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량 패딩보다 가벼운 마음을 입고

과잉의 시대에 ‘충분함’을 연습하는 방법

by 루이보스J

가을 냄새가 스며든 아침, 여름옷을 정리하려고 옷장을 열었다.
숨이 막혔다.


지금 살고 있 집으로 이사하며 꽤 널직한 드레스룸이 생겼을 때, 나는 드디어 여유와 질서의 시대가 열릴 거라 믿었다. 옷을 한눈에 볼 수 있고, 계절마다 정리도 쉬울 줄 알았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그 공간은 예전처럼 다시 빽빽해졌다.
자주 입는 옷은 30~40% 남짓, 나머지는 각자의 이유와 함께 옷걸이에 매달려 있다.
비싸게 샀기 때문에, 아직 멀쩡하기 때문에, 예쁘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결국 나는 옷을 쌓은 것이 아니라, 미련과 변명의 층을 쌓고 있었다.


옷장이 텅 빈 채 사는 일본인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옷은 다섯 벌 남짓이었을까.
그는 아침마다 고르지 않아도 되었고, 이사할 때도 가볍게 떠났다.
무엇보다 ‘버려야 할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부터 자유로웠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패딩을 질질 끌며 사는 인생보다,

가벼운 경량 패딩을 입고 깃털처럼 경쾌하게 살고 싶다.


미련을 덜어내고, 집착을 벗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 결단의 계절이다.

-옷을 포함 쓰지 않는 물건은 이유 불문하고 처분하기

-사기 전에 ‘진짜 필요한가?’ ‘이미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묻기

-이미 쓰는 물건도 하나씩 줄여보기.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이건 단지 넘쳐나는 물건의 문제가 아니다.
욕망의 구조, 그 오래된 습관의 문제다.


옷장은 결국 삶의 축소판이다.
처음엔 여백이 있었다. 숨이 통하고, 가능성이 있었다.


과잉은 조용히 스며든다.
‘예쁜 옷이니까.’ ‘세일 중이니까.’ ‘조금 더 있으면 안심이 될 것 같아서.’
더 사들이고, 더 채우고, 더 쌓는다.


물건의 과잉은 공간을 흐리고,

정보의 과잉은 생각을 흐리며,
관계의 과잉은 감정을 탁하게 만든다.


자유란 ‘아무거나 다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걸 알고 있는 상태’다.


더 많은 선택지가 자유를 주는 줄 알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선택의 피로는 우리를 마비시킨다.

옷장 앞에서 ‘입을 게 없다’고 느끼는 순간,
넷플릭스 앞에서 한 시간째 고르다가 지쳐 아무것도 보지 않는 순간,
우리는 과잉 속에서 오히려 결핍을 경험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에서 옷 세 벌로 살았다.

소유가 줄어들수록 자유가 늘어남을 깨달았다.
그가 추구한 건 궁핍이 아니라 명료함이었다.

삶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의미 없는 무게를 덜어낸 것이다.


나는 소로처럼 숲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지만,
옷장 앞에서, 달력 앞에서 작은 월든을 실천할 수는 있다.


버릴 옷과 기부할 옷을 정리하고 나니 옷장에 어느 정도 여백이 생겼다.
책상 위 포스트잇을 절반으로 줄였을 때,
휴대폰 앱을 50개에서 20개로 지웠을 때처럼,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 환기되는 감각이 찾아왔다.


푸와 피글렛이 생일 선물로 이요르에게 꿀단지와 망가진 풍선을 건넸을 때,
이요르는 행복해했다.
그게 전부였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했기 때문에.

과잉으로부터의 자유란 결국,

덜 가지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다.



표지 사진: UnsplashAndrej Lišakov

본문 사진: UnsplashAmanda V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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