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잃다

by 자강



개성부터 파주와 문산이 무너지고 동부 전선의 양구까지, 전쟁이 시작된 6월 25일부터 27일 사이에 최전방이 뚫리니 인민군이 수도 서울에 내려오는데 사흘이 채 안 걸렸다. 문산과 파주에서 1사단의 고군분투 덕분에 그나마 사흘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에 미국은 참전을 선포했지만, 즉각적인 전투 병력 투입은 어려웠다. 전차로 무장한 적들은 전차가 갈 수 있는 길이라면 가리지 않고 밀고 내려와 백선엽 대령이 이끄는 우리 사단은 미아리 전선을 포기하고 한강 이남으로 후퇴를 해야 했다. 그쯤 미아리 전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신성모 국방부장관과 채병덕 육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의 오판인지 한강 인도교와 한강철교가 폭파되었다. 우리 사단은 시흥지구 방어 사령부까지 철수하기 위해 나룻배를 이용해 한강을 건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민과 군이 몰리면서 한강 나루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게다가 지난밤 정부의 잘못된 방송으로 혼란만 키웠던 탓에 피난에 소극적이던 시민들까지 몰리자 군과 민간인이 한데 섞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소문에 한강 폭파를 저지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 폭파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차로 한강 다리를 건너던 미군 장교 역시 여럿이 사망했다고도 했다. 전쟁이 나니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죽어 나가는 이가 부지기 수다. 나는 이때만 해도 내 조국의 분단을 생각하지 못했다.



어렵게 한강을 건넌 후 시흥 방어 사령부에 도착한 우리 사단은 재정비를 한 후 북쪽의 남하를 막는 지연전을 펼치며 남으로 남으로 밀리며 낙동강에 이르렀다.

1950년 8월 3일 내가 속한 1사단 12 연대는 우리 사단의 낙동강 도하를 엄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 후 낙정리 일대에 배치되어 밀고 내려오는 적을 격퇴하고 사단 집결지로 이동하는 것이 목표였다. 8월 4일 제2대에 속해 있던 나는 178 고지를 지키고 있었고, 같은 시각 다른 대대는 낙동강을 건너는 북한군을 박격포와 대전차로 집중 포격하여 박살을 내었다. 전쟁이 시작한 이래 처음 느끼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을 거다. 이 소식은 무전으로 들어 알게 되었고, 내가 있는 178 고지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해서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그때였다. 8월 4일 14시를 기하여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우리 쪽으로 북한군이 쏜 포가 비처럼 쏟아졌다. 그 소리와 함께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하얀 커튼이 쳐지고 커다란 유리창으로 맑은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 쪽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오른쪽 다리에 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얀 붕대로 칭칭 감긴 오른쪽 다리를 쳐다보았다. 이상하다. 발에 대한 감각이 없다.

"깨어나셨어요?"

간호사복을 입은 젊은 아가씨가 내게 묻는다.

"여기가 어디요?"

"기억 안 나세요?"

나는 간호사의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다리에 느껴지는 고통으로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으흐... 군의관 좀 불러줘요."

나의 신음에 간호사는 다급히 뛰어나갔다. 잠시 후 검은 테의 안경을 쓴 군의관이 왔다. 그의 가운은 이미 나 같은 군인을 여럿이나 만났는지 가운 곳곳에 붉은 피가 도장처럼 찍혀 있었다.


"최상사, 잘 들어요. 적이 쏜 포탄 파편이 다리에 박혀 살이 썩어 가고 있어서 대퇴부 이하는 절단해야 해요. 안 그러면 영영 걷지도 못할 수 있어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으흐...."


황당한 의사의 소견도 소견이지만 살을 파고드는 고통으로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폭탄을 맞고 재빠르게 파편을 제거하지 못한 채 상처를 치료 못해서 파상풍으로 살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거요.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그랬다. 낙정리 일대에서 고지를 순찰하던 나는 급작스럽게 쏟아진 포탄을 미처 피할 수 없었고, 오른쪽 다리에 파편이 박히며 혼절한 거였다. 다른 동료들은 그 자리에서 전사한 이들도 있었다. 다행히 나는 목숨만은 건지며 이렇게 야전 병원 침상에 누워 있는 거였다. 다부동 전투에서의 승리로 국군은 낙동강 이남 지역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나는 다리 하나를 잃게 생겼다. 아,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상황인가? 머리가 하얘지고 환청이 들리기까지 했다. 전우들의 신음, 위생병을 다급히 부르는 소리, 비 오듯이 쏟아지는 포탄이 떨어지는 굉음... 포탄을 맞은 나는 혼절했지만 귓구멍만큼은 살아 움직였던 것일까? 이제 와 더 생생하게 들리는 소리들 때문에 숨이 가파르게 차올라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는 첫 번째 수술을 했다. 내 고집대로 종아리 부분을 절단했다. 하지만 의사 말을 무시하고 강행한 수술이어서 그런지 치료를 제대로 못해서 그런지 다리가 점점 괴사 해서 결국 한 번의 수술을 더 하게 되었고, 수술 후 난 오른 다리의 대퇴부 이하를 잃게 되었다. 내가 임시 수도 부산에서 두 번의 수술을 받는 동안 우리 군은 서울을 수복했고 11월에는 함흥까지 북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