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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Mar 19. 2023

복수, 때를 기다리는 잔혹 예술

<더 글로리> 없는 복수극 리뷰  

<더 글로리> 파트 2로 온 나라가 들썩인 한 주였다.  듣자 하니 파트 1보다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더 많은 명대사가 쏟아지고, 무엇보다 모두가 기다린 통쾌한 복수가 제대로 완성됐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보지는 않았다.  한 편의 영화라면 모를까 시간이 귀한 워킹맘에게 시리즈물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시간이 난다 해도 굳이 찾아볼 것 같지는 않다.  


복수를 소재로 한 영화는 이미 충분히 봤다.  언뜻 떠오르는 것만 해도 <현기증>, <새>, <레베카> 같은 히치콕 영화부터 <대부>3부작, <글래디에이터>, <메멘토>, <킬 빌>, <아저씨>, <테이큰>까지 '내가 이렇게나 복수 소재를 좋아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중에서도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 보이>(2003), <친절한 금자 씨>(2005)는 기획자체나 완성도면에서 복수극에 정점에 우뚝 서있다.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부르는 '파멸'(복수는 나의 것), 복수의 '완성'(올드 보이), 복수 끝에 '구원'(친절한 금자 씨)이라는 테마를 엮어낸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엉뚱하게도 복수의 완성->구원->파멸의 순서로 봤다.  그래서인지 복수 3부작의 최종 이미지는 여전히 '파멸'에 멈춰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복수 소재는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같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 서사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왜 복수 이야기에 끌리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정의 실현에 대한 갈망 충족이리라.  우리는 무고한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한 ‘악당’들이 응당 받아야 할 죗값을 치르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현실에서는 요원하기만 한 정의실현이 복수극에서는 깔끔하게 종결된다. 약자의 승리를 보고 싶어 하는 욕망도 함께 작용한다.  가진 것 없고 무력하기만 한 주인공이 불굴의 의지로 끝끝내 반전을 만들어 힘 있고 악한 자를 무너뜨리고야 마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벅찬 감격이 밀려온다.  정당한(?) 폭력행사를 보는 쾌감도 빼놓을 수 없다.  치고받고 싸우는 킥 복싱 같은 스포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조차도 영화 속에서 악당을 죽도록 두들겨 패는 장면에서는 온몸에 퍼지는 스릴과 함께 카타르시스까지 느끼니까. 한마디로 일상적으로 크고 작은 좌절과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복수극은 손쉬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는 다시 현실로 내동댕이쳐진다.  영화 속에 나올 정도의 규모의 악랄함은 아닐지언정 내 앞에 놓인 부정의는 여전히 미해결상태 그대로다.  


대부분 복수극속의  최고의 복수는 이 유명한 대사를 그대로 실현한다.


"Revenge is a dish best served cold."  


번역하자면 '복수라는 음식은 차갑게 식혀서 대접하는 것이 제일이다' 쯤이 되겠다.  즉, 하수는 격분한 상태로 바로 응수하지만 고수는 뒤로 물러나 힘을 기르고 적의 허를 찌를 수 있는 '때'를 기다려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최대의 고통을 안겨준다는 의미다.   


과연 현실에서도 같은 공식이 적용될까?


나도 누군가를 많이 미워한 적이 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상사였다.  내 머릿속에서 나는 약자였고 그는 강자였다. 나는 억압당했고, 그는 나를 억압했다. 나는 선인이고 그는 악인이었다. (… 과연 그랬을까?) 마음에 ‘미움’이라는 독이 가득 차 한동안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독은 내가 삼켜놓고 상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것이 복수심이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독기가 흩어졌다. 어느새 그 상사의 관점으로 상황을 재구성해보는 여유까지 생겼고  ‘그 사람 관점에서는 그랬을 수도 있겠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중에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진심으로 쾌유를 빌었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완전한 선인도, 절대 악인도 없다(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최고의 복수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당장 오늘을 '잘 사는 것이다'.  내 입안에 한 방울이라도 '독기'가 스며들지 않게 하는 것, 소중한 내 맘의 한 뼘도 허락하지 않는 것.


#더글로리#박찬욱#복수3부작#킬빌#최고의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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