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 외곽 지역 보금자리

by 하얀 얼굴 학생

공사현장 일을 시작하면서, 그도 제대로 된 주거환경에서 지낼 필요가 생긴다. 그는 정든 쉐어메이트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집으로 향한다. 친하긴 했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끈끈한 사이는 아니었으므로 다들 간단하게 인사 한 마디만 나눈다. 그가 새로 터를 잡은 집은 Narre Warren (나레 워른)이라는 곳에 위치한 가정집 독방이다.


방세가 싼 곳을 찾고 찾다 보니 이른 지역이 Narre Warren이다. 이곳은 멜버른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위치다. 나레 워른은, 멜버른 도심에서 약 43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한국으로 치면, 광화문에서 파주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멜버른으로 지역 이동을 하긴 했지만, 멜버른에서 산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리다.


숙소는 1층짜리 개인주택이며, 그가 일하는 현장처럼 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이다. 대문이 따로 있어서,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보이는 전체적인 집의 분위기는 일단 어둡다. 조명을 그리 강하게 하지 않았고, 창문과 같은 개구부가 크지 않다. 어두워서 그런지, 안 그래도 추운 내부 공간이 더 춥다. 그가 보기에 이 집은 단열재를 충분히 시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창호, 벽돌로 쌓은 벽만이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는다. 바닥은 돌바닥으로, 외부와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따뜻한 느낌이 없다. 공간만 내부일 뿐, 온도와 느낌은 외부와 흡사하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외부에서 신던 신발을 그대로 신고 방으로 들어간다. 물론, 외출하고 들어올 때 잠깐의 이야기이며 대부분은 실내용 슬리퍼를 신는다. 호주는 한국처럼 온돌을 쓰지 않는다. 바닥을 난방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를 데워서 난방하기 때문에 더 춥게 느껴진다. 난방은 중앙난방이므로, 그의 방에는 난방 장치가 없다.


대문을 열고 걸어 들어와, 미닫이로 되어 있는 집 문을 열면 내부 공간이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거실과 주방이다. 거실이라기보다는, 주방 앞이자 밖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주방의 앞뒤로 방이 있고, 주방 옆에는 복도가 있다. 복도로 들어오면, 한쪽으로는 화장실과 방 하나, 다른 쪽으로는 빨래실과 방 하나가 있다. 그의 방은 빨래실 쪽 복도 끝의 방이다. 빨래실은 뒤편의 마당으로 통한다. 멜버른 외곽의 주거시설들은 내부 공간이 썩 아늑하지 않지만, 대부분 뒷마당을 갖고 있다. 뒷마당에는 커다란 거미줄 같은 건조대가 설치되어 있다. 각자가 생활하는 방의 침대를 제외하면, 이외의 공간에는 앉을 곳이나 가구가 없다. 주방, 거실, 복도, 화장실, 세탁실 모두 식탁이나 의자가 없다. 집 내부이지만, 방을 제외한 공간들은 외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보기에 썩 좋은 집은 아니다. 그는 이 집을, 잠시 거쳐가는 숙소로 생각한다. 건설현장 일을 하면서 더 적응하고, 계속해서 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좋은 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당시의 그는 몰랐다. 그는 멜버른에서 지내는 대부분의 기간을 이 집에서 보내게 된다.



집주인은 중국인이다. 그가 검트리에서 검색하고 인스펙션을 갔던 집은 모두 집주인이 중국인이었다. 그는 주차 공간과 값싼 방세를 원했기 때문에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그가 갔던 대부분의 집들은, 침대와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이 집은, 매트리스 위에 붉은 덮개가 깔려 있다. 집주인은 그에게, 이불과 베개를 구비하라고 말한다. 그는 소비를 최소화한다. 베개는 필요 없다. 이불을 사러 간다. 그의 선택은 당연히 K-MART다. 마침 K-MART 이불 코너에서 할인을 한다. 그는 할인하는 이불을 덮석 집었다. 이불이라기보다는, 담요에 가깝다. 검은색과 회색으로 패턴이 들어간, 검푸른 빛의 담요다. 싼 값에 사긴 했지만, 그는 이 담요가 마음에 든다.


집주인이 중국인이니, 쉐어메이트도 중국인이다. 이 집은 중국인 쉐어하우스라고 보면 될 듯하다. 어쨌든 외국인이고 영어로 소통해야 하니, 한인 쉐어하우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그다. 그런데, 쉐어메이트들과 도저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다. 그는 115불짜리 독방에서 지내기 때문에, 방 안에서는 대화할 기회가 전혀 없다. 그가 심심해서 거실이나 밖으로 나오면, 아무도 없다. 유일하게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주방인데, 주방에는 의자와 식탁이 없다. 즉,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대화할 공간이 없다. 다들 주방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서, 방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는 듯하다. 그는 이 집에 사는 인원이 몇 명인지도 모른다. 방의 수를 보면 적어도 4명에서 많게는 7명까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부분 마주친 적도 없다. 그가 이 집에서 아는 사람은 딱 두 명, 집주인 그리고 출퇴근 시간이 비슷해서 마주치는 남자가 전부다. 이 남자는 중국인으로 보이는데, 조용조용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인 듯하다. 그를 마주치면, 어색한 듯이 웃으며 몇 마디를 나누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간다. 남자가 들어갈 때 힐끔 보면, 남자의 방에는 룸메이트가 한 명 있다.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인 쉐어하우스이지만, 상당히 조용하고 깔끔한 편이다. 집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이들이 대화하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는 중국인들이 시끄럽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이 집에 사는 중국인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집주인은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보이는 중국인 아주머니인데, 그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 주었다. 마주칠 일이 많지는 않지만, 만날 때마다 불편한 것은 없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묻는다.


살갑거나, 화목하거나, 소통이 활발한 셰어하우스는 전혀 아니다. 조용히 혼자 쉬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전체적으로 집이 어둡고 추우며, 주방도 요리를 하기에 썩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멜버른 외곽에서 집들이를 다니면서, 이 정도 조건의 집조차도 거의 보지 못했다. 일단은 잠깐 머물기로 한 집이었지만, 결국 그는 눌러앉게 된다. 집 안에서 다른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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