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가 새 동생을 낳고 6개월 지난 뒤 무시무시한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났던 다음 날 아침에 아버지가 논을 팔아 준 돈으로 경무대에서 대통령을 지키는 군인이 된 외삼촌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왔다. 전쟁이 나서 난리 통이니 서둘러 피난을 가라는 소식이었다. 마름 일을 본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걱정된다며 하루빨리 몸을 피하라는 귀띔을 해 준거다. 아버지는 경무대에서 대통령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외삼촌이 전해준 정보이므로 틀림없는 정보라 여겼지만, 태어나 돌도 안 된 어린 새 동생과 몸이 불편해 피난길에 오를 수 없으신 할머니를 생각해서인지 곧바로 피난을 떠나진 못했다.
"순열아, 니는 어찌하면 좋겠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아버지께선 나에게 물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와 어린 동생도 동생이거니와 우리 삼 남매에 새엄마와 옥희, 성훈이까지 모두 아홉이나 되는 대식구가 전쟁통에 온전히 피난을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하신 것이었다. 게다가 농사짓던 일을 그만두고 피난을 가면 가을걷이는 누가 하고 밭작물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크셨기 때문이리라.
"아버지, 전쟁 상황이 이 어찌 돌아갈지 모르지만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피난길에 오르셨다가는 가는 중에 큰일을 치를 거 같어유. 지가 할머니랑 집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아버지는 새엄마랑 어린 동생만 데리고 일단 피난 가셔유. 인민군도 사람인디 죽이기야 허겄유."
"내가 어미 없이 자란 니들 삼 남매를 어찌 놔두고 나 혼자 살겄다고 그리 헌다냐. 그리하면 내 발이 안 떨어진다. 옥희랑 성훈이만 남기기도 그렇고 그냥 다 같이 집에 있자꾸나."
아버지는 새엄마 눈치 보느라 우리 삼 남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평소 표현하지 못했지만, 오늘만큼은 그 속마음을 이리 표현하셨다. 나는 이 말만으로도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전쟁이 났다는 소식은 라디오를 통해서 이 대통령이 전하는 전시 상황의 말과 사람들 사이에 떠돈 소문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인민군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물밀듯이 밀고 와서 처음 임시 수도로 정한 수원을 지나 남쪽으로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동네의 큰 지주들과 형편이 나은 집들은 이미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피난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다만 동네에 남은 집들은 우리 같이 몸이 불편한 노인이나 어린아이들이 있어 피난을 떠나지 못하거나 아주 가난하여 더 이상 뺏길 세간살이조차 없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전쟁이 났어도 엄마의 제사는 지내야 했기에 칠석날 아침에 할머니와 나 그리고 두 동생은 엄마의 위패를 모셔놓은 작은 암자로 향했다. 이른 새벽부터 준비한 제사 음식을 소쿠리에 담아 내가 머리에 이고, 두 동생은 할머니가 빚은 술을 챙겼다. 날은 장마로 인해 습하면서 더웠고, 그간 내린 비 때문에 신작로는 질척거렸다. 어린 막냇동생은 노래를 부르고 우리는 진 땅을 피해 걷느라 발걸음이 무거웠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도 힘을 내시어 걷고 이젠 아버지보다 훨씬 키가 큰 동생도 듬직하다. 전쟁은 났지만 내 맘은 그리 슬프지만 않았다. 이렇게 엄마의 제사를 지내러 다 같이 함께 가는 길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저 길 끝에서 비로 인해 질척해진 길 위에서 뒤뚱뒤뚱 오리처럼 옆으로 춤을 추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작은 차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 그들이 우리에게 점점 가까이 왔을 때 할머니와 나는 그들이 남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는 인민군임을 직감했다. 할머니와 나는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길 가장자리로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풀숲에 몸을 숨겼고, 큰 동생은 노래를 부르며 뒤따라오는 막내의 입을 틀어막았다. 인민군은 무덥고 습한 날씨에 지친 건지 전쟁을 치르느라 지친 건지 축 늘어진 어깨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지나갔다. 저런 인민군이 어떻게 전쟁이 나자 3일 만에 서울을 빼앗았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와 나는 저 인민군이 향하는 마을은 우리 마을일 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엄마의 제사는 마음속으로만 지내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오던 길로 가면 인민군보다 늦게 도착할 것을 감안해 평소 가진 않던 산길을 가로질러 정신없이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인민군보다 먼저 집에 도착한 우리는 아버지께 인민군이 우리 마을에 온다는 사실을 알렸다. 나는 이 오지 시골 마을에도 오는 인민군을 보면서 진짜 전쟁이 났음을 실감했다.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오고 나서, 그들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라고 하면서 먼저 지주들의 땅을 뺏고 소작농에게 나누어주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뽑았다. 인민위원회에 속하게 된 일부 마을 사람들이 인민재판이라는 것을 열었다. 인민군 말로 지주와 자본가는 인민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존재라 했다. 나는 그럼 그 지주 밑에서 마름으로 일했던 우리 아버지는 새끼 거머리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인민재판이라는 것은 마을의 공동 행사를 치르던 느티나무가 있는 공터에서 있었다. 지주와 갈등을 크게 빚던 소작농 아저씨들 중 일부가 팔뚝에 완장을 차고 맨 앞에 서 있고 그 중앙에 인민군 대장으로 보이는 듯한 이가 의자에 앉아 있다. 물론 그 뒤에 총을 들고 인민군 여럿이 서 있었다. 우리 마을 지주들은 전쟁 소식에 진작 떠나 지주를 재판할 일들은 없었다. 그런데 국군이나 경찰 가족도 인민재판을 한다고 한다 외삼촌이 경무대 소속 국군인데 그 사실을 인민군이 알게 될까 봐 나는 마음속으로 조마조마하며 떨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우리 식구 이외에 배 서방 아저씨네만 아는 일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할머니가 돈으로 산 자리니 자랑할 일 아니라고 입단속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새엄마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죽은 전처의 동생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을 알고 가만히 있을 새엄마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일은 뜻하지 않던 곳에서 벌어졌다. 아버지가 농지개혁 이후로 그만두긴 했지만 일제 때 마름으로 일한 이력 때문이었다. 아버지 이름이 호명되고 아버지를 비판하는 이유를 인민위원회 위원 중 한 사내가 읊조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내가 읊은 내용에 아버지의 행적이 하나도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평소 아버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소작농 이 씨 아저씨가 나섰다.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무슨 용기가 났는지 마름이었지만 농지개혁 때 지주에 대항에 소작농 편을 들었다가 마름에서 잘린 이야기를 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마을 사람들의 증언으로 아버지는 다행히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의 입이고, 생각이라는 것을. 또한 이젠 진짜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