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원맨팀
S 팀장 : 네, 그래서 다들 업무 잘 챙겨주시고요
C 대리 : 네
홍보팀장 : 네
T,U 과장 : 네
S 팀장 : 네, 회의 마치시죠.
몇달 전부터 신설되어, 매주 진행해오는 업무 공유 회의다. 회의가 끝나고, 그는 빔 프로젝터를 끄고 뒷정리를 하고자 한다. 그런데, 사업지원팀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이 그대로 앉아있다.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는 듯하다.
홍보팀장 : (웃으며 그에게) 고생했어요
그 : (빔 프로젝터를 끄며) 아, 아닙니다!
C 대리 :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또 일하러 가야죠.
홍보팀장 : 그래야지...
C 대리 : 아니 팀장님, 왜 그러세요. 아까부터 답답해보이시던데
홍보팀장 : 그럼 안 답답하겠니? 어?
C 대리 : 어떤 게 그러세요. 하하하
홍보팀장 : 이 회의가 뭐야. 업무 공유 회의잖아? 원래 없던 회의를 만들어가지고 진행하는 건데. 여기서 홍보 관련해서 논의되는 게 뭐가 있어? 매번 그냥 기자 미팅했습니다. 예정된 행사 있습니다. 이게 다잖아?
C 대리 :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려고 하고 있는 거 같지 않아요?
홍보팀장 : 나아지긴... 여기 회사 홈페이지도 봐봐. 바꾼다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도 마무리가 안되고 있어
C 대리 : 그건 그렇죠
홍보팀장 : 여기는, 원래부터 그랬지만. 홍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다른 회사들 가봐. 홈페이지나 웹사이트에 들어오는 경로가 각각 어떻게 되는지, 들어와서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지, 전환율이 어떻게 되는지, 웹사이트 재방문율은 어떻게 되는지 전부 다 분석하는 역량이 기본이야. 근데 여긴?
C 대리 : ...
그 : (맞다. 이 회사에 그런 건 아예 없다)
한번 둑이 터지니,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C 대리도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그는 나갈까 하다가,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회의실 문을 닫고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홍보팀장 : 지금 이 업무 공유 회의는, 그냥 사업지원팀 회의야. 말로야 나는 홍보팀이고 너는 영업기획이지. 근데 이건 그냥 사업지원팀 회의고, 너나 나나 다 사업지원팀인 거야.
C 대리 : 그래도, 서로 목소리를 내면서 좀 방향을 이렇게 같이 만들어가지 않아요?
홍보팀장 : 다른 회사에서는, 업무 공유 회의 같은 거 하면 큰소리 나는 게 일상이야. 아, 이거는 위험해보이니까 우리 영업하지 마시죠. 여기 말고 이쪽으로 가시죠. 그러면 영업에서는 당장에 들고일어나. 그렇게 해서 영업 안 하면 당신네가 우리 KPI 책임질 거냐고. 영업은 영업이고, 홍보는 홍보고, 지원은 지원이야. 근데 여기는 그런 게 없어. 이렇게 하시죠 하면 다들 그냥 따라가지. 이게 회사야? 여긴 구멍가게야.
그 : (왠지 회사 욕이 듣기 좋다)
C 대리 : 여기 계속 다니신 분들은 그런 문제의식이 잘 없어서요. 그래서 팀장님 같은 분께서 오셔서 많이 이야기를 해주시고 있잖아요.
홍보팀장 : 나도 처음 와서는 엄청 바꿔보려 했는데, 이제는 뭐. 나도 그냥 놨어. 맨날 얘기하잖아. 여긴 원맨팀이라고. 원맨팀, 그래 좋을 때는 좋지. 근데 망할 때는 다같이 망하는 거야. 각 부서에서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의견을 내고, 각자의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데. 지금까지야 뭐, 어찌저찌 경기 상황 타고서 잘 되게끔 왔지. 근데 잘 안되면?
홍보팀장 : 물론 나도 큰소리 안 내고 편해. 그래서 요즘 그냥 그러고 다녀. 근데 이게 얼마나 가겠니. 다른 데랑 비교가 안 돼. 다른 회사 미팅 들어가봤어?
C 대리 : 네.
홍보팀장 : 어때. 다른 데 대리랑 여기 대리랑. 대리가 뭐야. 다른 데 대리가, 여기 과장차장까지 다 씹어먹어.
그 : (!!) ...
홍보팀장 : 이런 와중에, 또 채용할 때는 뭐라고 해. '갈 곳 없는 애들 뽑으라'고 해.
C 대리 : 진짜요?
홍보팀장 : 그렇다니까. 갈 곳 없는 애들 뽑아야 오래 다닌다고.
그 : (송곳으로 찔린 듯하고, 속이 답답해진다)
홍보팀장 : 내가 말을 너무 막 했네. 너네들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닌데
C 대리 : 아닙니다. 팀장님 덕분에... ...
...
회의실에 앉아 말을 들으며, 그는 생각이 많다. 보편타당한 진리를 들은 것은 아니다. 한 개인의 편중된 의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 의견에 상당히 동의한다는 점이다.
회사를 다니며, 주어진 '업무'라는 것을 하며, 그는 계속해서 의구심을 느껴왔다. 이게 맞나. 이게 회사인가. 그가 이 회사를 다니면 훗날 어떻게 되어있을까. 홍보팀장의 말에 의하면, 이 회사는 원맨팀이자 구멍가게이며 갈 곳 없는 어중간한 인재들을 뽑아서 부리는 곳이다.
그도 '다른 데 가지 못할 만한 어중간한 인재' 여서 채용된 것인가.
이 회사에서 과차장급이 되더라도 너무 무능력하여, 다른 회사 대리급에게 씹어먹히게 될 것인가.
회의실을 정리하고 자리에 돌아가 전염병 전표를 치며, 생각이 많아지는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