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서울역을 출발해 온양 온천 역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5시간이 걸려서 우리가 역에 내려 온천에 딸린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가 다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신혼여행으로 온양온천을 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그의 형편이 신혼여행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애당초 우리의 신혼여행은 남산 드라이브로 끝낼 생각이었다. 그러다 나의 미래 외숙모가 될 영숙 씨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을 해 숙소를 마련해 주었고, 아버지가 그 비용을 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일을 그는 두고두고 맘에 걸려 했지만, 난 그런 그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사위도 자식인데 부모가 자식을 위해 돈이 있다면이야 무얼 못해줄까라고 말씀을 하셨기에 아버지의 마음도 그에게 전했다. 하지만 이젠 남편이 된 그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나 또한 아주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다리가 불편한 그가 대중탕을 이용함에는 무리가 있어 가족탕을 따로 썼는데 이 또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았다. 자신이 처지가 평범을 벗어나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나에게 더 미안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온천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마주한 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나는 우리가 결혼한 것도 당신이 내 남편이 된 것도 후회 안 할 자신이 있어유. 그러니까 오늘 생각한 우울한 생각들은 앞으론 안 했으면 좋겠구먼유."
그는 나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 말을 듣고 순간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소. 이렇게까지 성숙한 당신을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여리게만 생각했으니 말이오. 내 앞으로 못난 생각은 다신 하지 않을 거고, 한평생
당신만 생각하며 살 것을 맹세하오."
"그건 당연한 것인디 굳이 맹세할 것이 또 뭐예유."
우리는 그렇게 찜찜했던 마음을 솔직하게 열어 보이고 첫날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어 이순신 장군의 묘와 현충사를 둘러보고 점심때가 되어 기차를 타고 우리의 고향 광천으로 향했다.
광천역에서 택시를 타고 이제는 친정이 된 집으로 향했다. 택시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와 아버지, 기만이 기창이까지 집 앞에 나와 우리를 반겼다.
"에구 오느라 애썼구먼. 멀미하자는 않은 겨?"
"네 할머님 "
할머니를 향해 두 손을 모은 채로 그가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이날만큼은 새엄마도 옥희도 모두 나와 나를 반겨주었다. 장시간 기차를 타고 택시를 타고 오다 보니 저녁을 먹자 고단함이 밀려왔다. 할머니가 준비한 원앙 금침이 정갈하게 깔려 있는 신방에 누워 있자니 스르르 잠이 쏟아진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눈을 뜨자마자 마당으로 나갔다. 신행을 가기 위해 시댁까지 타고 갈 가마를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는 가마꾼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가마꾼들에게 인사를 하고 할머니가 계신 부엌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께서 정성껏 준비해 주신 찹쌀을 담은 요강과 음식을 보니 이제는 정말 결혼을 한 새색시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침밥을 먹고 사랑방에서 아버지와 할머니 새엄마께 절을 올리고 나는 가마에 올랐다. 사방이 막힌 가마에서 찹쌀 담은 요강을 안고 가는 신행길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길이 굽은 곳에서는 몸이 마구 흔들렸고, 경사진 고개를 넘을 땐 몸이 뒤로 쏠려 가마의 창틀을 꼭 부여잡아야 했다 그렇게 1시간 남짓을 갔을 즘 시댁 마을 어귀에 도착했는지 가마 밖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가마의 창문을 살짝 열어 보았을 때 가마꾼들이 마당에 피워놓은 짚불을 건너고 있는 걸 보니 시댁이라는 곳에 도착한 것 같았다. 가마꾼이 가마를 마당에 내려놓자 가마 문이 열린다. 눈앞에 보이는 이가 생김새로 봐서 아마도 막내 형님인 것 같았다. 남편이 말하길 막내 형수님은 키가 작고 들창코에 눈이 부리부리하다고 했던 기억이 났기에 나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아이고 먼 길 오느라 고생했소. 어여 내리쇼."
막내 형님으로 보이는 이가 내게 손을 내밀고 나의 신행은 시작되었다. 나는 이곳 시댁에서 열흘간 지내다 남편과 함께 서울 신혼집으로 간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살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을 하며 나는 가마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