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이보스J Mar 10. 2023

<모든 것은 빛난다>(2013)를 읽고

표면에 머무르는 능력, 행복에 이르는 길

<모든 것은 빛난다> (All Things Shining)

부제:Reading the Western Classics to Find Meaning in a Secular Age


어떤 책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사람을 읽게 된다.   추천받고 읽게 된 책이 그렇다.  때문에 섣불리 책을 추천받지 않는다. 책 취향도 제각각이라 내 코드에 맞으라는 법도 없는 데다 책을 읽는 내내 추천해 준 사람을 떠올리게 되니까.  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책을 추천해 준 사람까지 덩달아 약간은 시시해질지도 모를 일이니까.



<모든 것은 빛난다> (All things shining)(2011)은 오래간만에 추천을 받고 읽게 된 책이다.  


어떤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해 준다는 것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당신도 나만큼이나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압니다.

둘째, 이 책의 무언가가를 나를 건드렸습니다.

셋째, 당신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기를 바랍니다. (또는 당신은 내가 느낀 바를 감지할 수 있는 감성의 소유자입니다.)


<모든 것은 빛난다>, 일단 제목부터 맘에 들었다.  몇 년 전 가슴 찡하게 했던 김혜자 선생님의 수상 소감이 떠올랐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2019년 백상예술대상 수상소감/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대사)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작가가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신의 죽음’ 이후에 영영 삶의 지표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삶’은 과연 무엇인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단테의 <신곡> 그리고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이르는 서양 고전에서부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와 깉은 칙릿. 우디 앨런 영화까지 다채로운 레퍼런스가 총동원되는 < 모든 것은 빛난다>의 한 줄로 요약이다.


우리는 분명 우주의 신성한 질서에 따른 확실하게 고정된 세계에서 해방되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행복에 겨운 자유의 충만이 아니었다.  도리어 우리는 매 순간 ’ 내가 누군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무자비함과 씨름하게 되었다.   허무주의와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들은 ’ 신이 설계해 준 확실성‘의 세계로 회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삶’에는 영영 도달할 수 없는 것일까?


책에서 내린 처방은 간단하다. "행복에 대한 기대를 낮출 것"


향유고래가 얼굴이 없다는 말은 기독교의 신비주의적 전통을 뛰어넘는 이야기다. (중략) 멜빌의 우주에는 신이 없으며, 따라서 우주 자체에 숨겨진 진리도 없다. (중략) 표면적인 사건들 배후에 감춰진 우주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모순되고 신비스럽고 다양한 표면적인 사건 자체가 의미의 전부라는 생각이 들어있다. 이슈메일의 놀라운 힘은 이런 표면적 의미만을 가지고도 잘 살아간다는 데 있으며, 거기서 즐거움과 안식의 참된 처소를  발견한다는 데 있다.  그는 그 의미들에서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라는 말이 뜻이 바로 이것이다.  이렇듯 표면에 머무르며 사는 능력, 즉 일상 속에 감춰진 목적을 찾는 대신 그것이 선사하는 의미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 이미 주어져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발견하는 능력은 기독교 이전 시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기독교 이전 시대뿐 아니라 불교 이전, 플라톤 이전, 힌두교 이전, 유교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우주자체에 숨겨진 진리 같은 것은 없다니…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는 일이 이렇게 가슴 후련한 일이었구나.  아침이면 기적같이 내 방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  아이들의 보드라운 살결,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이의 다정한 목소리, 얼굴에 닿는 바람결, 향긋한 과일, 타닥 타탁 촉촉한 빗방울 소리, 춤추듯 흩날리는 차가운 눈송이들…그 자체가 이 소풍같은 생에서 누릴 수 있는 전부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책을 추천해 준 분을 생각했다.  어쩌면 그 분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나의 맹렬한 몸부림이 안쓰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표면에 머무르며 사는 걸로도 족해’라고 다독거려주고 싶으셨는지 모르겠다.    그런 뜻이 아니었으면 또 어떤가. 그래도 모든 것은 빛나는데.

#모든것은빛난다#눈이부시게#행복#삶의의미#모비딕

작가의 이전글 멀티태스킹은 이제 그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