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칠석날

by 자강



겨울이 오면 우리 집 반려견들이 최고로 좋아하는 호박고구마를 산다. 물론 나와 딸아이도 좋아한다. 고구마가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소식좌인 딸과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양식이다.

오늘 문득 고구마를 씻다 떠오른 얼굴이 있다. 뵙지 못한 지 50년 가까이 되었으니 그 존안도 가물가물하다. 내 나이 9살에 돌아가신 외증조할머니 영면에 드신 때가 아흔아홉 살이셨으니 아마도 1880년대 후로 태어나신 19세기 사람이셨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그려보면 생각나는 캐릭터가 딱 하나 있다. 나 어릴 적 티브이에서 봤던 만화 '호호 아줌마'의 주인공 호호 아줌마다. 정말 딱 그렇게 생기셨던 기억이 난다. 작은 키에 늘 한복을 입으셨고, 웃으시면 눈꼬리가 신라 천년의 미소를 닮으셨던, 쪽 찐 머리에 은비녀를 꽂고 계셨던 할머니.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린 손녀를 손수 키우셨던 외증조할머니는 엄마에겐 엄마보다 더 그립고 애틋한 그런 분이셨다.





"할머니~, 할머니~."

"에구 내 새끼. 와? 숨 넘어 가니께 츤츤히 말해도 되여. 숨 좀 쉬고 얘기 혀."

"할머니, 나 오늘 국어 시간에 본 시험 100점 맞았어. 나만 100점이야. 짠!."

눈이 어두운 나에게 손녀딸이 내민 시험지엔 온통 왜놈 글만 쓰여있어 읽을 수도 없었다. 사내아이로 태어났으면 면장이라도 했을 거라며 집안 어른들이 아쉬워할 정도로 총명한 아이다. 동네 인근에서 마름 집 큰딸보다는 총명한 아이로 더 알려진 손녀딸은 오늘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과를 조잘거린다.

삼 년 전 며느리가 세상을 떠나고, 그 어미 대신 삼 남매를 키웠다. 상처한 아들은 이웃 마을 글방 선배 소개로 아이들의 새엄마가 될 여자를 만나고 있는 듯하다. 상처하고 탈상한 지 6개월이 지났으니 남들에게 흉 잡힐 일은 없으나, 내겐 아직도 그 선한 며늘아기의 미소가 생생하니 새 며느리를 들이기는 아직 이르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대독자 마름 집에 열여덟에 갓 사집 와서 큰 손녀딸을 낳고, 이듬해 첫 손자를 낳아 집안에 겹경사를 만들어 주었으니 어찌 안 이쁠까. 게다가 사 년 후 또 아들을 낳아 삼대째 독자 집안인 우리 집에 아들이 하나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까지 종결시켰으니 문중의 어르신들은 더할 나위 없이 예뻐한 며느리였다. 나를 닮아 키가 작은 아들과 달리 길쭉한 팔다리에 백옥 같은 피부며 검은 머리칼이 예쁜 그런 며느리를 난 유난히 부러워하고 예뻐했다. 길쌈 짜는 베틀에 앉아 일하는 모습을 보면, 어릴 적 들었던 칠석 이야기 속 직녀가 저리 생기지 않았을까 하던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게 젊고 예쁜 며느리가 넷째를 임신하고 무슨 변고인지 유산을 하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삼신할미가 노하신 것인지, 성주신, 조앙신이 노하신 것인지, 어디서 동투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재넘어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점을 치고 굿도 해봤으나 소용이 없다. 산후에 좋다는 갖은 약이라는 약은 죄다 먹어봐도 차도가 없다. 엊그제는 서울에서 양방을 공부한다는 박서방 큰 아들이 일러주기를 자기가 알고 있는 경성의 큰 병원 산부인과를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아범이 그 결심을 하기에는 사나흘이 걸렸다. 경비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픈 며느리를 다꾸시에 태우고 기차역, 경성, 다시 병원까지 가야 하는 여정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농번기로 바쁘기도 했고, 요 며칠 소작농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심상치가 안은 탓에 집을 비우고 경성을 다녀오기가 마땅치 않아서였으리라. 그런 고심하는 아들에게 내가 며느리와 함께 하겠다고 먼저 청했다. 아들은 연로하신 어머님이 어찌 경성까지 먼 길을 갔다 오냐고 안 된다 하였지만, 아픈 사람을 병원 한 번 제대로 안 데려가는 것이 어찌 사람 된 도리인가 싶어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며느리와 병원 가는 날이 결정되고 전날 밤이 되었다.

