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form of self-love
자기 규율은 자기 사랑의 가장 강력한 형태다.( Discipline is the strongest form of self-love.)
흔히들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가끔씩 찾아 듣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도 똑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
“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언제나 본질을 꿰뚫는 스님다운 답변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기는커녕 괴롭히기 바쁘다. 일하느라 또는 노느라 잠도 안재우기도하고, 해로운 음식을 습관적으로 먹이고, 만날 때마다 썩 유쾌하지 않은 사람인데도 끊어내지 못하기도 한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다고 무작정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부터 찾아볼 일이 아니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간단한 일이 먼저다. 바로 내 몸을 잘 알고, 내 몸을 제대로 돌보는 일이다.
음식, You are what you eat.
당신이 먹는 음식이 바로 당신이다. 말 그대로다. 내가 먹은 음식이 내 살을 만들고 피를 만든다. 먹는 일은 커다란 낙이자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직접 투입하는 중요한 선택의 행위이기도 하다. ‘얼마나 산다고 먹고 싶은 거 먹고살아야지,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며 먹을 걸 가려야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음식을 먹는지가 단순히 수명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하는 것은 커다란 오류다. 나쁜 음식은 우리 수명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음식을 가려먹는다고 하면 슈퍼푸드 위주로만 먹어야 할 것 같지만 우리 몸에 해롭다고 증명된 음식만 멀리하는 것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내 경우에도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기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피할 음식을 정리하는 편이 더 쉬웠다. 매번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에너지 낭비도 없어진다. 명확히 한계를 정해두는 일은 음식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에도 적용될 수 있다.
내가 피하는 음식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술, 담배
-가공육 (햄, 소시지)
-설탕 폭탄 음식 (마카롱 같은 디저트 류, 과자, 주스류)
-소금 폭탄 음식(찌개국물, 젓갈류, 김치도 소량만)
-질 나쁜 탄수화물 (당류, 정제곡물)
-카페인
-튀긴 음식
-매운 음식
반대로 내가 즐기는 음식은
-당도가 많이 높지 않은 과일(키위, 자몽, 아보카도 등)
-알록달록 온갖 채소류
-견과류
-잡곡밥
-요구르트
먹는 음식을 바꾸면 기분도 컨디션도 달라지고 안색도 좋아진다. 좋은 음식을 먹는 일은 나를 아끼는 첫 단계다.
다음은 운동이다.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에는 오래 달리기에서 꼴찌에서 두 번째를 할 정도로 운동에는 젬병이었다. 운동으로 몸을 돌보기 시작한 건 대학원 시절부터였다. 통역대학원은 학문을 익히는 곳이라기보다는 통역이라는 기술을 익히는 직업학교에 가깝다. 매 수업시간마다 실제상황처럼 통역을 하고 평가를 받는 커리큘럼이라 대학원 생활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남들 앞에 나서서 통역하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도 한 둘씩 생겨났다. 극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도 분명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가를 시작했다. 어느 순간엔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차오르다가도 어느 순간엔 아무리 해도 안될 것 같은 막막함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는 마음을 다스리는데 요가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운동파 통역사
그러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즐기기 시작한 건 2009년 무렵부터였다. 국내 대기업의 IT 프로젝트에 합류했는데 해외로 장기 출장을 나가야 했다. 십 개월 동안 해외출장을 나가 있는 동안 내내 호텔 생활을 했다. 퇴근하고 숙소로 오면 이미 늦은 저녁이고 겨울이라 해가 빨리지는 유럽에서는 밖에 나갈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지역 대비 치안이 좋은 편이 아닌 브라질에서는 퇴근 후 활동이 그리 자유롭지 않았다. 출장 중에 머물렀던 호텔 피트니스에는 다행히 매번 별로 사람이 많지 않았다. 거의 내 전용 운동 시설처럼 사용한 곳도 있었다. 조금씩 지구력과 근력이 늘고, 일할 때도 피로도가 줄어들고 머리도 맑아지는 것도 피부로 느끼면서 운동에 점점 재미를 느끼게 됐다. 한동안은 운동에 푹 빠져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을 운동에 할애하기도 했다. 같이 출장 간 통역사한테 ‘올림픽에라도 나갈 셈이냐’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체력장 5급을 벗어난 적이 없던 학창 시절의 기억 때문에 운동이라면 질색을 했던 나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커다란 변화였다.
