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 대담한 쉐어메이트

by 하얀 얼굴 학생

낡고 어두컴컴한 쉐어하우스 안에서, 5명의 쉐어메이트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를 제외한 4명을 한 명씩 뜯어보자면


성격이 밝고 명랑한 이탈리아인

조용하고 말이 없는 독일인 1 / 투박하고 거친 독일인 2

피부가 하얗고 체구가 작은 한국인

이런 구성이다. 이탈리아인과 독일인들은 모두 공사장에서 일을 했었다. 지붕 기와 작업이나, 카펫 관련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서, 현재는 일을 뜨문뜨문 나가는 형국이다. 두 독일인은 그나마 조금씩 일을 나갔고, 이탈리아인은 일을 나가지 않는 날이 많다. 한국인 쉐어메이트는 아직 일을 찾고 있는 중이다. 한국인 쉐어메이트는 워홀 초창기의 그처럼, 영어 실력을 늘리려는 듯 이탈리아인과 독일인들에게 자주 말을 건다.


영어 실력은 조금 차이가 있다. 그와 한국인 쉐어메이트, 이탈리아인은 영어를 꽤 하는 편이다. 발음이나 억양이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두 독일인들은 영어가 약간 서툴다. 독일인 1은 워낙 조용해서 말이 없다. 독일인 2는 영어를 굳이 열심히 연습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이성에는 관심이 많아서, 독일인 2가 입을 여는 주제는 항상 이성과 클럽 이야기다.


5명이 모이면, 주로 이탈리아인과 한국인 쉐어메이트가 가장 많이 이야기한다. 특히 이탈리아인은 원래 성격이 밝고 명랑한 것에 더해, 말을 재밌게 한다. 그와 독일인들은, 이탈리아인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웃는다. 한국인 쉐어메이트는 웃으면서도, 이탈리아인에게 또 다른 주제를 던진다. 그러면 이탈리아인은 그 주제에 관련해서도 재밌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는 유럽 국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편견이라기보다는,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이탈리아인들은 시끄럽고 쉽게 흥분할 것이고, 독일인들은 차분하고 냉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쉐어메이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는 정말 잘못된 편견이며 개인차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셋 중 이탈리아인이 가장 배려심이 깊고 성격이 활발하면서도 성숙하다. 독일인 2가 오히려 이성과 클럽 이야기에 자주 흥분했고, 독일인 1은 서툰 영어 때문인지 말이 적어서 성격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



그가 어느 날 도서관에 갔다 오자, 이탈리아인과 독일인들이 어디서 난 것인지 스테이크를 신나게 굽고 있다. 호주의 고기가 싸긴 하지만, 식탁에 올려진 묵직한 봉투들은 꽤 크게 장을 본 느낌이다. 이탈리아인과 독일인들은 지금 일이 많지 않아, 지갑이 그리 넉넉한 상태가 아니다.


그가 웬 고기냐고 물으니, 이탈리아인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콜스에서 가져왔다고 답한다. 낌새가 조금 이상하다. 이탈리아인과 독일인들은 고기를 굽고 요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불이 약한 가스레인지까지 총동원해서 고기를 굽는다. 그들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서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식재료들은 돈을 내지 않고 가져온 것들이다.


호주는 인건비가 비싸다. 그래서 대부분의 식료품점이 셀프 계산대를 설치해 놓았다. 셀프 계산대 주변에 감시하는 직원은 단 한 명뿐이다. 정말 영리하고 손을 빠르게 한다면, 감시하는 직원을 속일 수도 있는 구조다. 그래도 대다수 이용객들의 양심과, 처벌에 대한 공포로 시스템은 유지된다. 이렇게 대담하게 식료품을 가져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탈리아인과 독일인들은 마트에 가서, 신나게 식료품들을 쇼핑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셀프 계산대로 가서, 찍는 척을 하면서 싼 식료품 몇 개만 찍어 계산하고 나머지는 그냥 들고 온 것이다. 옷이나 비싼 물품들은 칩이나 택을 따로 달아놓아서 차단막에 걸리겠지만, 식료품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인과 독일인들은 이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그가 얼핏 눈대중으로 보았을 때, 인당 적어도 50불에서 많게는 80불도 될 만한 금액의 식료품들이다. 이탈리아인과 독일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누가 더 미쳤는지, 그나마 누가 더 양심적인지를 가리고 있다. 간만에 고기를 먹은 뒤라 그런지 다들 신이 났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헛웃음이 나온다. 분명 옳은 행동은 아니지만, 질책할 생각도 없고 썩 밉지도 않다. 똑같이 돈 없는 워홀러이자, 어두컴컴하고 낡은 집에서 안면을 튼 사이인지라 약간의 애정이 쌓인 모양이다.


한 번 물꼬를 트자, 자백은 계속 이어진다. 이탈리아인과 독일인들은 지하철을 무료로 타는 팁도 알려주기 시작한다. 그들은 호주에서 지하철을 돈 내고 타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무임승차자의 가장 큰 공포는 검표원이다. 잘못해서 걸리면 100배의 벌금을 물어내야 한다. 이탈리아인과 독일인들은, 검표원이 나타난다 싶으면 걸리기 전에 먼저 다가가서 선수를 쳤다고 한다. 교통카드가 고장 났다던지, 찍으려 했는데 기차가 와버렸고, 너무 급해서 탔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식으로 아예 대놓고 검표원에게 자백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검표원들은 오히려 친절하게, 민원인을 상대하듯 안내해 주었다고 한다. 그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대담하고 간 큰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조금은 괘씸하다.



셀프 계산대에서 계산 안 하고 나오기 / 지하철 무임승차 모두 그가 실행을 고민했던 부정행위들이다. 그는 겁이 나서 시도하지 못했었는데, 이들은 담력과 연기력으로 해낸 것이다. 피부색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결국 유럽 워홀러 청년들도 똑같다. 그는 이들의 부정행위 성공 이야기를 들으며, 철없는 재밌는 사례 정도로 받아들인다. 어쨌든 그는 이런 부정행위들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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