"할머니?" "오냐."

"엄마, 병원 가면 금방 나으시겄쥬?

"그려, 염려 붙들어 메 놔. 우리 애기는 밥 잘 먹고, 공부나 열심히 허고 있어."

"며칠이나 있다 오는 디유?"

"뭇해두 사나흘은 걸릴 겨."

"그렇게나 오래유?"

"왜? 할미 보고 싶어서 그려?"

"그러기도 허구, 엄니 걱정도 되구, 동상들이 지 말을 잘 들을까 싶어서 그래유. 기만이는 한 살 위인 날 제법 누나로 생각허구 말을 잘 듣는디, 기창이는 다섯 살이나 어린것이 자꾸 미꾸라지처럼 뺀질 댄다 말이어유. 핵교에서두 자꾸 말썽 피워서 지가 누나라고 대신 혼나유."

"그려? 이 핼미가 기창이헌태 누나 말 잘 들으라헐텐게 걱정 말고 어여 들어가 자. 낼 핵교갈라믄."

"예. 할미, 내일 할미 갈 때 지 꼭 깨워야 허유 ."

"그려."

어미가 아프니 불안해하는 손녀딸을 달래고 며느리가 누워있는 안채로 들어갔다. 삼베로 만든 홑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며느리의 몸이 가시나무처럼 야위어 유난히 더 도드라져 보인다. 내가 들어가는 인기척에 깼는지 며느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애쓴다.

"괜찮다. 몸도 성치 않은데 누워 있어라."

"......"

"내가 미안타. 열여덟에 시집와 큰 살림 도맡아 하는 것도 힘이 들었을 텐데, 그놈의 대가 뭔지 아들을 둘씩이나 낳아준 니한테 아 더 낳으라고 등 떠민 것 같아서....."

"아니유, 어머니. 그게 어찌 어머니 탓 이어유. 아이는 삼신할미가 점지해 주신 선물인데 태중의 아이 못 지킨 제 잘못이 지유."

며늘아기는 대답과 함께 소 눈망울 같은 눈에서 은빛 구슬 같은 눈물을 떨군다. 더 말을 이어가면 가뜩이나 아픈 아이를 힘들게 할 것 같아. 며느리에게 잠을 청하라고 이르고 방을 나왔다.

오늘이 칠석이었던가? 집안에 우환이 있으니 때도 모르고 산다. 배 서방네 어멈에 일러 낮에 시루떡과 밀전병을 만들어 식솔들을 먹이라고 일러두고 가야겠다. 초승달을 보니 곱디고운 며느리가 갓 시집오던 날이 더욱 생생해진다.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서야 하니 잠을 청하려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고, 푸른 달빛에 소쩍새 소리만 처량하게 들린다.

"어르신, 어르신~"

배 서방네 어멈이 다급한 목소리로 부른다. 잠을 못 자고 뒤척이다 눈을 붙였다. 아직 밖이 어두운 걸로 봐서 묘시가 채 안 된 시각이었다. 다급한 목소리에 황급히 옷을 입고 대청마루로 나갔다.

"무슨 일인 게야?" "마님이....."

어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떨군다. 여느 때와 달리 목덜미가 자꾸 서늘해지는 오한이 느껴져 잠을 못 이루었는데 이 소식을 들으려 했나 보다. 버선발로 마당을 가로질러 며느리 방의 문을 열었다. 밤새 며느리와 함께 한 아범의 어깨가 소리로 없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먼저 갈 것을 알았으나 이리 황망히 갈 줄을 아범도 몰랐고, 나 역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인하고 있었다. 며느리의 죽음으로 칠석날 아침부터 동네는 장례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며느리의 친정집에 사람을 보내 며느리의 죽음을 알리는 연통을 넣었고, 문중 어르신들께도 소식을 전했다. 염장이도 불러야 했고, 장례식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배 서방네 어멈을 불러 이것저것 일러두어야 했다. 그리고 어미의 죽음으로 인해 둥지 잃은 어린 목숨들을 살펴야 했다. 슬픔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이 오히려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문중 어른들이 한 분 두 분 오시니 그분들의 상복과 아범과 손주들의 상복부터 준비시켰다. 날은 칠석날답게 아침부터 궂은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