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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구심을 안고 느릿느릿 본질로 향하다

영화 <콘클라베>를 보고

by 루이보스J


주말, 혼자서 예술영화 전용 극장에서 <콘클라베>를 보았다.


집 근처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도 있지만, 난 이 작은 극장을 더 좋아한다.


이곳엔 영화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온다.

영화 시작한 지 한참 지나서 들어오는 사람도 없고,
중간에 핸드폰 벨소리나 불빛으로 공해를 일으키는 일도 없다.
팝콘 봉지를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영화가 끝나도 다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그 여운을 음미한다는 것. 마치 영화를 함께 보내는 마지막 인사 같달까.



<콘클라베>는 그런 공간에서 감상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였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 작품


<콘클라베>는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를 배경으로 한다. 전 세계 추기경들이 모여 신의 뜻을 찾기 위해 기도하고 토론하고, 때로는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결국, 그들 역시 인간이다.


욕망과 두려움, 확신과 의심 속에서 ‘신의 뜻’과 ‘자신의 욕망’ 사이를 오가며 본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1.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십시오.


벨리니 추기경이 극구 교황의 자리를 거부하는 로렌스 추기경에게 던지는 대사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잘 살피십시오.”

Examine your heart.

스스로 욕망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우리도 종종 착각한다.
나는 욕심이 없다고, 나는 오직 진심만으로 움직인다고.

그러나 과연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2. 확신은 통합의 적입니다.


콘클라베를 이끄는 단장(Dean)의 한 마디가 깊게 남았다.

“확신은 통합의 적입니다. “

Certainty is the enemy of unity.”


확신은 자칫 자신을 절대화하게 만든다.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사고로 이어진다.
결국 타인을 배제하고, 그 틈에 증오와 혐오가 자라난다.


확신보다는 의문을 품고, 스스로를 경계하며, 여지를 남기는 것.
그것이 공존의 시작임을 영화는 일러준다.


3. 주께서는 우리에게 눈과 귀를 주셨습니다.


콘클라베에는 오직 남성 추기경들만 참여한다.
수녀들은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뒤치다꺼리를 한다. 겉으로 보기엔 ‘보이지 않는 존재’지만, 영화는 그들의 존재를 결코 가볍게 그리지 않는다.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연기한 아그네스 수녀는 남성 권력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다.


결정적인 순간, 여성의 예민한 촉과 침묵 속에 목소리가 교황 선출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도적으로 배제된 자리에서도 자신의 존재와 의미를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서사가 인상 깊었다.


4. 의구심을 안고, 느릿느릿 본질로 향하는 거북이처럼


로렌스 추기경은 ‘기도’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교황마저 신에 대한 믿음은 있었지만, ‘교회’라는 제도와 권력에 대한 회의감을 품고 있었다.

세속을 떠난 성직자라 해도 의구심과 욕망은 여전히 존재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느릿느릿 본질로 향하는 거북이처럼 나아간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같다.
확신과 회의, 욕망과 신념 사이를 오가며
의문을 안고 걸어가는 것.
때로 넘어지고, 다시 걷고, 질문하고, 또 걷는 것.

교황이 생전에 사랑했던 거북이처럼.




‘좋은 영화는 이런 거지’

영화관을 나오며 마음이 묵직해졌다.
좋은 영화는 단순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그 여운으로 관객 안에 질문을 남긴다.


<콘클라베>는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 숨 막히는 긴장감, 미장센과 음향까지 오롯이 영화관 스크린에서 경험해야 하는 영화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이 있다면, 상영 끝나기 전에
꼭 극장에서 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표지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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