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즐거움>을 다시 펼치며
며칠 전, 카페에서 책을 읽는 중년 남성을 보았다.
약간 희끗한 머리로 짐작컨대 오십대쯤 되어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혼자만의 독서 시간을 즐기는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의 시선은 오랫동안 고요하게 책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 단정한 모습에 마음이 살짝 설렜다.
무슨 책일까 궁금해 다시 한번 그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내 책장에도 꽂혀 있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Finding Flow)>였다.
몰.입.
한 해의 끝에서 돌이켜보니, 역시 가장 충만했던 순간은 몰입의 순간들이었다.
집에 돌아온 뒤 나도 그 책을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았다.
참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주저 말고 나서라. 싫으면 그 뿐이지만, 그럼 묘자리나 보러 다니든가
- 오든
If we really want to live, we’d better start at once to try; if we don’t, it doesn’t matter, but we’d better start to die. -W.H. Auden
오든의 시는 이 책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지금 이 순간과, 언제가 불가피하게 맞이할 임종의 순간 사이에서, 살아가는 길을 택하든가 죽어가는 길을 택하든가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제대로 공급되는 한 삶은 끊어지지 않지만, 여기서 오든이 말하는 삶은 노력없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The lines by Auden reproduced above compress precisely what this book is about. The choice is simple: between now and the inevitable end of our days, we can choose either to live or to die. Biological life is an automatic process, as long as we take care of the needs of the body. But to live in the sense the poet means it is by no means something that will happen by itself
이런 삶을 방해하는 힘은 사방에 널려 있다. 자칫 마음을 놓았다가는 거기에 놀아나기 십상이다. 생물은 몸에 박힌 유전 물질을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서든 퍼뜨리려고 애쓴다. 문화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제도를 널리 전파하려고 한다. 타인들은 자꾸 나를 누르고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 나야 어떻게 되건 말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려야한다. 삶의 길은 스스로 발견해야한다.
In fact, everything conspires against it: if we don’t take charge of its direction, our life will be controlled by the outside to serve the purpose of some other agency. Biologically programmed instincts will use it to replicate the genetic material we carry; the culture will make sure that we use it to propagate its values and institutions; and other people will try to take as much of our energy as possible to further their own agenda-all of this without regards to how any of this will affect us. We cannot expect anyone to help us live; we must discover how to do it by ourselves.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분명히 한낱 생물체로서의 생존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까운 시간과 재능을 허비하지 않고 나만의 개성을 한껏 발휘하면서 복잡다단한 이 세상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충만한 생활을 뜻하는 말이리라.
So what does “to live” mean in this context? Obviously, it doesn’t refer simply to biological survival. It must mean to live in fullness, without waste of time and potential, expressing one’s uniqueness, yet participating intimately in the complexity of the cosmos.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카페에서 마주친, 이름도 모르는 중년 남성에게
조용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가 보여준 몰입의 순간이
나로 하여금 ‘진정한 삶’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했으니.
덧붙임)
번역본과 원문을 함께 읽어보니, 드물게 한국어 번역이 유려했다.
문장의 결에서 정성이 느껴져 역자를 찾아보니 역시나 이희재 선생님.
지금도 자주 펼쳐보는 《번역의 탄생》의 저자이기도 하다.
좋은 번역은, 좋은 책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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