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죽지 않았다. 실은 지나간 것도 아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명대사

by 루이보스J

상우(尙友):

위로 올라갈 , 벗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사람과 벗함

얼마 전 읽은 산문집 [한자 줍기]에서 배운 멋진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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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늘 어느 한구석 불만족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불안해서일까? 경험한 적도 없는 지난날들에 대한 향수가 밀려올 때가 있다. 이미 스러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빛바랜 시간들은 은은하게 빛나며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값싼 오락과 얄팍한 관계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옛사람들이 남긴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통해 수많은 ‘상우’들과 교감하는 시간이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사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어느 시대로 날아가서 누구 먼저 만나봐야 할까 가슴 설레는 상상에 빠져보기도 한다.


2011년 우디 앨런은 상우(尙友)들과의 교감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영화를 내놓았다. 바로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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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길(오웬 윌슨)은 약혼녀 이네즈(레이철 맥아담스), 예비 장인, 장모와 함께 파리 여행에 나선다. 길은 문화예술의 황금기로 여겨지는 1920년대 파리로 돌아가 당대의 위대한 아티스트들과 조우하고 싶은 판타지를 꿈꾼다. 시간 여행으로 1920년대 파리로 날아간 길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달리, 피카소와 같은 당대 최고의 거장들을 만나게 된다. 1920년대를 그대로 복원하고 무덤 속의 예술가들을 소생시킨 듯한 완벽한 고증과 분장 덕분에 관객들도 길과 함께 시간여행의 판타지속으로 홀린 듯 빨려 들어간다. 길은 아우라 넘치는 당대의 아이콘들에게 매료되고 그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파티에서 만난 달리는 예술이야말로 우주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며, 현 상태에 도전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고 강조한다. 1920년대 파리 예술계의 대모로 통했던 게르트루드 스타인은 길만이 가진 독특한 관점을 스스로 보듬으며 작가로서의 역량을 맘껏 펼치라고 격려해 준다. 익히 알려진 대로 과묵한 상남자 스타일로 그려지는 헤밍웨이는 글은 ‘진실’ 이어야 하며, 언어로 삶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들의 입을 통해 우디 앨런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예술과 예술가들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도전하게 하며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각자가 가진 고유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어떤 형태이든 예술을 자기표현과 타인과 연결되는 도구로 활용하라고 말이다.


한편 시간여행 속에서 예술가들과 교류를 이어가던 길은 과거가 그가 상상했던 것처럼 완벽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게다가 1920년대 파리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인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 역시 캉캉 춤을 추고 고갱과 드가가 활동하던 이전 시대를 동경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세대든 동경하는 이전 시대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예술계 거장들과 교류하며 창작에 대한 열정을 되새긴 길은 영감이 충만한 활력을 느끼며 현재로 되돌아온다. 마침 현재의 파리에는 촉촉하게 비가 내리고 있다. 우연히 파리지앵 가브리엘(레아 세두)을 마주친 길은 그녀와 파리의 예술적 전통과 아름다움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확인한다. 단번에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함께 파리를 탐험하며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길과 가브리엘은 팔짱을 낀 채 낭만이 가득한 파리의 밤길로 사라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로맨틱한 엔딩 장면에 <미드 나잇 인 파리>의 정수가 담겨있다.


지나간 옛 시절(시간여행)은 고아하고 영감을 주지만, 어쨌든 우리가 살아야 할 시간과 장소는 '지금, 여기'(비 내리는 파리)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빚어가고 있는 숨겨진 보물은 내일을 살아갈 세대에게는 다시 '아름다운 옛 시절'이 되고, 이 연결고리는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거라는 메시지 말이다.


영화 속에서 길이 인용한 월리엄 포크너는 이를 단 한 줄로 요약했다.


“The past is not dead. Actually, it’s not even past." -윌리엄 포크너

"과거는 죽지 않았다. 실은, 지나간 것도 아니다."


커버사진: UnsplashTowfiqu barbhu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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