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연대의 지원으로 인민군의 포위로 고립되어 있던 우리 부대는 고립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이렇게 전쟁을 벌이려고 북쪽 애들은 수없이 도발을 해왔던 거였다. 그렇다. 그들이 지난달부터 계속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 상대로 내습하여 방화와 약탈을 일삼고 사람이 보이는 대로 박격포며 중기관총을 쏘아댄 것은 전쟁 미치광이나 하는 짓이다. 국사봉을 점령한 그들이 더욱 기세 등등하게 도발했던 것도 전쟁의 시그널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끄는 향토방위대는 대부분 죽거나 분산 후퇴를 한 상태여서 나를 포함해 열도 안 되는 이들만 남아 있었다. 육로로 후퇴하려면 동쪽으로 이동해 개성 이남의 육로를 이용해야 하지만 인민군 애들의 일부가 이미 동부전선을 장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남은 방법은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인데,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해군정이 제때 도착해 줄지가 염려되었다. 우리 부대는 거의 전멸한 상태이므로 2대대 소속으로 합류하여 배를 타고 옹진을 벗어나 빨리 인천 땅을 밟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시각은 아침해가 뜨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지만 짙은 안개와 북쪽 애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댄 포화 속이어서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었으므로 어느 항을 가든 아수라장이 되었을 거다 우리는 사곶항으로 이동했다. 항구에 도착하니 우리 예상대로 해군의 지원은 없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는 게 목표이었기에 피난을 가는 주민과 섞여 어선에 몸을 실었다. 포성은 끊이지 않고, 일렁이는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붉은 해가 혀를 날름거리며 당장이라도 우리가 탄 배를 삼켜버릴 듯이 뜨겁게 타오르며 수평선 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 이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배를 타고 인천에 도착하니 사방은 어둑어둑해지고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불 꺼진 거리는 조용했다. 해주와 개성이 이미 적들의 수중에 들어갔고 의정부가 뚫렸다 한다. 그나마 파주, 문산은 1 보병사단이 사수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하지만 북쪽은 치밀한 전쟁 준비로 전방위적인 공격을 감행했고 옹진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동부와 서부 전선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물밀듯이 내려왔다. 이에 우리 2대대는 인민군이 임진강을 도하하기 전까지 서울로 향하는데 이제부터는 걸어서 이동한다는 작전이었다. 서울 위쪽의 북부 경기로 이동하는 것보다 서울로 이동해 전열을 가다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다. 문제는 부상자가 너무 많다는 거다. 부상자들을 분류해 야전 병원으로 보내고, 남은 이는 일곱. 이대로 함께 서울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교전 상태로 봐서는 서울도 안심하긴 어려울 듯하다. 윤가 녀석은 경무대에서 어찌하고 있을지... 아니다 이 대통령은 벌써 그곳을 떠났을 것이므로 윤가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디로 가나 상부의 지시를 따를 뿐이다. 밤길은 보름달에 가까운 상현달이 떠 제법 밝다. 그렇게 계속 걸어서 이동 중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제1사단 백선엽 대령이 이끄는 부대가 최전선인 파주에서 인민군의 남하를 막다 북의 밀려드는 전차부대의 문산과 의정부 점령에 방어선을 위전리 인근에 방어선을 구축했고 우리는 그 덕에 서울로 이동할 시간을 벌었다.
6월 27일. 서울에 도착한 우리 부대는 미아리 전선이 위급하다는 소식에 백선엽 대령이 이끈 1사단에 합류하여 최후 전선을 구축했다. 밤이 되자 바람을 동반한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시야를 알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듣는 것만 가능했고, 컴컴한 사위(四圍)는 적의 전차 소리만 들릴 뿐이다. 최악의 상태에서 한강 도하 철수를 준비하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백선엽 대령이 이끄는 1사단은 끝까지 최후 방어선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