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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행복은 목적 없고 효용 없는 것 덕분이다.

(필사) <관조하는 삶> 한병철

by 루이보스J

무위는 인간 실존의 찬란한 형태다.

오늘날 무위는 활동의 공백 형태로 퇴색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안에서 무위는 포섭된 바깥으로서 다시 등장한다. 우리는 그 무위를 '여가 Freizeit'라고 부른다. 여가는 노동 후의 회복에 기여하므로 노동의 논리에 구속된 채로 머무른다. 노동의 파생물로써 여가는 생산 내부의 한 기능 요소를 이룬다. 이로써 노동과 생산의 질서에 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시간은 사라진다. 우리는 신성한 쉼, 축제의 쉼을, "삶의 강렬함과 관조를 통합하는 쉼, 심지어 삶의 강렬함이 분방함으로 심화하더라도 삶의 강렬함과 관조를 통합할 수 있는 쉼"을 더는 알지 못한다.


'여가'에는 삶의 강렬함도 없고 관조도 없다. 여가는 따분함이 고개 드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때려죽이는 시간이다. 여가는 자유롭게 생동하는 시간이 아니라 죽은 시간이다. 강렬한 삶은 오늘날 무엇보다도 먼저 더 많은 성과 혹은 소비를 의미한다. 바로 무위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무위가 삶의 강렬한 형태이자 찬란한 형태임을 우리는 잊어버렸다.


(중략)


참된 행복은

목적 없고 효용 없는 것 덕분에,

고의로 장황한 것 덕분에,

비생산적인 것,

에둘러 가는 것,

궤도를 벗어나는 것,

남아도는 것,

아무것에도 유용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종사하지 않는 아름다운 형식들과 몸짓들 덕분에 있다.


느긋한 산책은 곧장 걸어가기나 달려가기, 행진하기와 비교할 때 호화롭다. 무위의 예식성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활동하긴 하지만 무언가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무언가를-위하지-않음, 목적과 효용으로부터의 자유는 무위의 핵심이론이다.


이것은 행복의 기본 공식이다.


표지 사진: UnsplashMarylou For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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