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나의 아내가 된 그녀는 시종일관 창문 밖을 바라보며 종달새처럼 조잘대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마냥 사랑스럽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이 나의 다리를 빼앗아 갔고 그 미안함 때문에 사랑스러운 여인을 내게 보내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온양온천역에서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니 늦은 저녁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피곤함을 느껴 숙소로 들어와 간단히 온천욕을 하고 금세 방으로 들어왔다.
사실 큰형수의 집을 마련해 주느라 갖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냈기에 결혼식 비용이 빠듯했던 나는 신혼여행은 못하게 될 것 같아 걱정하던 차였다. 그런 내 상황을 알아차린 윤의 약혼녀가 그녀의 아버지께 부탁해 숙소를 주선해 줬고 장인어른이 그 비용을 내주신 것이다. 나는 사위도 자식이라고 하신 장인어른의 말씀에 울컥했지만 그 고마운 마음을 겉으로 쉽게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와 잠자리에 들으려 하는 순간 그녀가 내게 할 말이 있다며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나는 우리가 결혼한 것도 당신이 내 남편이 된 것도 후회 안 할 자신이 있어유. 그러니까 오늘 생각한 우울한 생각들은 앞으론 안 했으면 좋겠구먼유."
나는 그녀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 말을 듣고 순간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소. 이렇게까지 성숙한 당신을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여리게만 생각했으니 말이오. 내 앞으로 못난 생각은 다신 하지 않을 거고, 한평생
당신만 생각하며 살 것을 맹세하오.'
"그건 당연한 것인디 굳이 맹세할 것이 또 뭐예유."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번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며 신혼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날 일찍부터 서둘러 가족탕에서 온천욕을 하고 이순신장군 묘와 현충사를 돌아본 뒤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온양온천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우리 고향역에 도착하는 데에는 두 어시간이 걸렸다. 서울행 급행열차를 먼저 보내느라 잠시 정차하기를 20여 분 하느라 연착이 된 기차는 예정 시간보다 늦게 광천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둘러 선물 꾸러미를 챙겨 택시를 타고 처갓집으로 향했다. 처갓집에 도착한 우리를 맞으러 할머님을 비롯해 장인어른과 처남들까지 모두 대문 밖까지 나와 있었다.
"에구 오느라 애썼구먼. 멀미하지는 않은 겨?"
"네 할머님 "
나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밖에까지 나오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할머니께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날은 어둑어둑하고 섣달 그믐에 가까우니 입김이 뿌옇게 나오는 차가운 날씨였다. 내일은 본가에 가마와 조랑말을 타고 신행을 간다. 어린 신부가 좁은 가마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한 시간가량 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엔 가느다란 눈썹 같은 그믐달이 떠 있고 나의 작은 새는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장인어른의 노여움과 할머님의 서운함이 있었지만 무사히 함도 들이고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에 신행까지 이 모든 일들이 꿈만 같이 척척 진행되니 오히려 약간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내가 이토록 호사를 누려도 되는가? 큰 형님이 살아 계셔서 나의 어린 신부를 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이 쏟아져 잠을 이루기 힘든 밤이다.
다음날 아침 마당에서 나는 어수선한 소리에 잠이 깨어 밖으로 나갔다. 마당의 평상에서는 가마꾼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고 부엌에선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장인어른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사랑채로 건너가 장인어른을 불렀다.
"아버님, 기침하셨유?"
"오, 최서방 들어오게나."
장인어른은 언제 기침하셨는지 의복을 다 갖추시고 계셨다. 나는 장인어른께 절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려 잠은 잘 잤는가?"
"네, 아버님, 아버님께서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네도 잘 잤네. 최서방 우리 순열이 이른 나이에 어미 잃고 일찍부터 동생들 챙기고 할머니 모시느라 맘고생이 많았네. 이제 자네 사람 되었응게 많이 사랑해 주고 잘 살아주게. 난 그것이면 되네."
"네, 장인어른 여부가 있겠습니까? 한없이 부족한 절 자식으로 받아주고 이리 뒷바라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장인어른은 내 말에 화답으로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때 밖에서 장인어른과 나를 부르는 큰 처남의 소리가 들렸다.
"아부지, 매형 안에 계시쥬? 아침 진지드셔유. "
"오냐, 나가마."
아침을 먹고 신행 준비를 마친 나와 아내는 조랑말과 가마를 각각 타고 신행길에 올랐다. 할머님은 아쉬움을 뒤로 한채 우리에게 어여 가라는 뜻으로 손을 흔드셨고, 아버님과 다른 식구들도 떠나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는 가마꾼 일행의 발검음은 동지섣달 추위를 조금이라도 이겨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걸음을 재촉했다.
가마가 마을 어귀에 닿자 신행길에 오른 우리를 반기는 동네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아마도 내가 집안 어른들과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전통혼례식을 치르지 않은 탓에 불구가 된 나와 결혼하는 나이 어린 신부가 궁금했으리라. 가마가 골목으로 들어서자 웅성거리는 사람들과 큰형수, 태환이, 인환이, 덕순이가 모두 나와 우리를 반긴다. 가마꾼이 가마를 막내형님 집 안마당에 내려놓자 막내 형수가 가마문을 열었다. 설이 곧 오기에 우리는 이곳에서 설 차례를 지내고 서울 신혼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