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 고객사 명절 선물 불출

May 11. 2025

V 차장 : 얼굴아

그 : 네!

V 차장 : 명절 선물 도착했다고 하거든? 저쪽 파티션에 있을 거야. 본사 수령으로 신청한 인원들 받아가라고 해. 옆에 명단 있으니까, 가져갈 때 꼭 본인 싸인 받고.

그 : (??) 알겠습니다!

V 차장 : 고객사에 보내주는 명절 선물이야

그 : 아 네 알겠습니다!

V 차장이 가리킨 방향으로 가니, 박스 수십 개가 쌓여 있다. 한국의 대명절을 맞이하여, 고객사들에게 나눠줄 명절 선물인 것으로 보인다. 쌓여있는 박스 옆에 놓인 리스트를 보니, 신청자의 이름과 기타 정보들이 표로 정리되어 있다. 신청자는 대부분 영업팀 직원들이며, 가끔 기술팀 직원의 이름도 보인다. (원래는 고객사 주소로 바로 보내는데, 주소가 명확치 않거나 할 경우에는 본사에서 수령하여 전달해주는 듯하다)

그는 공지를 올린다.

'고객사 선물 본사 수령 건 도착했습니다. 본사 수령으로 신청하신 분들께서는, 리스트에 서명하시고 수령해가시면 됩니다.'

공지를 올리자마자 가져가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주인을 기다리는 선물 박스들도 많았다. 그는 아직 순수하고 열정이 넘치는 신입사원이지 않은가. 리스트를 확인하고, 선물들을 직접 신청자에게 배달하기 시작한다.

배달 완료 후에는, 사진을 찍어 개인 메신저로 보내고 안내한다.

그 : 안녕하세요, 하얀 얼굴 사원입니다. 명절 고객사 선물 자리로 갖다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원 1 : 아, 감사합니다!

직원 2 : 아 깜빡 잊고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직원 3 : 네 감사합니다!

...

명절 선물 관련 공지를 그가 올리니, 당연하게도, 직원들은 그에게 관련 문의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불출만 담당했을 뿐이다.

- 얼굴 사원님 안녕하세요. 고객사 주소가 바뀌어서요. 주소를 변경할 수 있을까요?

- 얼굴 사원님 안녕하세요. 고객사 측에서 아직 선물 수령을 못했다고 해서요

- 안녕하세요. 고객사 선물 다 배송된 건가요?

- 고객사 임원이 변경되어서 지금 수정할 수 있을까요?

- 안녕하세요. 고객사에서 직접 가져다 달라고 해서...

...

그는 회사에서 직접 수령하는 선물들만 보고는 양이 그리 많지 않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차라리 회사에서 직접 수령하는 건들은 별 문의가 없이 깔끔했다. 하지만 고객사로 직접 날아가는 선물들의 경우, 중간에 주소가 바뀌거나 배송이 제대로 안 될 경우 골치가 아파진다. 그와 V 차장은 취합만 했을 뿐, 이 모든 것을 실제로 진행하는 것은 결국 위층 관리팀(인사팀 총무)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컴플레인을 접수/취합하여 또다시 위층으로 퍼나르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 V 차장님, 명절 선물 관련해서 문의가 많은데 누구한테 이야기해야 하나요?

V 차장 : 나한테 알려줘. 어차피 이거 총무에다가 말해야 해. 그쪽에서 배송 주문 다 넣고 진행한 거야.

그 : 알겠습니다.

그가 보기에, 위층 관리팀은 언제나 바쁘다. 컴플레인을 접수/취합하여 올리더라도, 이에 대한 조치가 이뤄지는 속도가 상당히 더디다. 하지만 사업부 직원들은 '사업지원팀'에 문의 및 독촉을 하였고, 중간에서 해명하는 것도 '사업지원팀'의 몫이었다. 왜 이런 걸까. 그냥 당사자들끼리. 사업부 직원과 위층 관리팀이 직접 다이렉트로 소통을 하면 되는 것 아닐까. 왜 굳이 '사업지원팀'이 중간에 껴서 중개를 하는 것일까. 중개를 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위층 관리팀은 그런 식으로, 아무나(사업부 직원들) 마음대로 연락해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