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에 대한 예의, 영화 <Look back> 뒤늦은 리뷰
짧지만 충격적으로 신선한 영화였다.
만화를 그리는 두 소녀, 후지노와 쿄모토.
외향적인 후지노는 학교 신문에
네 컷 만화를 연재하고,
내향적인 쿄모토는 집에 틀어박혀
놀라운 그림을 그린다.
처음엔 경쟁이었고, 질투였고,
그러다 점점 함께 그리는 사이가 된다.
영화 속에 책상 앞에 앉아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후지노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말은 없고, 배경도 단조롭지만,
그 한 장면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다.
‘룩백’은 말 그대로, ‘뒤를 돌아보는’ 이야기다.
그러나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그건 등을 마주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앞이 아니라, 뒤.
말이 아니라, 과정.
성과가 아니라,
그 성과를 위해 버티는 ‘시간’에 대한 예의.
창작자는 늘 등을 보이며 일한다.
혼자, 조용히, 실패하면서.
수많은 스케치북 위에 손이 간다.
아무도 보지 않는 뒷모습에서, 작품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뒷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던 날,
SNS를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가 휩쓸었다.
동글동글한 눈, 푸른 숲, 말랑한 볼.
귀엽고 예쁘고… 이상하게 섬뜩했다.
그림은 마치 지브리였다.
단 1분 만에, 마법처럼.
하지만 그것은 마법이 아니었다.
그건, 요약이었다.
지브리의 수십 년이,
AI의 몇 초로 줄어든 장면이었다.
기계는 너무 쉽게 닮아버렸다.
마치 오래된 된장찌개의 맛을
레시피 한 줄과 색상값으로 베껴내듯.
기술은 대단했지만, 거기엔 한 가지가 없었다.
AI는 뒷모습이 없다.
지브리의 세계는 작고 느린 장면들로 이루어진다.
기차 안의 정적, 하늘을 가르는 비행선의 곡선.
그건 장인의 손맛이었다.
오랜 시간, 수많은 실패,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한 끝에
비로소 완성된 세계였다.
AI는 그걸 흉내 낸다.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
‘스타일’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계가 아무리 닮아도, 법은 말한다.
“침해는 아니다.”
그러나 그 닮음의 농도가 99.9% 일 때,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이건 도둑질은 아니지만… 도둑질스럽지 않나요?”
AI가 학습한 수많은 그림 속에는
이름도 모를 창작자들의 밤이, 고독이, 실패가 있다.
그건 데이터가 아니다.
그건 삶이었다.
기계는 창작자인가?
그걸 시킨 우리는 예술가인가?
아니면 그냥, 새로운 스타일 필터를
사용한 '유저'일뿐인가?
우리는 지금, 창작의 경계선 위에 서 있다.
AI는 빠르고 정확하고 유능하다.
반면 인간은 느리고, 자주 틀리고, 흔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흔들림 속에, 진짜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는 걸.
창작이란, 실패하고, 흔들리고,
대부분 보상받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는 또 연필을 든다.
기계는 뒷모습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뒷모습이,
우리를 계속 그리게 만든다.
그건 마법이 아니다.
그건, 창작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표지 사진: Unsplash의Toa Heftiba
#창작#AI#저작권#영화#일본#애니메이션#룩백#LookBack#우정#그림#글쓰기#뒷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