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수

by 자강


아침 점호를 마치고 연병장으로 나가려는데 김일병이 내게 편지를 건넨다. 넷째 형님의 편지다. 고된 광산 일로 가뜩이나 기관지가 약한 형님이 폐에 이상이 생겨 치료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우리 분대가 은파산으로 지원을 나갔던 보름 동안 형님은 두어 차례 나를 만나러 부대에 왔다 헛걸음을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형님은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얼굴이라도 보고 갈 요량으로 나를 찾아왔으나, 보지 못하고 가게 되어 섭섭하다는 말과 함께 사식을 사 먹으라며 약간의 돈을 주고 가셨다.


날은 삼복더위의 여름으로 들어서 갯바람이 불어도 후덥지근한 열기가 느껴져 군장을 메고 수색을 나가기가 힘든 상황이다. 지난 5월 개성에서 1사단이 송악산 부근에서 북쪽과 교전을 벌였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때 이후로 남과 북이 이러다 대규모 전투를 벌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형님의 병환으로 인한 귀환은 내 걱정을 덜어주어 주는 일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석 달째 소식이 없는 셋째 형수의 소식을 형님께서 고향에 가시면 연통을 달라는 부탁을 하지 못한 것이다.

6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실질적으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신 큰형수님께서 철마다 보내주시는 옷가지와 편지 덕에 나는 그리운 고향 소식을 그나마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연고인지 더 이상 석 달이 다 되도록 편지가 오지 않고 있어 궁금할 뿐이었다.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배편을 이용해 육지로 나갈 수 있는 이곳은 고향 소식도 쉽게 들을 수가 없는 고립무원이다. 이곳은 38선이 그어지기 전까지 해주로 가는 열차도 있고, 차만 타면 개성까지 금방 갈 수 있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저 철책이 세워지면서 옹진에서도 남한 쪽에 속하는 이곳 두락산 일대와 탄지말, 옹진 시내, 냉정리 등 옹진반도의 해안 쪽에 해당되어 배편으로만 남쪽 땅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뭍에 있는 섬인 셈이다. 큰 형수는 이런 고립무원 지대에 왜 굳이 가려 하냐며 극구 나를 말렸지만, 미군에 줄 대려고 아부나 떨며, 미군의 비위나 맞추는 일은 내 성정에 맞지 않아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지난달에 수도사단과 제8사단을 편성 대대적으로 군대를 확장했고, 내전의 기운 때문에 유엔한국위원회는 철수를 못하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북쪽의 김일성도 대규모 공격을 위해 소련에 지지를 구하고, 2년 전부터 '조선의용군' 출신의 의용군들이 중국 내전에 투입되어 중국 공산당을 돕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렇게 전투 실력을 쌓은 의용군들이 중국의 공산화가 사실화되면서 속속들이 국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엊그제 북쪽 아이들의 도발도 다 그런 이유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미치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니 제법 시원한 바람이 건듯건듯 불어온다. 초승달이 뜨고, 밤바다가 어둑어둑해지니 산속의 적막함이 더 해져 고향 생각에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큰 형수가 우리 집에 시집오던 날밤도 초승달이 뜬 여름날이었다. 뒷산에 메밀꽃이 활짝 만개해 은빛으로 빛났고, 소쩍새는 구슬피 우는 그런 달밤에 다섯째 형님과 나는 대청마루에 앉아 내일 치를 셋째 형님의 성례를 잔뜩 기대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첫째 형님의 전사 소식 후 집안 어른들은 실질적인 장남인 셋째 형님의 혼사를 서두르셨다. 둘째 형님은 살아 계셨으나, 이제는 다른 집의 장손이 되어 계시니, 우리 집의 장남은 이젠 셋째 형님이 되는 거다. 둘째 형님은 집안의 제사나 큰일을 치를 때 뵌 적이 있다. 아버지의 사촌 큰 형님이 아들을 못 낳으시니, 우리 집안에서 아들이 제일 많은 우리 집의 둘째 형님이 양자로 가신 것이다. 그 뒤로 둘째 형님은 족보상에서 큰 집 형님이 되신 거다. 항렬도 같은 터라 난 다섯째 형님이 귀띔을 해주기 전까지 둘째 형님을 집안의 제일 큰 형님인 줄로만 알고 지냈다.

