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꾸며도, 꾸미지 않아도 비난받는다

책 <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의 물음 앞에서 나의 ‘꾸밈’을 돌아보다

by 루이보스J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친구와 함께 퍼스널 컬러 컨설팅 패키지 서비스를 받았다.

외국인 친구의 통역을 부탁받아 따라갔지만, ‘겸사겸사’ 내 진단도 받아보았다.
컨설턴트는 내 얼굴과 몸을 세세히 측정했다.
얼굴의 상·중·하안부의 비율, 쇄골의 드러남, 어깨선과 가슴, 허리 라인부터 허벅지, 종아리 두께와 길이까지.
나는 낯선 사람의 손끝 아래에서 숫자와 각도로 환원되었다.

진단 결과, 나는 스스로 ‘쿨톤’이라 믿어왔지만 사실은 ‘봄 웜톤 라이트’였다.
균형 잡힌 체형이라 옷의 제약은 적지만, “장식보다 소재의 고급스러움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받았다.


상담을 마치고 나니, 이상하게도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지 관찰받고 평가받았을 뿐인데, 마치 나 자신이 새 버전으로 갱신된 듯했다.


집에 돌아오니 주문해 둔 수전 손택의 <여자에 관하여>가 도착해 있었다.


책을 펼치자 그녀의 문장이 거울처럼 내 하루를 비췄다.


그녀의 통찰에 따르면, 오늘 내가 한 일은 단순한 취향의 표현이 아니라,’ 꾸밈 노동’의 연장이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것은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의무, 혹은 그렇게 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한다는 강박이다. 많은 여성들이 ‘여성다움’의 찬사로 받아들이는 그 이상화는, 실은 여성을 지금의 자신보다 모자란 존재로 느끼게 하는 교묘한 장치다. 아름다움의 이상은 스스로에게 부과된 억압의 한 형태로 작동한다. 여성은 자신의 몸을 전체로 보지 않고, 각 부위를 따로따로 평가하도록 배운다.(Women are taught to see thier bodies in parts, and to evaluate each part separately). 가슴, 발, 허리, 목, 눈, 코, 피부, 머리카락…… 그 하나하나가 불안과 초조, 그리고 자책의 시선 아래 놓인다. 어느 하나가 괜찮아 보여도, 다른 어딘가는 늘 부족하다.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남성의 외모는 다르다. 남자의 ‘잘생김’은 전체로, 한눈에 인식된다. 누가 그의 신체를 세세히 분해해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을 좇는 일은 사소하거나, 심지어 남자답지 못한 일로 여겨진다. 이상적인 남성에게는 오히려 작은 결점이 매력으로 작용한다. 한 여성 영화 평론가는 말했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매력은 한쪽 볼에 있는 작은 사마귀 덕분이다. 그 덕에 그는 단순히 ‘예쁜 얼굴’에 머물지 않는다.” 그 말속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쉽게 폄하되는가—그리고 아름다움 자체가 얼마나 불공평하게 해석되는가—에 대한 진실이 숨어 있다.


“아름다움의 특권은 막대하다,” 장 콕토는 말했다. “그러나 그 위험 또한 크다."(The privileges of beauty are immense,” said Cocteau, “but so are its perils.) 분명 아름다움은 힘이다. 문제는 그것이 여성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힘이라는 사실이다. 그 힘은 늘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스스로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끌어당기기 위한 힘, 즉 자기 자신을 부정함으로써만 유지되는 힘이다. 여성은 그 힘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사회의 비난 없이 포기할 수도 없다.


여성에게 ‘치장한다’는 것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다. 그것은 일이고, 의무다.(To preen, for a woman, c an never be just a pleasure. It is also a duty. It is her work.) 설령 여성이 정치나 법, 의학, 비즈니스 등에서 성공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압박 속에 산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을 유지할수록 그녀의 전문성과 객관성은 의심받는다.

아름다우면 신뢰받지 못하고, 그렇지 않으면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여성은 꾸며도, 꾸미지 않아도 비난받는다. (Dammed if they do-women are. And damned if they don't)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사회는 여성을 ‘표면의 관리자’로 규정해 왔다. 그리고 그 표면을 가꾸는 일을 이유로 그녀들을 얕보거나, 혹은 귀엽다고 여겼다. 그것이야말로 잔인하고도 오래된 함정이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성이 아름다움이라는 특권과 탁월함으로부터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 거리를 통해서야 비로소 보인다. ‘여성성’이라는 신화를 떠받치기 위해 아름다움 자체가 얼마나 왜곡되어 왔는지. 아름다움을 여성으로부터—그리고 여성을 위해—되찾는 길이 있어야 한다.

(But to get out of the trap requires that women get some critical distance from that excellence and privilege which is beauty, enogh distance to see how much beauty itself has been abridged in order to prop up the mythology of the "feminine." There should be a way of saving beauty from women-and for them.)

여성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시간을 쓰고, 그 시간을 쓰는 자신을 ‘자발적’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의 뿌리에는 타인의 시선이 박혀 있다.

그 시선이 사라진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내 얼굴과 몸을 들여다볼까?


표지 사진: UnsplashPeter Kalo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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