운동, 세상을 마주할 힘
생각해보니 어릴 적부터 줄곤 강인한 여성상을 선망해왔다. 초등학교 시절에 본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 같은 인물 말이다. 여리 여리한 여성에서 여전사로 거듭나는 스토리에 완전히 매료됐었다. 감옥에 갇혀서도 푸시 업 등 맨손 체조를 하는 사라 코너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 이후 한 번도 그런 감흥을 주는 캐릭터가 없었는데 몇 년 전 <매드 맥스 퓨리오사>의 샤를리즈 테론을 보고 전율했다.) 그렇게 시작된 규칙적인 운동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걷기, 수영, 필라테스, 요가, 근력 운동을 섞어가며 꾸준히 하고 있다. 강도를 낮추는 일은 있어도 하루도 운동을 거르지 않으려고 한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근력운동을 하고, 몸이 무거운 날은 요가로 몸을 부드럽게 깨우고 그날 필요한 활력을 얻는다. 출장을 갈 때도 요가 밴드를 꼭 챙겨간다. 부피도 많이 차지 않고 호텔방에서도 간단하게 허벅지, 엉덩이 근육 운동을 할 수 있는 요긴한 아이템이다. 때때로 ‘오늘만 쉴까?’ ‘피곤한데’ 같은 생각이 밀려오기도 한다. 심지어는 ‘매일 운동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했어’ 라며 자기 합리화도 시도한다. 간사한 ‘마음’은 이리저리 훼방 작전을 펼친다. 마음의 획책에 거의 넘어갈 뻔할 때도 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냉큼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단지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 시간은 내 몸이 근육, 살, 뼈로 되어있는 '실체'가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소란한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몸을 움직임으로써 마음이 원하는 길을 찾는 시간이기도 한다. 요가 매트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샤워까지 마치고 나면 세상 그 어떤 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장착된다. 운동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힘을 얻는다. 이 힘은 보통 하루에 다 소진된다. 단 한 번의 대 각성의 순간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부류는 못된다. 그저 매일 반복할 뿐이다.
규칙적인 운동만이 몸 관리의 전부가 아니다. 몸은 우리와의 소통을 갈망하듯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내 경우에는 카페인에 매우 취약하다. 그런데도 라테를 좋아해서 커피 유혹에 속절없이 무너지곤 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커피를 마셨다가 불쌍한 몸을 고생시킨 셈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커피가 나와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못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가끔씩 커피를 마셨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몽롱한 상태로 하루를 견디며 내 미련함을 탓하곤 했다. 카페인에 취약한 정도가 매우 정확한 편이라 오전에 커피를 마시면 보통 새벽 1~2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점심 이후에 마시면 새벽 3~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동이 트는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다. 가끔 마시는 커피였지만 다음 날 나의 상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순순히 받아들여만 했다. 눈물을 머금고 커피를 비롯한 카페인이 들어있는 음료는 모두 끊었다. 커피뿐만 아니라 홍차류들도 모두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커피 향의 유혹은 참기 힘들다. 다행히 최근에는 디카페인 커피가 꽤 흔해져서 가끔 오전에 디카페인 라떼라는 사치를 누려보기도 한다. 다만 디카페인이라고 해도 카페인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어서 오후에는 마시지 않는다.
수면
운동보다 더 크게 내 컨디션을 좌우하는 것은 수면이다. 통역사에게 컨디션 유지는 철칙이다. 중요한 통역이 있는 날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엄청난 낭패다. 통역이 언어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언어는 도구일 뿐 통역의 핵심은 ‘정보 처리’다. 한국어로 들어오는 정보를 빠르게 처리해서 영어로 또는 반대방향으로 의미를 전달하려면 두뇌가 최상의 상태여야만 한다.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은 그 전날 반드시 숙면을 취해야 그다음 날 맑은 머리로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문제는 수면 패턴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일찍 자려고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쉽게 잠에 들지도 못하고 예민한 편이라 작은 소음에도 쉽게 깨는 편이다. 어쩌다 (나도 모르게) 카페인이 들어있는 음료라도 먹은 날은 날밤을 꼬박 새기도 한다.
수면 패턴을 안정화하는 게 관건이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을 비교해봤다.
푹 잘 자고 난 날은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1시간 정도 운동하고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면 날아갈 듯 상쾌하고 마음이 가뿐해진다. 집중해서 해야 할 일도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고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도 다정하고 친절하다.
푹 자지 못한 날은 완전히 다른 하루가 펼쳐진다. 수면부족으로 머리와 몸은 무겁고, 행동은 느리다. 핸드폰으로 먼저 손이 가고 간밤에 볼만한 글이 올라왔는지 페이스북에도 한번 들어가 본다. 페이스북에서 뭔가 흥미로운 소식을 발견하면 관련 뉴스 등을 또 구글링 해본다. 시계를 보고 이럴 때가 아니다 싶어서 허둥지둥 나갈 채비를 한다. 회의 들어가기 전에 내용 숙지하려고 회의 자료를 열어 보고 있지만 집중이 잘 안 돼서 진도가 잘 나지 않는다. 다행히 큰 실수 없이 회의는 마쳤지만 더 좋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평범하게’ 통역한 부분을 곱씹으며 기분이 쳐진다.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눌 기분이 나지 않아 누구에게든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도 사소한 일을 두고 가족들에게 툴툴댄다.
