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 반지와 새 동생

by 자강



없다. 엄마가 내게 준 옥 반지가 사라졌다. 어젯밤 엄마가 보고 싶어 반닫이 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옥 반지를 꺼내놓고 손가락에 끼어도 보고 무명천으로 깨끗이 닦아서 경대 위에 올려놓고 깜박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사라졌다. 혹여 반닫이 장에 넣었다 싶어 옷을 꺼내놓고 샅샅이 뒤져도 없었다. 배 서방 아주머니께 가서 물으니 보질 못했다고 한다. 허나 하나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하여 들어보니 이른 아침에 옥희 년이 내 방 툇마루에서 걸터앉아 고무신을 신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그럼 혹시 고년이 내 옥 반지를 가져간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확증이 없이 심증만 가지고 섣불리 말하면 새엄마가 가뜩이나 성질도 사나운데 일부러 아버지 앞에서 옥희 년을 쥐 잡듯이 팰 것이므로 물증을 잡을 때까지는 참고 기다리기로 하고 배 서방네 아주머니와 나는 옥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헌데 내가 저를 눈이 불이 나게 지켜보는 곳을 알기라도 하듯이 옥희는 요 며칠째 지 방에서만 지내고 그 좋아하는 엿장수가 와도 엿을 안 사 먹고, 공기놀이도 하러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더욱 의심이 간다.

그러기를 일주일이 지난 비 오는 날에 안채 댓돌 위에 새엄마와 옥희, 성훈이의 신발이 나란히 놓여 있다. 좀처럼 안채로 그 애들을 부르지 않는 새엄마는 무슨 일인지 오늘은 부른 것이다. 아버지도 모르고 할머니도 몰라야 하는 무슨 비밀스러운 일이 있나 보다. 그러니 더욱 궁금해졌다. 나는 새엄마 몰래 안채 대청마루에 올라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 귀를 의심할 만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글쎄 새엄마가 임신을 했다는 거다. 성훈이를 낳고 남의 자식을 뱃속에 안고 왔다는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 때문이라도 다시는 아기를 낳지 않을 것 같은 새엄마가 임신이라니 게다가 새엄마의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나 늦은 늦둥이가 아닌가! 그런데 이 일을 아직 아버지와 할머니는 모르시는 눈치다. 만일 아버지가 아셨다면 집안에 경사 났다고 동네잔치까진 아니어도 문중 어른들 모시고 밥이라도 드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새엄마는 아버지가 좋아하실 일을 옥희와 성훈이에게 먼저 알리는 거지?'라고

생각을 하고 난 안채를 빠져나왔다. 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새엄마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애는 배다른 내 동생이 되는 거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막냇동생이 생기면 엄청 좋아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았고, 또 한편으로는 배다른 동생이지만 옥희나 성훈이와는 달리 반쪽이어도 아버지의 피를 나눈 형제라는 생각에 그 아이가 아들일지 딸인지 궁금해지는 묘한 감정이었다.

저녁 먹으려고 온 식구가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있을 때였다. 새엄마가 드디어 아버지와 할머니께 임신 사실을 이야기했다. 나만 빼고 모두가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옥희와 성훈이도 놀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늦둥이를 얻었다며 모처럼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기뻐하셨고, 할머니는 아버지의 핏줄이어서 그런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난 저 아이가 태어나면 새엄마가 더 이상 우리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엄마가 임신 발표한 일로 한껏 의기양양해진 옥희가 가져간 옥 반지를 어떻게 되가져올까 방법만 궁리하던 난 그날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새벽닭이 울 때쯤에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늦잠을 잤는데 밖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깼다. 소리는 안채에서 났는데 배 서방 아주머니가 나를 깨우러 때마침 왔다.

"에구, 우째 오늘은 이리도 늦게까지 자는 겨?"

아주머니가 방문을 열며 나를 재촉한다.

"왜 유? 뭔 일 있시유?"

" 그랴, 옥희 년 방에서 마님 옥 반지가 나왔구먼, 얼릉 안채로 가봐야 겄어?"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배 서방네 아주머니를 따라 안채로 향해 뛰어갔다. 안채 마당 한가운데서 울고 있는 옥희와 배가 조금 부르기 시작한 새엄마가 회초리를 들고 있고, 할머니 아버지까지 나와 계셨다. 이유인즉 이랬다. 배 서방네 아주머니가 새엄마가 전해준 새 옷을 옥희에게 갖다 주러 옥희 방에 들어갔고 그때까지 잠을 자고 있던 옥희가 옥 반지를 치우지 못했던 거였다. 그래서 경대 위에 옥 반지가 덩그러니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고, 그걸 배 서방네 아주머니가 본 것이다. 일찌감치 옥 반지가 없어진 걸 알고 있던 아주머니는 이 사실을 일부러 새엄마에게 먼저 알렸고, 하는 수없이 새엄마는 옥 반지를 훔친 옥희에게 회초리를 들어야만 했다. 어찌 됐든 난 엄마의 옥 반지를 되찾아서 좋았고, 옥희는 배 서방네 아주머니를 더욱 미워라 했다. 옥희가 훔쳐 갔던 옥 반지를 돌려받은 일이 있고 난 후 우리 집은 한동안 아무런 일이 없이 고요한 시간이 지나갔다. 할머니, 아버지, 새엄마, 나와 기만이, 기창이, 옥희, 성훈이까지 여덟 식구가 새 동생 기호가 태어나던 동짓날까지 한 지붕 아래 각자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눈 오는 날 아침에 팥죽을 먹던 우리는 새 동생을 만났다. 그 아이는 사내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