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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를 넘어 ‘자기 존중’으로

거절의 기술

by 루이보스J



-관계를 우선한 마음


지인이 문서 작업을 부탁했다.

아니, 약간의 사례비도 받았으니 ‘부탁’보다는 ‘요청’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통역도 번역도 아닌, 내 본업에서 한 발짝 비켜난 일이었지만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관계를 소중히 여겼기에 기꺼이 돕겠노라 했다.

그 모습을 본 동생은 표정부터가 씁쓸했다.


“언니 같은 고급 인력이 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해?”

그 말에는 분명 나를 향한 아낌과 걱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별일도 아닌데 뭘 그래”라고 웃었지만,

사실은 나보다 동생이 더 나를 아꼈던 셈이다.


간단한 작문과 문서편집이라고 생각했던 일은 꼬박 두 시간이나 걸렸다.

약간의 사례비와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은 마음보다 훨씬 값진 두 시간의 시간이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나를 사랑한다는 것, 나를 지킨다는 것

‘자기애’는 거울 속 내게 환히 웃어주는 감정이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의 능력을 자랑스러워할 때,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자기 존중’은 그보다 더 깊고 단단한 것이다.

자기 존중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전문성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지켜내는 태도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누군가의 기대 앞에 너무 쉽게 무장 해제되고 있진 않았을까.
관계라는 이름으로, 호의라는 명분으로, 내 경계를 스스로 허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 vs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

누군가를 도우면 좋은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 도움은 ‘나’를 소모시키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여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나 자신이 스스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경계를 짓는 건 쉽지 않다. 특히 ‘관계’라는 이름으로 요청이 들어올 때, 우리는 흔들리기 쉽다.

그런데 진짜 나를 지키는 힘은, 관계에서조차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온다.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사람

내가 진짜 ‘나를 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제는 이런 말도 연습해야 한다.


이 일은 제 전문 분야가 아니지만, 제가 아는 분 소개해 드릴게요.”


“그 작업은 소중한 시간이 필요해서요. 다음엔 정식으로 의뢰해 주세요.”


불편하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자기애는 거울을 닦는 일이라면,

자기 존중은 거울 앞의 나를 세우는 일이다.

둘 다 필요하지만,

우선순위는 늘 나를 세우는 쪽이다.


"Respect yourself enough to walk away from anything that no longer serves you, grows you, or makes you happy."

— Robert Tew


표지사진:사진: UnsplashKelly Sikkema

#자기존중#자기애#거절#부탁#인간관계#사회생활#경계#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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