그렇다면 어떤 날 숙면을 취하지 못한 것일까?
1. 저녁 약속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어김없이 잠에 잘 들지 못한다.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10시, 11시를 넘기기도 한다. 이런 날은 집에 오면 거의 12시니 일찍 자기는 글렀다. 저녁 먹고 간단히 차를 마시고 집에 9시 정도 들어오는 날도 잠을 잘 못 자는 기는 마찬가지다. 친구들과의 수다도 많은 정보의 교환이다. 각자의 근황, 공통으로 아는 친구들의 근황,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요즘 유행하는 영화, 음악, 공연, 패션 등, 그날 흡수한 정보를 처리하느라 뇌가 정신없이 돌아가면서 좀처럼 수면모드로 넘어가지 않는다. ‘좋은 사람들과 시간 보내는 즐거움을 빼면 무슨 사는 재미가 있나. 약속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해보다가 고개를 젓는다. 단 한 번으로도 생활 리듬을 깨뜨리는 저녁 약속에 대해서는 좀 더 도도해지자. 저녁 약속에 헤프지 말자. 점심은 길어져도 두 시간 정도지만 저녁 약속은 여차하면 네다섯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헤프게 할애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다. 그 시간이면 책 한 권 거뜬히 다 읽고, 꼭 보고 싶었지만 못 보고 있는 영화를 두세 편이나 볼 수 있는 시간이다.
2. 휴대폰
휴대폰을 늦게까지 쥐고 있는 날도 어김없이 잠이 늦어진다. 가끔 휴대폰을 이제는 다르게 불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만 보더라도 휴대폰의 쓰임 중에 '폰'에 해당하는 전화의 기능으로 휴대폰을 쓰는 시간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빈도나 할애하는 시간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은 카톡 등의 메시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라디오, 유튜브, 팟캐스트 등을 듣거나 이메일 확인 인터넷에서 정보 찾기 은행일 업무 사진 찍을 때 등이다. 거의 모든 활동에서 휴대폰이 없으면 안 될 정도가 되었다. 너무나 '스마트'한 휴대폰으로 정신이 산란해지고 오히려 삶이 복잡해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스마트폰을 버리고 단순하게 전화와 메시지 기능만 있는 폴더 폰으로 바꾸는 '덤폰' (dumb phone') 운동이 생겨났다고 한다. 휴대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상을 반성하고 나도 폴더폰으로 바꿔볼까 잠시 고민해보았다. 하지만 아이들 어린이집 등 하원 알림 등 거의 모든 생활 유지 활동을 핸드폰으로 처리하고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마트 폰은 사실 매우 훌륭한 도구다. 스마트폰에 이끌려 다니지 않고 똑똑하게 활용하면 그만한 편리한 도구도 없다. 그렇다고 하루 일과를 마친 저녁 이후까지 휴대폰을 쥐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쉬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나는 종종 음악이든 강연이든 늘 무언가를 배경에 켜 둔다. 마치 완벽한 정적은 대면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어쩌면 우리의 삶은 경계를 만들어가는 일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경계를 만들고 지키지 않으면 나의 평화, 내 온전한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온갖 요소들이 쉼 없이 침범해 들어온다.
저녁 8시면 8시, 9시면 9시, 시간을 정해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휴대폰을 치워두기로 했다. 휴대폰에도 휴식 시간을 주자.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고 꺼내 두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단순히 눈앞에 있는 휴대폰만 한쪽에 치워놓은 것만으로도 현재 하는 일에 몰두하고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는 말이다. 얼마나 간단한 방법인가. 게다가 휴대폰 액정에서 나오는 청색광은 수면 모드로 우리 신체를 바꾸는 멜라토닌 분비를 막아 숙면을 방해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이른 아침에 쓰고 있다. 어제저녁 여러 가지 유혹을 물리치고 스마트폰과 잠시 이별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진 덕분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서랍에 넣어두거나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두고 아침에 다시 만나는 방법도 있다. 이 작은 행동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드는지 깜짝 놀랐다.
수면 패턴을 잡아 하루 일과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 시작하면 통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시간의 고삐가 잡히게 된다. 활력 가득한 하루를 시작하고 전체를 조망하며 하루를 보내고 충만감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스스로를 어떻게 규율할지를 선택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