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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May 02. 2023

그럼에도 글쓰기는 계속된다

ChatGPT시대의 글쓰기

처음 원고 청탁이라는 걸 받아보고 쓴 글이 지난달 [월간 에세이]에 실렸다. (1월에 원고를 넘긴지라 Chat GPT부분이 벌써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진다. -_-;)


*아마추어에게 지면을 할애해 주신 [월간 에세이] 편집부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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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어느덧 통역사로 일한 지 16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루할 새 없이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흥미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어 일이 재밌고 뿌듯할 때가 많다.  반면 업의 특성상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이에 회의를 느끼고 일찌감치 전직한 동기도 몇 있다.  한영통역사로서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영어에서 우리말로, 우리말에서 영어로 충실히 옮기는 데까지니 말이다. 내가 ‘에세이 쓰는 통역사’로 글쓰기에 나선 것도 나름의 숨구멍을 찾고자 하는 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글쓰기는 단순히 ‘내 목소리 찾기’를 넘어 일종의 자기 노출이다. 그중에서도 에세이는 ’나‘를 꽤 많이 드러내게 된다.  글쓰기 교본의 고전 <문장강화>에서 이태준은 이를 두고 ‘심적 나체’라고 표현했다. 에세이를 통해 어떤 것을 보여줄 지도 문제지만 노출의 수위도 고민거리다. 너무 적게 보여주면 흥미를 끌지 못할 테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보여주자니 왠지 절박해 보일 것 같다.  게다가 지나친 노출에 거북해하는 독자들도 있을 수도 있다.


노출의 제재, 수위까지 결정하고 나면 다음은 우리말과의 씨름이 기다린다.  어떤 때는 순풍을 탄다. ‘이런 맥락에서는 무슨 단어가 좋을까?’ 궁리하지 않아도 술술 써질 때가 있다.  그런 가하면 어떤 때는 단어 하나를 두고 하루 종일 고민하기도 한다. 표현하고 싶은 건 장미인데, 안간힘을 써봐도 조악한 조화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다. 진척 없이 머리를 쥐어짜는 시간이 늘어질 때면 ‘글쓰기에 이별을 고해버릴까’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하지만 모질게 이별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가끔 실랑이를 벌이긴 해도 우리말을 사랑스럽게 매만지며 글을 짓는 일이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얼마 전 뉴욕타임스 팟캐스트‘더 데일리(The Daily)’를 듣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팟캐스트 진행자가 셰익스피어 스타일의 러브스토리를 읊어주는데 플롯이며 어휘 선택까지 그럴싸했다!  다름 아닌 미국의 한 개발업체가 출시한 대화형 AI의 작품이었다.  이미 우리는 질문에 답해주는 대화형 AI를 접해본 바 있다. 하지만 문제의 이 AI는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이 주는 지시어를 기반으로 스스로 정보를 조합해 ‘직관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형식이 일정하고 팩트 위주의 기사와 같은 실용문은 그렇다 쳐도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믿었던 창작 문예까지? 엊그제는 이 AI가 써낸 답안지가 미국의 유명 경영대학교 기말시험에서 B학점을 받았다는 암울한(?) 기사도 접했다.  게다가 이 기술은 다음 버전 출시를 거듭하며 놀라운 속도로 성능이 향상될 것이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이 글쓰기까지 대신해 주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글쓰기는 머지않아 멈추게 될 운명에 처한 걸까? 전문가들의 전망이야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다’로 점치고 싶다.


바로 글쓰기가 가지고 있는 치유의 힘 때문이다. 자주 들여다보는 글쓰기 플랫폼에서 인기 있는 글들의 소재를 보면 이혼, 실직, 질병 등 대부분 불행 이야기가 많다. 남의 불행에서 즐거움을 찾는 뒤틀린 독자들이 많아서가 아니다.  인스타그램에 전시되는 행복하고 번듯하기만 한 삶의 단편은 잠시 시샘을 불러일으킬지는 모르나 우리 영혼의 결 그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  반면, 보통 사람이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불행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드라마가 있다.   작가는 깜깜한 터널을 통과하며 느꼈던 고통을 글쓰기로 치유받고, 독자들은 그 글을 읽음으로써 어떤 방식으로든 삶이 확장되고 풍요로워짐을 경험한다.   


불운한 유년,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연이어 아들까지 먼저 보낸 대작 [토지]의 씨앗이 됐던 박경리 선생님의 드라마틱한 불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이런저런 생채기를 입는 게 우리네 삶이다. 그런 생채기를 따뜻하게 핥아주는 게 글쓰기의 힘이다.  인공지능이 에세이까지 써주는 시대에도 ‘사람이 쓰는 글쓰기’가 계속될 이유다.


#글쓰기#챗GPT#ChatGPT#창작#인공지능

 커버사진: UnsplashAaron Bu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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