셋째 형님은 우리 형제 중 공부도 제일 많이 하시어,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으로 가시어 고등보통학교까지 공부를 하셨다. 그런 형님은 성례를 차르고 다시 경성으로 가신다고 한다.

아침이 되고 마당엔 큰 천막이 쳐지고,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각종 전을 만드는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떡을 만들기 위해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는 형님들은 떡메를 치고, 성례를 치르기 위해 마당 한가운데 혼례상이 차려졌다. 청실홍실로 묶은 수탉과 암탉이 올려지고 술과 안주를 차린다. 병풍이 드리워진 앞에는 혼사를 주관하기 위해 분주한 김 씨 아제가 갓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고 서 있다.

"성, 근디, 왜 셋째 성님 성례는 우리 집에서 치르는 거여?"

"뭐 때문에 그러겄냐?"


"내가 알믄 성님한테 물어보지 않았을 거구먼."

"형수 집이 사정이 있어 혼사를 못 치러 그런다든디."

"그건 어뜨케 알은 겨?"

" 이잉, 엄니랑 당숙모랑 허는 얘기 몰래 엿들었구먼."

"그렇구먼, 그럼 둘째 성님보다 먼저 혼례를 치르는 거 아닌 감?"

"둘째 형님은 다른 집 사람되었는디 뭔 상관이여. 이젠 우리 집 큰 형님은 셋째 성님이여 알겄냐. 이 모난 돌멩이야."

"왜 또 그리 부루는 거여. 내가 제일 싫어 하는 거 알믄서 그리 부르는 이유가 무어여?"

"맨날 핵교에서 사고나 치고 오니께 그러지. 니두 공부하기 싫으면 내처럼 농사일이나 배워."

다섯째 형님은 답답하다는 듯이 내 머리를 세게 줘 박고 사랑채로 뛰어간다. 나는 그런 형님을 쫓다 말고, 대문 열리는 소리에 행랑채 쪽으로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대문이 열리자 꽃가마가 들어온다. 아마도 저 꽃가마에 셋째 형님과 혼례를 치를 형수가 타고 있을 게 뻔하다. 나는 마당 구석에 심어져 있은 밥풀꽃 나무 뒤에 몰래 수그려 앉아 가마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가마꾼이 가마를 땅에 내려놓자 가마문이 열렸고, 빨간 꽃을 수놓은 꽃신을 신은 두 발이 살포시 나온다. 하얀 버선목이 보이고, 활옷을 입은 새색시가 볼에는 연지를 찍고 머리에 쓴 족두리를 흔들거리며 나온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놀라 철퍼덕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동네 형수들을 비롯해 인근의 젊은 아낙네들, 그리고 우리 집 고집쟁이 쌍둥이 누이들만 보다 마주하게 된 형수는 너무도 고왔다. 사슴의 눈망울 한 커다란 눈과 백옥같이 곱고 하얀 얼굴에 여리여리한 체구는 땅 넓은 줄만 아는 누이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내가 아는 사내 중에서 가장 멋지고 사내다운 셋째 형님에 걸맞은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도 셋째 형수같이 예쁜 색시를 만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혼례는 왁자지껄 웃음꽃 피는 사이 무사히 치러졌고, 어머니께서 며칠간 신경 쓰시면서 꾸민 신방으로 형수는 사라졌다. 난 형수를 더 못 보는 게 아쉬웠지만, 내일 아침에는 볼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난 채로 다섯째 형님과 잔치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그러고 있자니 어머니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혼례식에 못 오신 외가댁 친지분께 갖다 드릴 음식을 다섯째 형님과 함께 갖다 드리고 오라 하신다. 외가댁은 걸어가기엔 좀 먼 곳이지만, 형님과 함께 간다면 가능하기에 군소리 없이 갔다 왔다. 음식을 전해드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쯤 초승달이 어느덧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밤 뜬 초승달이 자꾸 낮에 본 형수의 까만 눈썹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