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기쁨'을 찾아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영상이었다.
남대문 시장.
구수한 기름 냄새 속에서 호떡 하나가 막 뒤집힌다.
바삭한 껍질이 지글지글, 설탕과 계피가 녹아내린다.그 앞에, 한 미국인이 선 채 울컥하고 만다.
40년 전, 가난한 선교사로 이 땅에 머물렀던 그는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방금 한 입 베어 문 호떡으로
자신도 몰랐던 감정의 파도를 맞는다.
그가 흘린 눈물은 단지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원적인 어떤 것,
잊힌 줄로만 알았던 감각이
입안 가득한 단맛을 타고
기습처럼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기억은 머리로 돌아오지만, 감각은 몸을 뚫고 돌아온다.
그 시절의 공기, 체온, 햇살의 각도까지 함께 데려온다.
그래서 감각은 설명되지 않는다.
그냥 ‘훅’ 하고 온다.
프루스트는 마들렌 하나로 삼천 페이지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써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한 입 베어 물고 “맛있다” 하고 끝내지만,
사실 그 안에도 작은 서사가 숨어 있다.
마들렌은 단순한 과자가 아니다.
그건 “나는 잊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다”는
찬란한 반전이다.
세상의 무게를 이고 지고,
명함을 들이밀며, 시간을 쪼개 쓰며 사는 우리에게도
그 반전은 불쑥 찾아온다.
호떡 한 입, 라면 한 젓가락,
잊고 있던 노래 한 소절이
굳게 잠긴 서랍 하나를 조용히 연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직도 유효한 기쁨이 온전하게 그 자리에 남아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대체로 감동을 유예하는 일이다.
“예전에 먹어봤잖아.”
“그 노래는 너무 많이 들었지.”
“그곳은 여러 번 가봐서…”
감각이 무뎌졌다기보다는, 감각을 의심하기 시작한 건 아닐까.
“이게 정말 감동인가?”
“내가 너무 감성적인 건가?”
스스로를 검열하며, ‘느끼는 나’를 점점 밀어낸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우리는 날것 그대로의 감각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온 나날 속에서
‘내가 아직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조용히 놀라고, 감동한다.
내가 먹어본 음식 중 가장 값비싼 건
6성급 호텔의 뷔페였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서 먹던
붕어빵의 바삭한 꼬리.
첫사랑이 끓여주던 꼬들꼬들한 라면이다.
중학교 음악 시간에 피아노 위로 울려 퍼지던 가곡,
소나기 소리를 들으며 나무 책상 앞에서 쓰던 어느 저녁의 일기장.
기억은 흐릿해질지라도 감각은 뚜렷하다.
감각은 언제든
‘그때 그 순간의 나’를 다시 불러낸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분주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충분히 웃고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찾는다'는 것은
단순한 기쁨을 단순하게 기뻐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나를 조용히 다시 만나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산다.
그 현재 속에서
뜨겁고, 달고, 바삭한
한 입의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든 마들렌 향으로 가득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끈적하고 뜨거운 여름을 나는 최고의 방법은
단순한 기쁨을 찾아 음미하는 것이다.
아삭하고 상큼한 복숭아 한 개가 주는,
그 여름의 기쁨 말이다!
본문 사진: Unsplash의Sara Iov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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