 의미만은 남을 거라고 믿게 하는 침착한 힘이 그녀의 말씨와 몸짓에 배어있었다.


한강 작가님



표지사진: UnsplashHarli Marten

#제주43#4.3#한강#작별하지않는다#소설#필사#독서#침착#아름다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 앞에 놓인 철조망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